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향기가 진득이 남긴 그리움
"아 엄마 냄새"
"아 우리 강아지 냄새"
"아 유독 짙은 우리 집 이불 냄새"
내가 해외 살이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느꼈을 향기의 그리움이 존재한다. 계절의 변화에도 공간의 변화에도 사람의 변화에도 나는 그 향기를 잘 느낄 수 있다. 덕분에 그 그리움도 남들보다 더 크게 존재할 때가 있다.
나의 첫 번째 해부였던 '계절'도 향기를 가지고 있다. 나고 자란 곳의 향기가 익숙해지면 우리는 그 향기를 정답으로 믿고 살아가게 된다. 조금이라도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향을 만나면 호기심을 보이다가도 예전의 것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5살 무렵 어린이 집을 가기 싫어하던 시절이 있었다. 친구들이 만나기 싫거나 호랑이 같은 선생님이라거나. 그런 이유들은 진즉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품에 안겨 도착한 어린이집 앞에서 엄마의 니트 깊은 곳에서 나는 살냄새로부터 이별할 때 나는 너무나도 슬펐다. 나의 세상이 온통 그 향기로 채워져 있다가 버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맨 꼭대기 층이었던 집 문 앞에서 엄마의 브라운 색의 윤기 나는 패딩 속에 들어가 목이 쉴 때까지 울곤 했다. 안전지대에서 절벽으로 떠 밀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건 다섯 살의 이야기지.
지금은 스물일곱이 되었다.
엄마는 지금까지 향기를 줄곧 바꿔왔다. 라벤더 향이 나는 바디로션을 쓰다가도 베이비파우더 향이 나는 아기 바디로션을 썼다. 그러다가 향수 한번 쓰지 않던 엄마의 취향에 샤넬 향수가 추가되었다. 어느 것 하나 꾸준함이 없던 향기를 바른 엄마한테서는 늘 같은 냄새가 났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엄마 냄새는 결국에 엄마 냄새다. 한국어가 단 한번 들리지 않는 낯선 땅에서 서러움 가득한 일들을 겪을 때 엄마 냄새 한 번이면 참아왔던 눈물들이 넘치다 못해 홍수가 난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나를 받아서 안아주는 것 같았다.
아주 가끔 의견이 맞지 않거나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이 사람의 냄새를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취향을 잘 알고 있다. 향수로는 화이트 머스크, 방의 디퓨저로는 베이비파우더, 샤워젤은 라벤더를 쓰는 걸 좋아한다. 글을 쓰는 공간에서는 커피 향이 가득해야 하고, 잠을 자기 전에는 포근한 이불냄새가 나야 한다. 화상실에서는 물 비린내가 나지 않도록 늘 샤워 후 물기를 닦아내고 룸 스프레이를 마구 뿌린다. 그러나 이것들을 나의 취향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걸까? 사실 이 모든 취향들은 우리 아빠의 취향이다. 고향으로 내려가면 맡을 수 있는 향기들이다. 부엌에서도 라벤더 향이 난다. 화장실에서는 단 한 번도 물 비린내가 난적이 없었다. 소파 커버나 이불에서는 언제나 향긋한 꽃향기와 엄마 냄새가 가득했다. 나의 그리움을 먼 곳에서까지 실현시키고자 노력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취향'으로 자리 잡혔다. 나의 온전한 취향은 딱히 없다.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의 취향까지 따라 하려 한다는데, 나는 엄마 아빠의 향기 취향을 고스란히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실현시키지 못하는 그리움이 있다.
'우리 집 강아지 냄새'
내 배로 낳은 자식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가 맞다. 우리 강아지가 아플 바에 내가 병원살이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할 만큼이다. 우리 강아지의 발바닥 냄새, 귀 냄새, 눈 주위 냄새, 하다못해 침냄새까지 사랑스럽다. 이 그리움을 향수로 재현할 수 있다면 억만금을 낸다고 자신하려나. 예전에 우리 강아지의 장난감을 훔쳐온 적이 있다. 내가 떠나기 전 날에 가지고 놀았던 침 냄새 가득한 장난감이었다. 그것을 손에 쥐고 비행기를 탔다. 11시간의 여정 내내 장난감 인형에 코를 박고 잠을 잤다. 하지만 삼일 내로 그 냄새는 사라져 버렸다. 다시 보기까지 날짜를 새어가며, 내가 그리움을 견딜 시간을 상기시켰다. 그러다 보니 포기가 빨라졌다.
불안정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껏 보는 게 맞는 삶일까, 아니면 그리움을 참더라도 나름의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게 나은 걸까.
이 글을 적고 있는 보스턴 블루보틀에서도 여전히 고민을 한다.
아무래도 내게 성공한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를 시작하기 전 아침 인사를 하는 것과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겠지.
하루의 끝에, 종일 쌓인 가시들을 서로 뽑아주며 연고를 발라줄 수 있는 삶. 그런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