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0년대와 90 년대에 외국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했었는데,
그때에 있었던 일이다
마닐라에서 도쿄로 가는 비행 편이었다.
이륙 후 2 시간 후쯤이었다
기내식사서비스를 한참 하고 있는데, 모든 승무원들에게 전화가 왔다.
일등석부엌으로 모이라는 것이었다.
의아해하면서 그곳으로 가자
미국인 수석승무원은 부엌의 커튼을 닫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말해 주었다.
“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방금 기장님께 마닐라관제탑에서 연락이 왔는데
우리 비행기에 폭발테러물이 실렸다는 제보가
있답니다”
우리 비행기 출발 후에
마닐라를 방문하고 떠나시는 교황님의
송별행사가 공항에서 있었는데
그 시간에 맞춰서 어느 테러분자 소속이라고 밝히면서
전화가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 비행기가 회항을 하면은
교황님의 출국에 차질이 생길 수가 있으므로
알려주지 않다가 2 시간 후에 알려 줬다고 한다.
마닐라로 다시 회항하지 못하도록 멀리 간 다음에,,,
기장님은 우리에게 되도록 빨리 기내서비스를 마치고 부얶과
기내를 정리할 것이며, 동시에 플래시 라이트를 들고 다니며,
화장실과 코너 등등을 샅샅이 살펴보며 혹시
이상한 물건이 눈에 띄나도 찾아보라고 하셨다
단, 승객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승객들께는 승객 한분이 귀중품을 잃어버려서
찾는 거라고 얼버무리면서 우리들은 서둘러
식사쟁반들을 걷어 들이며 기내정리를 먼저 하였다.
기장님은 우리 비행기가 오키나와에서 가까운 곳에
지금 있는데, 오키나와로 가야 할지 아니면 도쿄로 계속해서
갈지를 결정해서 알려 주겠다고 착륙준비도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비상착륙이나 바다에 떨어질 경우 대비
구명보트 사용법등을 다시 상기하며,
비상시 승객 구출등을 의논하며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잠시 후 기장님은 수석승무원을 통해 우리에게 지시하셨다.
“마닐라로 가기에는 2시간 거리이니 너무 멀고,
오키나와는 비상착륙 하여 비행기가 화재가
날 경우 등 충분한 장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도쿄까지 비행할 것이다 “
”아직까지 폭발하지 않은 걸 보면
이건 단지 협박전화였을 수도 있으니
마음을 차분히 가지라! “
승객들께 내색하지 말고 준비는 하되
비상착륙이 될 수 있으니 그것에 따른
마음가짐을 하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소식을 듣는 순간에는 정말 쇼크
였지만 곧 다들 마음을 가라앉고
차분히 매뉴얼에 따른 일을 각자의 맡은
지역에서 준비하였다.
드디어 도쿄의 나리타공항이 다가오고
착륙 5분 전,
다시 한번 수석승무원은 모두를 불러서
마지막으로 지침을 내렸다.
폭발물이 있다면 착륙 순간에 우리 비행기는
폭발할 것이다.
그런 경우 어느 탈출구로 어떻게 가야 할지를
미리 생각해 놓고,,, 등등 여러 지시가 있었다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지켜야 할 사항은
” 노 코멘트“
만약 공항터미널을 나갈 때, 누구라도 오늘
이 사건에 대해 물어보면 무조건 ” 노 코멘트“
절대 어떠한 얘기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로 가서 착륙을 기다리는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몇 분 후면 내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 해 지면서
” 그건 내 운명“ 일 테니 걱정하지 말자고만
생각했다.
오히려 나는 긴장되어 있는 동료들에게
우리가 어쩌면 오늘 저녁 뉴스시간에 비칠지도 모르니 예쁘게 보여야 한다고 립스틱이라도 바르자고 했더니 또 다들 거울을 보며 환한 립스틱을
바르고 있었다.
하기야 그때 우리들은 한창 꽃피던 20대들이었으니,,,ㅎㅎㅎ
우리 비행기는 나리타공항 터미널에서 아주
먼 곳의 비상 활주로로 착륙을 했는데
밖을 보니 수많은 소방차들과 앰뷸런스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바닥에는 하~얀 가루들을 뿌려놨기에 마치
구름 속으로 들어가듯 비행기는 달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멈추자 수석 승무원은 기내방송으로
” 승객 여러분! 지금 이 비행기에는 폭발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지고 오신 모든 소지품은 놓고 신속하게
비행기 밖으로 나가셔야 합니다. “
고 했는데 승객들은 놀라지도 않고
(대부분이 낙천적인 필리핀인들 이어서인가?)
오히려 그 순간에
“화장실에 잠깐 가도 되냐? “
고 묻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가방을 꺼내고 챙기고,,,
다행히 잠시 후, 가방을 가지고 내려도 된다는
지시가 떨어져 다들 가방을 가지고 천천히 천천히 ㅎㅎ
나갔다
비행기 트랩을 내려가면서 보니 아래에는 정말 많은 카메라맨들과
TV 방송차량과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미리 지시받은 대로
”노 코멘트“
묵묵하고 조용하게 터미널을 빠져나간 다음!
그제야 서로 휴~우 하며
“ 하이 파이브”
손뼉을 치면서
안심하고 환~ 하게 웃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