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곱 번째 해부 : 시절인연

이별도 슬픔도 아닌 그들을 향한 그리움

by 이가은

몇 번의 새해의 아침을 놓쳤다. 새해에 뜨는 태양을 보며 소원을 빌 거라고 말했고, 십 년이 넘도록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열 번이 넘도록 놓쳐버린 새해 아침의 첫 번째 태양은 해가 바뀔 때마다 나의 시절인연들을 데려갔다. 한 계절에서 또 다른 계절로 넘어가듯 아주 자연스럽게. 그 누구도 모르게 나의 인연은 추억에 머무를 거라며 떠나갔다. 그것은 이별도 슬픔도 아니었다. 그저 계절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인연의 끈이 흐릿해진 것뿐이었다.

낙엽이 떨어는 것도 배꼽이 아플 만큼 웃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 가장 친했던 Y와 나는 언제나 함께였다. Y가 가는 곳에는 내가 항상 있었고, 내가 가는 곳에는 그녀가 언제나 존재했다. 6학년 여름 방학이 지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Y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이던 나에게 Y가 다가온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다. 몇 번의 어색함이 맴돌 고난 후,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그곳에서 우리는 '짝사랑'을 만들어냈고, 온종일 그들에 대한 이야기로 설레어했다. 우리는 같은 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고 그 3년을 늘 함께 보내곤 했다. 운이 좋게도 같은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고, 매일 아침 나의 등굣길과 점심시간 산책은 Y와 함께였다. 나의 첫 남자친구가 생긴 후, 가장 서운해했던 건 Y였다. 나의 주말은 온통 남자친구의 것이 되었고, Y는 새로운 친구들과 다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등굣길은 함께였다. 우리의 인연의 끈은 그렇게 쉽게 끊어질만한 것이 아녔으므로. 하지만 Y는 문과를 선택했고 나는 이과를 가게 되었다. 수업을 듣는 건물이 달라지게 되었고, 쉽게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Y는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고, 나 역시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게 되었다. 졸업을 하고 난 후, 우리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새해의 종이 열 번이 넘게 울리는 동안, 나는 Y에게 열 번이 넘도록 새해 인사를 하지 못했다. 그리운 Y는 그렇게 나의 첫 시절인연이 되었다.

학창 시절을 그려낼 때마다 떠오르는 선생님의 얼굴이 있다. 난 운이 좋게도 매 해마다 그 얼굴을 기억하고 싶어 했다. 만났던 모든 선생님들은 내게 따뜻함을 가르쳐주셨다. 침묵을 할 때를, 목소리를 내야 할 때를 가르쳐주셨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좋아하는 것들이 없어 주관이 뚜렷한 친구들을 부러워만 할 때에도, 그들은 나의 뭉툭한 취미들을 예뻐하셨다.
글을 깨우치고 읽는 것과 쓰는 것이 능숙해진 이후로 나는 시를 쓰곤 했다. 세상에 살아 숨 쉬는 혹은 생명이 없는 것들에게도 이야기를 만들어주곤 했다. 감정이 들쭉날쭉한 날에는 글이 잘 써진다며 되려 신이 나 곤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하여 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을 좋아했다. 여러 번의 시와 독후감을 제출하고 검사를 받는 일을 한 어느 날, 선생님은 나에게 글을 잘 쓴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나의 글 아래에는 언제나 그녀의 이야기도 쓰여있었다. 우리는 매주 월요일마다 서로의 글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곤 했다. 선생님의 빨간 볼펜의 끝은 종종 나를 설레게 했다. 학년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나의 글을 읽었다. 때론 다른 선생님들과 나의 글을 나눠 읽으며 나를 계속해서 글 쓰게 하셨다. 그녀는 지금까지도 타자기 위의 나의 손마디마디가 움직일 때마다 기억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그녀는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시끄러운 공간에서도 화가 날 때에도 우리를 향해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다. 한마디를 내뱉으면 환한 미소가 동시에 따라올 만큼 웃음이 헤픈 그녀였다. 덕분에 나는 선생님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고, 사소한 일들까지도 선생님과 공유를 했다. 그녀는 언제나 따뜻하고 향긋한 향기를 품었는데, 자주 입던 검은색 코트와 잘 어울렸다.

"가은아, 잠시 이리로 와볼래?"라고 할 때마다 세뇌라도 된 듯, 먼발치에서부터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아주 가끔 선생님의 현재가 궁금하다. 17년이 지난 지금, 선생님은 여전히 웃음이 많은 사람일까? 여전히 향기가 좋을까? 여전히 그녀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넘쳐날까? 난 확신할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그럴 거라고.

중학생이 된 이후로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일상을 함께하던 동네 친구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S. 이름만큼이나 주관이 뚜렷하고 자주 나를 상처 주던 친구였다. 여름이 되면 함께 계곡을 갔고, 서로의 생일을 빠짐없이 챙겨주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가고 싶은 대학교 또는 되고 싶은 직업에 대해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그녀는 자주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으며, 그녀의 기분이 흐리다 못해 새까만 날에는 모진 말들을 쏟아내곤 했다. 거침없이 내뱉는 단어들이 직선 방향으로 날아올 때면 나의 기분도 동시에 검정으로 물들곤 했다. 점점 나는 그녀의 감정과 닮아갔고, 동시에 그녀의 말투와 행동까지도 닮으려 노력했다. 그녀가 나를 대하는 것처럼 나도 그녀를 대해야만 나의 상처 조각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 같았으니까. 우리 서로는 닮아있었고 고민까지도 닮아가던 어느 날, 나는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고 S는 탐탁지 않아 했다. 아마 그건 서운함이었을지도.
유학을 간 후 6개월간 나는 S를 볼 수 없었다. 연락은 종종 했지만 처음 느껴본 향수와 낯섦에 적응하느라 연락의 횟수도 줄어들었다. S는 더욱 서운해했고, 이해해 달라는 나의 부탁과는 달리 화를 내버렸다.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우리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졌고 서먹해졌다. S와 함께 친했던 나머지 친구들도 나의 연락에 답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그들을 닮아보려 애를 썼다. 그래야만 나의 상처 조각들이 작아질 거라 생각했으므로. 내가 그들을 닮아갈수록 우리의 싸움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보고 싶은 나의 S는 찬란했던 20대의 전부를 함께하지 못했다.

"너는 이기적이야"
그녀가 우리 관계의 끝자락에 남긴 말이었다.

이기적으로 남아있는 S의 기억 속 나는 여전히 S의 검은색 기분과 닮아있을까?
S의 기억이 달콤한 사탕으로 물들어버린 탓에 나를 보고 싶어 하기를. 아니, 그저 추억에 남겨진 애틋한 것이라도 될 수 있다면. 사실 S를 시절인연이라 부르고 싶지 않다는 것까지. 이것들이 나의 진심이기 때문에.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6화여섯 번째 해부 : 물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