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112를 눌렀다

더 이상 참지않기

by 히힛

그는 애플제품을 좋아하 얼리어답터. 새로운 전자기기가 나오면 써봐야 직성이 풀린다. 살 형편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e-book 리더기를 사더니 내 신용카드 할부로 아이패드를 강행해서 샀다. 내가 안된다고 해도 그가 우기며 짜증내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들어주게 된다. 그 짜증의 끝이 어떨지 알기 때문이다.


얼마 후에 사건이 터졌다. 그가 선반 위에 아이패드와 애플펜슬을 두었는데 아이패드만 있고 애플펜슬이 없었다고 한다. 애플펜슬을 찾다가 못 찾으니 슬슬 짜증을 내면서 나 때문에 잃어버렸다며 내 탓을 하기 시작했다. 찾아도 나타나지 않는 애플펜슬에 그의 짜증과 화는 점점 올라갔고, 내 마음속에서는 ‘비상사태’라는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선반 아래 수납장을 옮기니 그 위에 올려져 있던 아이 장난감이 우수수 떨어졌다. 수납장 뒤의 틈 먼지구덩이에 애플펜슬이 떨어져 있는 걸 확인하고는 나에게 청소도 제대로 안 한다며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청소를 왜 안 하냐, 먼지는 왜 안 닦냐라며 애플펜슬과는 또 다른 주제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본인은 일하면서 화장실 청소도 하고,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는데 나는 무슨 노력을 하냐며 막말을 시전 했다. 아이는 무섭다고 울기 시작했다. 그는 우는 아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내 신용카드를 내놓으라며 협박을 했다. 그는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는 상태였고 매달 마이너스였기 때문에 쓸 수 있는 현금대신 쓸 수 있는 것이 신용카드였다. 주고 싶지 않아도, 아이도 함께 있는 상태에서 그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에 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갑자기 “일해!”, “일하지 마!” 나에게 소리를 지르더니 아이의 냉장고 장난감, 요리하는 장난감 통, 내가 선물 받았던 원목 휴지케이스를 집어던져서 박살 내더니 밖으로 나갔다.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의 장난감은 왜 망가뜨리는지… 아이는 자기의 장난감이 부서진 것을 보더니 통곡하며 울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어린아이들은 장난감과 나를 동일시 여긴다고 한다. 부모로 인해 자기가 아끼는 장난감이 부서지고 망가진 모습을 보며 아이 자신의 마음이 부서지고 망가졌다고 느꼈던 것은 아닐까? 아이는 울음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었지만, 아프고 슬펐을 것 같다.


나는 난장판이 된 집을 보며 분노와 무기력과 슬픔이 밀려왔다.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내가 어떻게 해야 그가 이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멈출 수 있을까? 결론은 내 능력 밖이라는 것. 개인상담을 받은 후 결심했었던 행동을 하기로 했다. 경찰에 신고하는 것 말이다.


휴대폰으로 112 숫자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잠시 고민을 했다. 내가 일을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내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나에게 해코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은 되었지만 이번에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집에 가정폭력이 있다고 신고했다. 몇 분 후에 경찰관 두 분이 집에 도착했다. 그는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상황이었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한참 뒤 그가 집에 들어왔다.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경찰관 한 분은 나, 다른 한 분은 그를 담당해서 따로 상담했다. 나를 담당하신 경찰관이 이런 일이 예전부터 있었는지 외에 여러 가지 물어보셨고, 종이 하나를 주시며 지금은 그냥 왔다가 가지만 고소하면 법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그를 상담하던 경찰관이 나에게 오더니 그가 본인이 한 행동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는 안 그러겠다고 했다며 이야기를 전해주고 가셨다.


내심 이 일로 하여금 그의 나쁜 행동을 고칠 수 있기를 바랐는데, 큰 오산이었다. 그는 방에서 나오더니 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며,

"충격이다, 우리 관계는 끝이다, 더 이상 자상한 남편은 없다, 앞으로 폭력은 절대로 안 쓸 거다, 경찰서 가기 싫으니까."

그러면서 계속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본인 스스로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는 경찰에 신고라도 하는데 그는 내가 청소를 안 해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할 거냐며 어이없는 말을 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꼬일 수 있을까. 사람의 단점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구분할 수 없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은 허용되지 않는다. 아이 키우면서도 집을 깔끔하게 유지하시는 분들이 정말 부럽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어려운 사람이고 청소 얘기로 지적받는 게 싫어 나름대로 노력을 해도 그의 눈에는 늘 부족했다. 본인이 원하는 수준으로 집이 유지되는 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나를 들들 볶는 대신에 혼자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삶을 살면서도 가정을 유지하고 싶어서 발버둥 쳤던 나의 노력들은 그의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나 보다. 허탈했다.


나에게 삿대질하며 너는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여자라며 5~6번 큰 소리로 말하더니 눈이 돌아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언어, 감정폭력을 해댔다. 경찰관분들이 왔다 간 후라 물건을 던지는 폭력은 다행히 없었다. 행동으로 화풀이를 못하니 말로 해댔다. 씨**이라고 욕을 하고는 나갔다.


도대체 내가 이런 욕을 들을 만큼 잘못한 게 무엇일까. 억울함과 분함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그와 대화라는 걸 해보고 싶었으나 그의 화풀이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부부상담을 해보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TV 속 위기의 부부들이 상담을 통해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회복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부부상담을 할 의지가 없고 재정적인 부분이 어려운 현실이 있었다. 그에게는 한 번만 더 나에게 폭력적으로 한다면 그땐 정말 이혼할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다.


이혼은 하고 싶은데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민이 된다. 아이가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친정으로 가면 아이의 환경이 갑자기 바뀌는데 괜찮을지, 아이 키우면서 일을 몇 년 쉬었는데 경제적인 자립을 어떻게 하지.


돈을 벌고 싶다.

돈을 꼭 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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