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첫 번째 해부 : 계절

지나간 계절이 불러온 그리움

by 이가은

사계절은 늘 그렇듯 함께였다.
날짜나 시간의 개념을 모르는 시대에도 계절이 바뀌는 건 단번에 알아차릴 만큼 그 변화는 꽤나 짙다. 살과 살이 닿으면 불쾌하기만 했던 여름에서 겨울바람이 느껴질 때, 길고 길었던 겨울나기를 지나 따뜻한 바람이 느껴질 때. 이 계절의 변화들을 생각하는 건 사치일 만큼 바빴던 삶이 이제야 후회된다. 그 후회가 지독하게 나의 향수의 일부로 남을 줄 몰랐다.

여름나라에서 살게 된 지도 6년이 넘어간다. 벌써 세 개의 나라를 거쳤지만 그 세 개의 나라 모두 한 계절뿐이었다. 그 모두가 똑같은 계절을 가지고 있었다.

'여름'

나는 살면서 여름의 계절이 이렇게나 다양한 줄은 몰랐다. 일주일 중 일주일 전부 소나기를 머금은 말레이시아의 여름 그리고 숨 쉬기도 힘들 만큼 뜨겁고 건조한 두바이의 여름. 다양한 여름을 겪으면서 계절의 향수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습한 여름이 항상 마음 한편에 짓눌려있다. 사람들의 불쾌를 만드는 여름이라고 해도 난 그 불쾌가 너무 느끼고 싶었다.

직업의 특성상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는데, 내가 느낀 것 보다도 더 다양한 여름의 계절을 만나곤 한다. 하지만 한국의 여름은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한국에 오랜 시간 살다가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 신기하게도 그 나라만의 향기를 맡을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 오래 머무르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의 그리웠던 향이 더 섬세히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으로 휴가를 갈 때마다 계절에서 향기를 찾는다. 아주 가끔 거리에서 정겨운 김치찌개 냄새가 나기도 하는데 그 냄새까지도 계절마다 약간씩 달라지곤 한다. 이것들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삶이 희극인 걸까, 이 소중함을 놓쳐버리는 지금의 후회들이 비극인 걸까. 지금까지도 매일 밤의 생각들이 나를 어지럽힌다.

......

따뜻한 햇살이 몰고 오는 시원한 바람이 가득한 봄에 테라스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싶다.
한껏 찌는 여름에 선크림을 듬뿍 바르고 서핑을 하러 제주도에 가고 싶다.
은행열매의 냄새가 새 신을 더럽혀줬으면 좋겠다.
겨울의 소나기에 "난 정말이지 겨울에 습한 게 제일 싫어"라고 말하면서도 이 기회에 당신과 딱 붙어 걷고 싶다.
수영하기 좋은 동남아의 여름을 누비며 여행을 하다가도, 소나기가 내린 후의 가로수길 여름 잔디를 생각한다.

한때 비엔나의 여름을 사랑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도 비엔나의 여름 노을을 잊지 못하고 있다. 나의 행복이 묻은 사진을 게시한 후 얻게 되는 누군가의 부러움. 그 부러움으로 내가 가지지 못하는 계절의 순간순간을 치유받으려 했다. 이 하소연들을 말한다고 해도 늘 주변에서는 그랬다.

"유럽도 미국도 다 사계절이 있지 않아?"
"나는 다양한 사계절을 볼 수 있는 네가 부러워."
"자기야 지금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해."

잘 알고 있다. 내가 가진 나름의 특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현실을 나름 즐기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벌써 몇 해를 놓쳐버린 벚꽃과 한 계절을 건너뛰고 만나는 고향.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초가을의 찹찹한 저녁 공기. 왜 사람은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진화한 후 다시 예전의 것을 그리워하게 되는 걸까?
나는 분명히 숨이 막히는 이곳을 떠나고 싶어 시작한 생활인데, 결말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버렸다.

하지만 아주 가끔
먼 훗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행복할 줄로만 알았던 내가 텔레파시를 보내는 것 같다.

"나 그때의 다양했던 여름이 그리워"

그래.
그리움에는 끝이 없는 거야.

그러니 다시 오지 않을,

언젠가의 그리움이 될 지금을 살아가자.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