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는 방법
며칠 전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가 ‘K-장녀’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장녀를 뜻하는 요즘 말이라나 뭐라나.
처음엔 그저 별 단어가 다 있다며 웃고 넘겼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왜 이렇게 이 단어가 목 어딘가에 걸린 가시 마냥 삼켜지지 않고 계속 맴도는지 생각해 보았다.
삼 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긴 세월을 살아온 난, 두 명의 남동생이 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이라, 참 오래전부터 딸보다는 ‘누나’로 지내왔다.
누나라는 그 단어가 주는 책임감은 실로 대단했다. 내가 보낸 시간에선 스스로 결정하기보다 동생들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당연했고, 어리바리한 모습은 없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뭐든지 알아서 척척 다 잘하는 의젓한 학생만이 존재했다.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라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남을 도와주고 배려하는 것이 편했다.
이 때문에 나는 타인에게 똑 부러지고 공감을 잘하며 책임감과 독립심이 강한 사람으로 존재해왔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내가 보는 난, 이성적인 판단력이 부족하고 정이 많아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여 거절도 잘하지 못하며,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고 의심하며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을 설치는 지극히 내성적 사람이다.
마음은 텅텅 비어있지만,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 갇혀 남에게 보이는 모습을 지극히 신경 쓰는 사람.
내가 살아온 시간은 나를 더욱 강하게 채찍질하였고, 내 눈을 가려버렸다. 완벽하지 않아도 사람은 모두 빛나고 있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더욱 나를 사랑해주는 법, 나를 사랑하는 법, 누군가 주는 사랑을 받는 법,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모른 채 살아가고 말았다.
나는 그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야 막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모든 걸 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내게 말해주고 있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기대도 좋다고, 넌 충분히 빛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