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 나도 그 시절 속 아이였다.
노곤하게 떨어지는 눈꺼풀, 교실이 머금은 먼지를 한가득 마시는 하품, 잔잔한 봄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시끌해지는 공간, 준비물을 챙기지 않은 탓에 쿵쾅거리는 심장, 이른 아침부터 찬 우유를 마시는 바람에 시작된 복통. 완성되지 않은 삶의 조각에 속상하기도 했던 그 시절들. 지나가는 어른들이 멋져 보였던 그 시절들. 그 시절들을 만들어낸 공간, 학교.
어른이 된 우리도 아이였던 때가 있었다. 엄마 아빠가 나에겐 유일한 영웅이고, 선생님이 하늘 같은 존재이며 '책임'이라는 단어가 낯설기만 하던 때가 있었다. 최근 서울 전역을 돌아다닐 만큼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환승 네번에 편도 2시간이라는 거리를 오가며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출퇴근 시간에 이리저리 치이며 지하철을 올라타면 보이는 풍경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모두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잡고 있었다. 나도 하던 것을 멈추고 주변을 이리저리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 지하철을 탄 어른들은 일을 시작하기 전, 직책을 달고 책임감을 어깨에 올리기 전 겨우 숨을 돌리는 시간을 만끽하는 중이었을 테지. 두 귀를 막고 음악소리를 최대치로 튼 후, 주변 소음을 막아야만 온전히 그들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테다. 그런 그들이 '책임'이라는 단어를 어깨에 짊어지기 전 시절을 떠올렸다. 그 시절 그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건 등교시간에 지각을 하지 않는 것 혹은 다가올 기말고사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이 전부였겠지. 더욱이 어린 시절에는 한글을 읽어내거나 구구단을 외우는 게 가장 큰 인생의 고비였을 테다. 그런 그들의, 아니 우리들의 잔잔하고 나른한 시절이 그리워졌다.
"야 이가은 일어나, 우리 점심시간이야! 뛰어야 줄 안 선다고!"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상사에게 꾸짖음을 들은 후 화장실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 익숙한 공간이었다.
난 교복을 입고 있었고, 창가자리 가장 맨 뒷자리에서 엎드려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혹여나 화장실에서 숨을 돌리는 사이 잠에 든 거면 얼른 일어나 일을 가야 한다. 나를 깨우는 친구를 무시하고 다시 잠에 청했다. 그때 중력에 이끌려 거세게 날아오는 손바닥에 아파하며 벌떡 일어났다.
"아 이가은 일어나라고! 안 들리냐? 맞아야 일어날 거냐고! 나 배고프다고!"
꿈이 아닌 건가. 그럼 말이 안 되잖아. 혼란을 겪을 시간도 없이 나는 친구손에 이끌려 급식소로 끌려갔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급식소라 그런지 내부는 깔끔했다. 오늘의 급식메뉴는 매콤한 코다리 조림에 김치 그리고 장조림이었다. 투덜거리며 입을 삐죽이는 친구와는 달리 나의 입맛에 딱 맞는 메뉴라며 웃어 보였다. 그 시절의 내 입맛이 아닌, 그 시절로 돌아간 어른이 된 내 입맛이라고 해두는 게 맞을 듯하다. 내 입맛이 선생님들보다도 늙은 것 같다며 놀리는 친구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야 너도 나이 먹어봐."
오래간만에 책임이라는 무게가 없어진 탓에 신이 난 건지 나도 모르게 툭 내뱉은 말이었다.
"아 뭐래. 진짜 열받고요 짜증 나고요 아 배는 고프고요!"
지나가는 학생들의 말투에 오글거리다며 남자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던 내가 직접 이런 말투를 들을 줄이야. 꽤 기분이 좋았다. 어른이 된 후, 미팅을 가거나 회의를 하게 될 때 다소 어른스럽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듯했다. 되려 어리숙해야 나다운 지금이었다.
점심을 다 먹은 후, 역사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교실을 터벅터벅 들어오는 역사 선생님이 반가웠다. 식곤증에 역사 과목이라니. 잠이 올 것만 같은 조합이었지만 반가운 선생님의 모습에 졸린 잠을 참아가며 수업을 들었다. 오랜 시간 수업을 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약간 걸걸하셨고, 수업 중에 조는 친구들에게 농담 겸 잔소리를 하기도 하셨다. 그사이 오후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 되었고, 기온이 오른 탓에 불어오는 바람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활짝 열어둔 커튼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고, 불어온 바람에 날리는 분필 가루에 앞자리 친구는 콜록이고 있었다. 여전히 배고팠던 친구는 올려둔 우유에 초코맛 가루를 넣어 흔들다 선생님께 집중하라는 꾸짖음을 들었다. 선생님이 판서를 쓰시는 동안, 웃긴 이야기가 담긴 쪽지가 반 전체에 몰래 돌고 있었고, 그걸 지켜보는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옆자리 친구가 나를 조심스레 콕 찌르며 내 시선을 이끌었다. 책상에 샤프심으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그 아이가 적은 글에 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고 말았다.
[ 이 시간을 잊지 마, 어른이 되어도 절대 잊지 마. 순수했던 따뜻했던 이 시절을. 그 시절 속 너를.]
그 아이를 올려다보기도 전에 내 눈꺼풀은 무거워졌고, 다시 눈을 떴을 때엔 화장실이었다. 문 밖에서는 나를 찾는 상사의 소리가 들렸고 텅 비어있던 나의 마음은 검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기 싫었다. 어른이 된 내가 싫었다. 그러다 문득 나를 다그치던 그 사람에게도 '그저 웃는 게 일이던 시절이 있었지' 하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
흘러가는 시간은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게 했고, 어른이 된 우리는 언제 아침이 왔느냐며 투정하기 바빴다. 언젠가 내일이 오지 않기를 기도한 적이 있다. 나에게 내일은 '살아가는 것' 보다 '견뎌내는 것'에 가까웠다. 내가 견딜 시간들을 기다리는 것은 마치 어릴 적 아빠와 잠수대결을 하는 순간 같았다. 아빠를 이겨보겠다며 숨을 참고 참다, 결국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도달하는 기분. 나에게 하루하루는 내 숨이 한계를 말하기 직전 같았다. 삶의 무게를 짊어진 어른이 되어 살아갈수록, 풋풋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식상한 탄식 혹은 한숨을 내뱉는 어른으로서 사회를 살아갈 때에, 지나가는 학생들이 깔깔 거리는 웃음을 들을 때에, 나를 돌아본다. 그 시절 속 나를 들여다본다.
순수했던 그때, 그 시절.
아 그렇지, 나도 아이였다.
이번 화의 글을 써 내려가며, 제가 삶에 지쳐 쓰러질 때마다
떠올리던 상상 혹은 소망을 옮겼습니다. '눈을 감았다 뜨면
그 시절로 돌아가면 좋겠다'라는 현실 도피를 자주 상상했었죠.
이런 저의 상상을 쓰며 전하고픈 말은 결국,
' 이 글을 읽고 있을 여러분도 학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무거운 책임감에 나를 잃는 순간, 꼭 떠올려주세요.
당신이 살았던 그 시절을, 그 시절 속 환하게 웃는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