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에 깃든 추억에 대한 그리움
배를 채우기 위해 먹기도 하지만, 대개는 행복에 연관된 것. 음식.
'고향의 맛' 혹은 '엄마의 손맛'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음식들은 우리가 잊고 있던 기억 저편에서 헤엄을 치게 한다. 그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된다면 더더욱 기억의 바닷속 깊이 잠겨버린다. 음식의 취향은 저마다 다르지만 확실한 건 취향의 시작은 나를 가장 사랑해 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단 맛과 짠맛을 처음 맛보게 해 준 사람들이 있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때부터 여러 가지 음식들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밥상을 함께할 때에도 그 맛을 맛보게 해 준 사람들은 나의 표정을 살폈다. 본인들의 취향이 나의 취향과 맞기를 바라며 나를 살피고 또 살폈다. 태어나 처음으로 피망을 먹던 날,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심심한 미역국에 밥을 한 숟가락 떠서 김치를 올려준 그들의 기대와는 달리, 나는 음식을 삼키지 못하고 온갖 투정을 부렸다. 점점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이 분명하게 나눠지고 그들은 나의 취향에 반격을 하다가도 맞춰주기 위해 애를 썼다.
삶은 고기, 피망, 심심한 국물, 과자나 사탕 그리고 신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스무 살이 지나고 이십 대의 절반을 지나오는 동안, 음식에 대한 향수는 없었다. 그러다 스물다섯을 넘기고 나의 입맛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삶은 고기나 국물 그리고 신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음식에 향수가 없었던 나는 매일 '한식'을 찾았다. 무엇보다 그들이 해준 음식을 그리워했다. 엄마 아빠가 해주었던 음식들을 말이다.
음식에는 그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쩌면 그 음식을 그리워하기보다 그 음식을 함께했던 순간들을 그리워했을 지도. 코로나가 한창인 시절, 아빠는 연어간장조림을 해주었다. 흰 쌀 밥에 올려 먹는 간장에 조려진 연어의 살점은 담백했다. 고명으로 올려진 피망들은 아삭했고 달콤했다. 하얀 곡선이 탐나는 그릇에 담아 플레이팅을 하는 아빠가 멋져 보였다. 우리가 맛있다고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을 상상이라도 하는 듯 눈가에 핀 웃음 주름들이 기억난다. 아빠는 너무 짜게 되어 아쉽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 음식을 잊을 수 없다. 그 음식을 만들며 신이 났던 아빠의 웃음을 잊을 수 없다.
일요일 아침이 되면 아빠는 우리가 깨지 않게 조용히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것들을 다 끝내고 나면 우리를 살며시 깨워 '짜파게티 먹을까?' 라며 묻곤 했다. 가장 마지막에 일어난 나는 눈을 비비며 눈곱도 다 떼지 않은 채 짜파게티를 먹기 바빴다. 그 일요일의 아침이 그립다. 모두가 함께 했던 일요일 아침의 여유로운 식사가 그립다.
여름 방학이 되면 할머니 집에서 살곤 했다. 마당에 있는 낡은 평상은 꽤나 튼튼해 모기장을 치고 모두가 나와 잘만큼이었다. 어느 날은 큰 이모 손을 잡고 영화 <괴물>을 보고 오니 평상 위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삶은 양배추 찜과 양념장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꽃게 된장찌개와 각종 김치들까지. 선선한 저녁의 여름밤,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할머니의 밥상을 맛있게 먹었다. 그때 그 음식들을 단번에 만들었던 할머니가 그립다. 할머니의 세월이 흐르며 음식의 맛도 변해갔지만, 맛과는 상관없이 그저 그때 그 순간이 그립다. 가장 찬란했던 어느 여름밤의 저녁 식사가.
어린 시절 처음 맛본 복숭아의 단맛에 동그래진 눈과는 달리, 이제는 세상의 대부분의 맛을 알게 되어 놀랍지 않다. 모든 맛들이 생소하고 궁금했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떡볶이를 처음 먹어본 때로, 얼음골 사과를 처음 먹어본 때로, 닭 볶음 탕을 처음 먹어본 때로. 그래서 더더욱 '승무원'이라는 직업으로 살던 때가 신비롭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전 세계의 음식을 맛볼 때면 동그래진 눈으로 세상을 마주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 음식을 먹을 때면 연관된 추억들을 회상하듯이 나는 음식과 함께 보관한 추억상자들을 여러 나라에 두어 회상을 하곤 했다. 다양한 음식과 다양한 추억들이 스며들어 나의 또 다른 '음식 향수'를 적신다.
그 음식 향수들을 보관하여 언젠가 선물을 하고 싶다.
세상을 경험하며 간직한 나의 취향과 추억들을 담은 음식을 맛볼 미래의 새 생명에게.
나의 취향이 그 생명이 살아가는 앞으로의 모든 추억의 시작이 될 테니.
엄마 아빠가 나에게 선물해 준, 세상의 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