게이머 남편과 계약직 공무원 아내-33

다시 보니 더 XX 같네?

by 글쟁이게이머 L군

아라카와 히로무의 명작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빈틈없는 재미와 멋진 캐릭터, 훌륭한 완성도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만화로 칭송하는 작품이죠.


이 만화에는 그 명성만큼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가 있는데, 그중 초반부의 임팩트를 담당하는 캐릭터로 쇼우 터커라는 연금술사가 있습니다.


자신의 연금술사로서의 지위와 명성을 지키기 위해 남들 몰래 아내를 희생시켰고, 종국에는 딸인 니나까지 희생시켰다가 주인공 일행에게 발각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저열한 캐릭터죠.


자신의 딸조차 실험재료로 써버리는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고, 저 또한 그 모습을 보면서 입을 틀어막으며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 둘째 매형의 반응이었죠.


001.jpg 지금도 수많은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장면으로 유명한 니나와 알렉산더의 행복해 보이는 모습


둘째 매형이 명절 때 찾아왔을 때, 묘하게 시간이 남으니 뭐 재미있는 만화책 좀 빌려달라고 하기에 저는 망설임 없이 ‘강철의 연금술사’를 건네주었었습니다. 실제로 둘째 매형은 매우 재미있어하며 만화를 읽기 시작했죠.


그러던 와중 앞서 말한 니나가 희생당하는 장면이 나오자 말 그대로 노발대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책을 집어던질 기세로, 저게 사람X끼냐, 저런 게 무슨 아빠냐, 기타등등의 욕을 하면서 말이죠.


격렬한 반응이 나올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한참 뛰어넘는 대폭발이 벌어져서 저는 살짝 당황을 했습니다. 아니, 물론 두 딸의 아빠인 사람이니 감정이입을 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데 저렇게까지? 이런 생각도 들었죠.


그리고 세월이 지나, 저도 결혼을 해서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일과 육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던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책장에 꽂혀있는 ‘강철의 연금술사’가 눈에 띄더군요.


오랜만에 명작을 다시 보며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싶어서 꺼내서 읽어보다가, 니나가 키메라가 되는 장면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전에 봤던 장면이었으니 딱히 충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봤을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치고 올라오더군요.


아니 이 XX는 지 자식을 자기 호의호식하겠다고 희생을 시켜? 저게 사람새X냐? 저딴 게 무슨 아빠라고! 기타등등의 문장들이 자연스럽게 제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예전에 분기탱천했던 둘째 매형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도 약간 이해가 되더군요.


그렇구나. 이것이 부모의 감정이라는 거구나, 라면서 말이죠.


002.jpg 만화나 게임을 하다가 부모노릇 똑바로 안 하는 캐릭터를 보면 꼭지가 확 돌어버리는 오타쿠 아빠라고나 할까요?(사진은 에반게리온 시리즈의 겐도)


비슷한 이유로 예전에 좋아했던 에반게리온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주인공 신지의 유약해 보이는 모습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들까지 도구로 이용하는 아버지 겐도의 모습을 보면서 짜증도 느꼈지만 말이죠.


하지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신지를 볼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연민입니다.


아버지를 포함해서 주변의 어른들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이용당하고 휘둘리는 미성년자 소년의 모습은 너무나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신지를 괴롭게 만드는 원흉(?)인 아버지 겐도는 예전에 비해 훨씬 싫어하게 되었죠. 저런 천하의 잡것(!)을 아버지로 둔 신지만 불쌍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그 밖에도 다양한 캐릭터들, 다양한 작품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긴 이후로 다시 보니 상당히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주변의 오타쿠 친구들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같은 작품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늘어났나요?


-계속


003.jpg 하지만 옛날에도 ‘이건 뭐지?’ 싶었던 철권 시리즈의 콩가루 부자지간은 지금 다시 봐도 ‘이건 뭐지?’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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