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 아빠는 암 환자가 됐다.

by Toomuchpink

대왕 레몬

병원엔 은근 별게 다 있다. 멀리서 보면 별로 이상하게도 안느껴지는 일상적인 것들. 예를 들면 나한테는 처음 병원을 방문을 했을때 이발소가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대체 누가 병원 이발소에 온단말이야? 그 이유는 한 달 넘게 입원해 있던 아빠의 덥수룩한 머리를 보고 금새 깨닫게 됐다.


난 한번도 비정상이라는 개념 속에 속해보지 않았다. 내 삶은 지극히 정상이고 평범한 삶 속에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남들이 늘 부럽다고 이야기하는 화목한 가정의 장녀였다. 아빠의 암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내 머릿속 암 시뮬레이션은 건강검진을 하다 발견되는 것뿐이었는데, 복통을 참아내는 아빠를 보고 들들 볶자 결국 엄마가 아빠를 굶겨 종합병원을 가게되었고, 그곳에서 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졌다. 수술 아닌 시술만 해본 나였지만, 시술만으로도 입원하는 순간 ‘환자’가 된다는걸 알았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입원하는 아빠를 따라나섰다.


맥시멀리스트 걱정인형답게 바리바리 싸진 짐들을 들고, 입원 수속을 밟는 엄마를 기다리며 아빠와 나란히 원무과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빠가 많이 무서울 것 같았다. 아빠의 어깨를 쓰다듬고 어깨에 기댔는데 어깨가 너무 야위었다. 아빠는 내가 중학교 때 학교에서 캠핑을 하는 날 직접 학교에 와 텐트를 쳐주고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든 아이들이 아빠의 하트 종아리에 대해 말하며 대박이라고들할 만큼 건강한 사람이었다. 아빠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었는데 너무 작고 야윈 사람이 되어있었다. 근육도 다 사라지고 팔뚝은 말랑말랑했다. 눈물이 왈칵 고이는 걸 참아내느라 힘들었다.


아빠의 수술날은 아빠를 제외한 온집안 식구가 병원 지하 테이블 두개를 차지하고 살림을 차렸다. 나는 재택근무를 했고, 엄마는 걱정되는 마음을 누르려 무언가를 해보려했지만 계속해서 실패했다. 잠을 자지 못했다고 했고 계속 잠들려고 노력했지만 잠들지 못했다. 동생은 과일바구니와 네잎클로버 등을 가지고 방문한 후배와 함께 있었다.


마트나 길을 걷다 아빠와 비슷한 중년의 실루앳을 보면 흠칫흠칫 놀라곤 하는 나를 발견했다. 벌써 보고싶으면 어떡하지.


불행은 늘 한번에 닥친다. 삶은 나에게 대왕 레몬을 선사했고 나는 레모네이드는 커녕 쏟아지는 레몬에 깔려 신음하고 있었다.


어느정도 아빠가 회복한 후의 주말에는 매일 병원을 방문 했다. 아빠의 머리가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흰머리와 검은머리가 듬성듬성 뒤섞인. 중간중간 뒤섞인 엄마의 흰머리도 계속 눈에 밟혔다.


같은 병원의 환자라도 그 경중이 다르다. 누군가는 환자복을 입고 가족들과 지하에서 배달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 가족들은 다 행복해보였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갔다 돌아오던 저녁. 여자 기사님이 택시 운전을 했다. 멋진 제복 같은 것을 입고 파워풀하게 운전을 하셨다. 거의 다와갈쯤 짐이 무거워 집 앞까지 내려달라고 말하려했는데, 알아서 그리 가주셨다.

- ”어휴 누가 아파서 병원데 다녀오나봐요~?“

- ”네...“

- “금방 나을 병이죠~?”

- “하하 ...”

뭐라고 말을 할지 모르겠어 쓴 웃음뒤에 말을 삼켰다. 눈물을 흘려버릴 것 같았다.

- “희망을 잃지 말아요~! 괜찮아질거에요.”

- “감사합니다.”

- “조심히 내리시구, 뭐 빠드린거 없나 살펴보시구~”

- “네~ 감사합니다. 조심히가세요.”

둘째고모의 다소 폭력적인(?) 사랑과 관심을 이고지고 집으로 올라왔다.


집안 일

자취를 해도 평생을 몰랐는데 엄마가 된더는건 도대체 어떤일일까. 일을하고 돌아와서 본인의 휴식시간도 없이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하고, ‘집안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어’라는 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항상 나에게 따뜻한 마음과 차가운 두뇌로 아낌없는 마음을 전해줬던 S는 나에게 너가 할 수 있는 일 부터 해보라고 했다. 이를테면 집안일 같은. 집이 어질러져있으면 엄마가 그걸보고 더 심란해질거라고. 근데 집이 깨끗하면 그나마 편안함을 느낄거라고.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리고 그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찍 퇴근해 집안일을 하려했는데, 퇴근하니 10:30이 넘었다. 빨래를 돌려둔 후 락스를 분무하여 욕싱 세면대에 핀 곰팡이부터 죽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몇년동안 거기있었을지 모를 (분명 아까워서 아빠가 버리지 못하게한 다쓴 칫솔들과) 가재도구들과 세면도구들이 뒤섞여있었다. 거울을 닦고,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걷고 다시 개자 1시가 되었다. 엄마가 쉬지 않고 일할 때 ‘아 그냥 냅둬’라며 편하게 말하던 내가 한심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하는일은, 늘 끝이 없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일들이 눈에 보이니까, 그래서 해내는 것이었음을.


하루 일과의 시작

엄마 아빠가 없는 집을 지키며 내가 매일 한 하루 첫 일과는 매일 신선한 오늘자 신문을 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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