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밥을 차려주었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투정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나도 그랬었지. 물에 빠트린건 절대 안 먹는 편식이 심한 나였다. 고깃국도 안 먹는데 생선을 국으로 끓이다니. 엄마가 끓여주던 맹숭맹숭한 맛의 비린 동탯국이 싫었다.
그런데 이제 와 그 심심한 맛이 사무치게 그립다니. 엄마가 돌아가시고 수년이 흐른 지금, 나는 시장에서 동태 한 마리를 사 왔다. 서툰 솜씨로 끓이는 동탯국 냄비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이 냄새가, 이 맛이 엄마 냄새일까. 엄마 맛일까.
엄마 생각에 잠기니 유품으로 남은 물건들이 떠올랐다. 장롱 깊숙한 곳에서 나온 명품 백은 얼마나 깨끗하던지. 한 번도 쓰지 않은 새것 그대로였다. 반면 엄마가 매일같이 손에 들고 다니던 싸구려 비닐 가방은 손때가 시커멓게 묻어 너덜거렸다. 언제 저 예쁜 백을 들겠다고 장롱 깊숙한 곳에 넣어두셨을까. 결국 한 번도 쓰지 못하고 가셨는데.
다시금 엄마의 그 모습이 생각나 속상했다. 그냥 짜증이 나고 속상했다. 평소 엄마가 하시던 말씀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무엇을 사다 드려도, 무엇을 해 드려도 돌아오는 말은 늘 똑같았다. "그런 건 해서 뭐 하게."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말고 아껴라." 뭘 드려도 나는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냐고, 결국 기분 나빠서 엄마랑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고집 센 할머니였다. 살아생전 엄마한테서 따뜻하고 좋은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드물었다. 서운했고, 때로는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엄마의 낡은 지갑을 열어보았다. 아무것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돈 될 만한 것은 이미 다 정리되었을 테니. 그런데 낡은 지갑 안에서 나온 것은, 빛바랜 나의 여고 시절 학생증이었다.
사진 속 어린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진하게 웃고 있었다. 상당히 명랑해 보였다. 늘 아끼고, 쓰지 않고, 자신을 위해 무엇 하나 제대로 사지 않으셨던 엄마. 쓸데없다며 나에게도 아끼라 하시던 엄마. 칭찬에 인색하던 엄마. 무뚝뚝하던 엄마. 그 지갑 속에 나의 앳된 얼굴이 담긴 사진을 넣어 다니시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말없이 건네는 엄마의 마음이 그제야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한 엄마의 사랑은 늘 그렇게, 당신의 방식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에는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느라 바빠 엄마 생각보다는 몸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엄마에 대한 어떤 말을 한다거나, 사소하게 엄마의 손길이 닿았던 물건을 접하게 되면 가슴이 저며온다. 오늘은 이 여고시절 학생증이 나를 훅 찌르고 있다.
냄비에서 끓어오르는 비린 동탯국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엄마의 주름진 손으로 무심하게 마늘 한 숟가락을 퍼서 넣는다. 낡은 도마 위 무딘 칼로 뚝뚝 거칠게 무를 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금을 대충 손으로 휘리릭 한 꼬집 흩뿌리신다. 어느새 내 눈에서 눈망울이 일고 코 끝이 찡해온다. 그렇게 대충 끓인 듯했던 엄마의 이 국이, 이제 와 먹으니 참 개운하다. 짜증 나고 속상했던 마음 한구석이, 시큰한 그리움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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