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번째 해부 : 꿈

나를 숨 막히게 했던, 울게 했던 그럼에도 다시 살게 했던

by 이가은


집 책장에 동화책이 한가득 채워진 이후로, 매일 밤 깊은 잠에 들기 전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피터팬>이라서다. 어느 날 피터팬이 창문 너머로 날 데리고 구름까지 함께 날아가주길 바라며 잠에 들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하늘이 보이게 누우면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비록 머지않아 차멀미로 고생을 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그러다 <인어공주>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하늘을 날던 상상은 어느새 사라지고 물에서 숨을 쉬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아빠와 잠수 대결을 할 때에 느껴지는 숨의 한계가 미울 만큼 인어가 되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이런 것들이었다. 무언가를 바라고 상상하지만, 절대 가질 수 없는 그런 것들. 때론 추상적이고 동화적인 나의 꿈들을 어른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어른들은 언제나 꿈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내 대답은 그들의 설교에 묻혀 사라지곤 했다. 그들의 '현실적 조언'은 내 꿈을 기죽이고 만 것이다.

돈 벌어먹고 살만한 직업을 찾아야 한다는 잔소리에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절대 인정이 아니었다. 반항할 수 없는 약함 혹은 포기였다. '직업'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이후로 다양한 직업에 관심을 가졌다. 그중 유독 내 시야에 들어와 머물렀던 건 '연예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수'라는 분야가 흥미로웠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 그리고 나의 춤과 노래를 보여주는 것에 늘 재미를 느꼈던 탓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못났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과연 몇 명이나 상대방에게 '못생겼다' 라며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 그건 부모님 조차도 가질 수 없는 자격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연습을 하였고 꿈을 키워갔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이 것들에 미칠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직업 선택에 있어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무의식 중에 내 꿈을 지워갔기 때문이다. 의사, 변호사, 공무원 그리고 선생님 같은 직업을 가지는 게 내 인생을 역전하는 방법이라며 세상은 말했다.

고등학생이 된 후,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마치 실패를 하면 안 되는 아이처럼 발버둥을 쳤다. '수학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말에 좋아하던 선생님과 부모님. 언제나 뒤처지는 탓에 태어나서부터 기가 죽어 발표시간 손 한번 못 드는 아이가 처음으로 수학 1등을 하였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어깨가 펴지는 기분과 동시에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 물속에서 사는 인어가 된 기분이 들었다. 노력으로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경험한 순간이었다. 수학시간 발표는 늘 내 차지였다. 그러다 수학선생님께서 '수학과'를 가보라며 조언을 해주신 날에 난 알게 되었다. 인정을 위한 꿈이었다는 걸. 인정을 위한 노력이었다. 난 즐겁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좋지 못한 점수가 나오면 실망할 사람들의 말이, 표정이, 탄식이 두렵기만 했었다.

하늘을 날고 싶다... 하늘을 날고 싶어... 피터팬이라는 존재가 날 구름으로 데려다주면 좋겠어..
책상에 놓인 '직업 조사' 가정통신문과 하늘을 번갈아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원하는 직업과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써야 했다. 내가 원하는 건 결국 적지 못했다.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그대로 따라 썼다. '나'라는 사람과 별개로 사회가 말하는 '나'를 고민하는 건 숨이 막혔다. '직업'을 가져야 인정을 받는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여전히 하늘을 날고 싶었다. 고민이 지루해져 갈 때 앞자리 친구가 보고 있는 책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물었다.

"승무원? 승무원이 왜 하고 싶은데?"

"하늘을 날잖아. 세계 어디든 여행도 하고."

내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피터팬이 결국 날 찾아와 줬구나!
이 아이는 나에게 피터팬이었다. 날 하늘로 데려다 줄,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에게 자유를 느끼게 해 줄 피터팬.

그 이후로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대학교 입학 후 언제나 상위 성적을 받았고, 첫 면접에 합격하여 최연소 중동 항공사 승무원이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부터 스물한 살까지 4년간 쉬지 않고 노력했다. 취직을 한 이후에도, 최종 목표엿던 회사에 가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었다. 결국 두 번의 도전 끝에 본사 대면 면접에서 합격을 거둬냈다. 승무원으로 살아가며 천 번이 넘게 하늘을 날았다. 나는 피터팬을 기다리지 않았다. 스스로 그것이 되어 하늘을 날아다녔으니까.

하고 싶은 것에 열심히 미치며 7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유를 보았다. 지구의 모든 곳에서 해와 달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지구가 작게만 느껴졌다. 지구를 돌아다니고 하늘을 나는 것 이외에 하고 싶은 것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들이 없어 고민하던 고등학생때와는 다르게 하고 싶은 것이 많아진 건 아마 두려움이 없어져서일지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일지도. 사회가 바라보는 나 따위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 때문 일지도.

그럼에도 여전히 주변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게 많은 건 끈기가 없기 때문이라며 말하곤 했다. 모두가 힘들고 지루해도 버티는데 라며 말해주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난 더 잘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힘들고 지루해도 버티다 보면 내가 얻는 게 없다는 이유였다. 노을이 흘러넘치는 바다를 보던 날, 죽기 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보자고 다짐했다. 이 노을을 다시 보러 오기까지 5년이 걸렸다. 왜 진작 오지 않았을까. 이 후회가 날 다짐하게 했다.

새로운 것에 다시 미쳐보기로 했다.
매일 아름다운 것들만 보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지만, 내가 누군가의 피터팬이 되어주기로 다짐했다.

태어날 그리고 태어난 새 생명들에게,
"이 지구에서 네가 꾸지 못하는 꿈은 없어. 혹시 모르지 그게 우주까지 뻗어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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