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다는 감사함. 그것에 대한 추억.
종일의 피로함이 어깨를 눌러버려 더 이상 곧게 설 수 없을 때.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버스 안에서 과속방지턱으로 여러 번 머리를 창문에 찍어댈 때. 지하철 환승역에서 입구로 나가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부딪히며 밀려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 어쩌면 다 비슷할 거라고 믿게 될 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기어코 절벽에 떠미는 세상을 향해 유일하게 반항할 힘이 생기는 이유. 그 이유는 하나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독 집을 보러 갈 때면 성격이 요란해진다. 유난히 요구사항이 많아지는 탓에 옆사람을 피곤하게 할 정도로. 새 집을 보러 가기 전, 야심 차게 준비한 '사전 체크리스트'를 꼼꼼히 살핀다. 부모님 집에서 부모님 밥을 먹으며 자랐을 때엔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가시가 되어 시야를 거슬리게 한다. 새집을 보러 가기로 한 날, 그저 결심한 게 있다면 집이 집 같길 바라는 마음 하나였다. 불어오는 바람이 나의 잠을 깨우지 않도록. 옆집의 사생활이 내 음악을 지우지 않도록. 하늘이 드높고 파아란 맑은 날, 햇볕 한 점 없이 하루를 보내지 않도록.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내가 생각했던 집은 나의 예산을 훌쩍 뛰어넘었다. 마지못해 포기한 하나의 요구사항이 점차 늘어만 갔다. 다행히 예산에 맞춰지고 있었다. 물론 나의 요구사항들은 종이 조각에 불과해졌지만, 나만의 보금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겨우 계약한 첫 집에서 집주인은 내게 500 디르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 돈으로 20만 원에 가까운 돈이었다. 보증금과 월세 이외에 어떤 이유로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큐리티한테 팁으로 500 디르함을 주는 게 예의야."
이사 온 집에서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또 팁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팁을 주지 않으면 전혀 도와주지 않을 것처럼 말했고, 내 편이 없는 이 땅에서 나는 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부다비에서 그렇게 첫 집을 구했다. 혼자서 집 계약과 인테리어를 끝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창문에 몸을 기대어 밖을 구경했다. 흩날리는 모래바람이 전부였다. 실망한 듯 튀어나온 날숨에는 '막막함'이 조금 더해졌다. 이내 몸을 돌려 넓은 방을 바라보았다. 깊고 어두웠다. 어두운 공기가 감도는 와중에 날숨에서는 '안도'가 조금 더해졌다. 해가 들지 않는 방. 모래만 보이는 풍경. 그러나 아늑한 나의 집. 이곳에서 1년을 살았다. 10개월이 넘도록 한국을 갈 수가 없었고, 나를 안아주는 건 이 집이 전부였다. 깨끗이 청소한 방 안에서 작은 조명을 킨 후 마시는 맥주. 울려 퍼지는 재즈. 이런 것들이 나를 절벽으로 밀리지 않게 받쳐주었다.
돈이 모인 후, 조금 더 비싼 곳으로 옮겨갔다. 그곳에서는 가벼운 산책 그리고 운동도 가능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보이는 바다. 해가 저물면 보이는 노을. 비록 예전 집보다는 작아졌지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모은 돈으로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블랙 앤 화이트로 야심 차게 꾸몄다. 신난 마음으로 소셜미디어의 좋아요를 기다렸다. 나의 만족감을 온 세상이 알게 하도록 소리 없이 외쳐댔다. 꾸준한 운동과 집밥으로 '나를 위한 생활'을 하곤 했다. 비행을 다녀온 후에는 깨끗한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예쁜 잔에 와인을 따라 마셨다. 여전히 흘러나오는 재즈. 여전히 환한 작은 조명. 집에 채워진 나의 향기들은 내 어깨가 시리지 않도록 해주었다. 난 대게 행복했고, 새로운 감정이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 집은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사라지고 싶을 때, 유일하게 나를 지켜준 것이었다.
에미레이트 승무원이 된 후, 나는 집을 배정받았다. 운이 좋게도 가장 좋다는 숙소를 배정받았다. 심지어 57층에 멋진 야경을 품은 집이었다. 큰 거실에 주방 그리고 세탁실이 있었다. 비록 다른 친구들과 함께 살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나를 외롭지 않게 했다. 룸메이트가 어질러놓은 주방에 짧은 탄식이 나오는 것조차 행복했다.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일찍 잠에서 깨어도 행복했다. 그 친구의 출퇴근 소리가 들리는 게 나를 외롭지 않게 했다. 언젠가 룸메이트의 생일 편지에 나의 속마음을 처음으로 남긴 적이 있었다.
"시끄럽게 해도 좋아. 주방을 오래 써도 좋아. 너 덕분에 이제야 외롭지가 않거든. 그래서 이 집이 좋아졌어."
편지를 수줍게 전달하고는 급히 방으로 도망쳐 왔고, 뿌듯해진 나머지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끝내기로 했다. 여전히 재즈가 울려 퍼졌고, 작은 조명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일하는 승무원 시절에도 하늘을 보지 못한 적이 많았다. 하루하루가 고되었고, 베개가 젖지 않은 날이 없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서도 나는 울고 있었다. 눈물을 쏟아낼 힘이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감정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온갖 질타와 무기력함에 식은땀이 등으로 흐르는 날, 나는 깊고 어두웠던 내 방이 보고 싶었다. 노을에 일렁이는 강이 보이는 집이 보고 싶었다. 룸메이트가 있는 그 집이 보고 싶었다.
내가 살았던 집들이 어떠했든, 모두가 손가락질할 때 유일하게 날 안아준 친구였다. 마음 편히 눈물을 흘릴 수 있게 공간을 건네주었다. 외로움에 나의 어둠이 기어코 이 집을 가득 채워버릴 때,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었다. 갈 곳이 없어 헤매지 않도록 나를 잡아주었다. 노을이 너무 예쁜 나머지 우울에 잠식당한 내 옆에서 내 이야기를 소리 없이 들어주었다.
낡았던 집도. 예뻤던 집도. 날 돌아갈 수 있게 해 준 유일한 것.
나의 눈꺼풀이 온종일 가장 그리워한 유일한 것.
정말 감사한 일이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