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으로 그려낸 공간의 그리움
- 다섯 살 무렵 엄마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걷던 공원 놀이터
- 여덟 살 무렵 네 살 어린 동생을 어린이집에서부터 집으로 손을 잡고 걸었던 아파트 단지
- 사계절 내도록 우리 강아지가 좋아하던 산책로
- 오후 3시가 되면 가장 잠이 잘 오는 우리 집 거실
- 10년 된 남자친구를 사랑하기 시작한 4월의 학교 앞 벚꽃 길
모든 공간에는 추억이 녹아있다. 추억에는 감정이 묻어있다. 모든 공간에는 결국 감정이 묻어있다. 그 공간들은 향수를 만들고 그 향수들이 한 곳에만 존재한 건 아니었다. 몇 년을 함께한 친구들이 있던 학교에서 전학을 오게 되면 사무치게 그리운 감정들이 밀려왔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나면 그 그리움은 어느새 잊혔다. 필리핀으로 첫 번째 유학을 시작했을 때 백번이 넘는 보랏빛 노을을 봤고 나는 그것을 하염없이 그리워했다. 말레이시아로 두 번째 유학을 갔을 때, 필리핀의 노을 사진을 매일 밤 보며 웃음을 지었다. 아부다비로 취직을 했을 때, 친구들과 함께했던 말레이시아를 그리워했다. 두바이로 이사를 갔을 때, 처음으로 아부다비가 그립지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아부다비에서의 생활이 떠오르지 않는다. 누군가 기억을 몰래 지워버린 것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모든 새로움은 결국 그리움으로 남게 된다. 이전의 것을 그리워하다가도 어느새 새로운 추억들이 쌓이고 쌓여 또 다른 향수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왜 아부다비에서의 기억은 사라져 버린 것일까. 그때의 감정도 기억도 안개가 낀 듯 흐릿해졌다. '그립다'라는 감정은커녕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향수에는 애정이 담겨있다. '그립다'라는 단어와 '향수'라는 단어가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공간에 남겨진 따뜻함이 내 기억을 키워냈다. 아부다비에서 시작되었고 끝이 났던 우울증이 나의 기억을 지워내려 애썼다. 분명 행복했던 사진들이 남겨져있지만,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부다비에서의 삶을 떠올린 적이 없다. 그렇다. 감정의 색이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냈고, 그 공간에 담긴 애틋함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으로 휴가를 가는 날, 인천공항에 도착을 하면 가장 먼저 편의점 그리고 도착장에 위치한 꽈배기도넛 집을 방문한다.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들리는 휴게소에서 익숙한 향기가 느껴진다. 몇 번을 온 장소들에 나의 설렘이 잔뜩 묻어있었다. 모든 계절을 겪었던 고향에서의 하루하루는 꽤나 안락했다. 27년을 넘게 마주한 공간이지만, 난 역시 공간에 남겨진 애틋함을 찾았던 거겠지. 쉬지 않고 익숙한 길들을 걷고 또 걸었다. 어떤 날은 강아지와 함께, 또 어떤 날은 가족들과 함께, 그리고 남자친구와 함께. 계절이 선물한 향기를 잔뜩 머금은 공간들 속에서는 시간을 잠시 잊게 된다. 10년 전 고등학생 때로, 아주 어린 시절 아빠 손을 잡고 문구점을 가던 때로, 그리고 떨어진 나뭇잎에도 깔깔 웃었던 시절로. 마치 향수가 느껴지는 모든 공간에서는 시간여행이 가능한 것처럼.
내가 곧 떠나게 될 두바이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너무 그리워 마음이 아려올 수도 있겠지. 그만큼 두바이를 사랑했었던 거겠지. 그저 흘려보냈던 모든 날들이 어쩌면 행복으로 가득했었던 거지.
앞으로 머물게 될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공간 향수'는 결국 나의 추억이 만들어낸다는 걸 알았을 땐, 더 이상 이전의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만 남겨두게 하지는 않았다.
설렘. 쌓이고 쌓일 기억에 대한 설렘만 가득할 뿐이다. 그것들이 남길 새로운 향수에 대해.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 공간들에 대해. 나의 삶은 다시 쌓일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