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러려면 필요한 큰 용기

by 히힛


작은 전자제품 하나를 샀다. 음식을 끓이면서 먹을 수 있는 사각 모양의 멀티쿠커다. 야채와 고기를 넣고, 칼국수면도 넣어서 샤브샤브도 해 먹고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었다. 한 번은 삼계탕을 따로 해서 따뜻하게 먹으려고 멀티쿠커에 넣어두고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가 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짜증을 시작으로 분노를 쏟아내더니 갑자기 멀티쿠커에 담겨 있던 삼계탕을 싱크대에 그대로 쏟아 버렸다. 그는 자기가 이렇게 화난 이유가 나 때문이라며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아빠의 큰 목소리와 잘못된 행동에 무서웠던 아이는 식탁 밑에 들어가 덜덜덜 떨었다. 그 모습을 보는데 마음이 무너진다. 전문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 앞에서 부모가 큰소리로 싸우면 아이에게는 그 상황이 전쟁을 겪는 것과 같은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아이의 정서적인 발달에도 영향으로 미칠 수 있다고 하니 아이의 마음이 걱정된다. 아이에게 이런 아빠를 만들어준 것이 미안하고 후회스러웠다.

그는 나에게 한창 화풀이를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시간이 더 늦기 전에 아이에게 먹일 저녁메뉴를 고민하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국수를 해주기로 했다. 아빠가 나갔으니 저녁을 식탁에서 먹어도 되는데 아이는 방에서 먹자고 내 손을 이끌었다. 침대와 화장대가 있는 아주 작고 유일한 방으로. 아빠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 불안했던 것 같다. 그날 저녁은 아이와 화장대 위에서 국수를 먹었다. 불편할 텐데도 맛있게 국수를 먹는 아이가 고마웠고, 한편으로는 밥 한 끼 편하게 먹을 수 없는 현실에 슬펐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


그와 통화 끝에 전화로 다투게 되었는데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거기 그대로 있어. 가서 죽여버릴 거야!!”

나는 설마 하면서도 실제로 그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잠깐 집을 나가있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 얘기를 들은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은 나는 집에 그대로 두어도 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시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내가 처한 상황이 확실히 정상은 아니구나 싶었다.


분노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의 옆에서 나는 불안함만 커졌고, 그에게 좋게 말로 해보기도 하고, 고쳐지지 않으면 이혼하자고 수없이 말하기도 했다. 결혼한 지 10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내가 처한 상황은 바뀌기는커녕 좀 더 폭력이 만연되고 수위가 높아진다고 느꼈다.

내가 이혼하자고 말하면 이혼하면 자기는 바로 죽을 거라고, 어떻게 죽을지 방법 다 알아봤다고 구체적인 방법들을 얘기하는데 그때의 절망감이란. 이혼은 하고 싶은데 나 때문에 그가 죽으면 어떡하지? 또 다른 불안감이 올라왔다. 그 말은 나를 족쇄처럼 옥죄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괴로웠다.


그와 살면서 겪는 어려움을 시어머니께 전화로 전한 적이 있다. 그의 폭력적인 부분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구체적인 상황도 설명했다. 시어머니는 “그래도 나는 네가 걔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 순간 억울함이 올라왔다. 팔은 안으로 굽는구나 싶었고, 만약 시어머니에게 딸이 있는데 자기 아들 같은 사람과 결혼해서 힘들다고 해도 똑같은 말을 했을까? 아닐 것 같다.


친구가 부부관계에 어려움을 느껴 부부상담을 받았다고 했다. 상담가가 쓴 책을 읽다가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저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상담이 진행되었다. 이 분의 특징은 상담회차가 최대 3회로 짧았고, 경제적으로 상황이 어떤지 물어봐서 상담비를 조정해 주신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친구와 서로 나누던 중에 나도 상담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부상담을 하는 게 제일 좋았겠지만 전에 몇 번 부부상담 얘기하다가 싸움으로 이어져서 나 혼자라도 상담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친구에게 그분의 연락처를 받아 온라인으로 상담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동안 그와 있었던 일들을 쏟아내듯 이야기하며 눈물, 콧물을 쏟았다. 그의 옆에 있는 일이 나를 학대하는 일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10년 동안 살면서 폭력적인 모습들이 나아지지 않고 반복되는데, 그의 옆에 있으면 이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폭력은 범죄예요.”


그 말을 듣는데 머리를 뭔가로 맞아서 띵 하는 것 같았다.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가 해주는 그 말이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확인하게 해 주었다.

이혼은 하고 싶은데 이혼하자고 하면 그가 죽을 방법 다 알아놨다고 자기는 죽을 거라고 하는데 진짜 그럴까 봐 두렵다고 하니,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만약 그가 자살을 한다 하더라도 그게 본인의 책임일까요? 아니에요.”


이야기를 듣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 발에 채워져 있던 족쇄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내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참고 사랑해 주고 기다려주면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하나님은 자기 자녀가 그렇게 힘들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하나님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를 낳아보니 알겠다. 아이가 그저 행복하게 사는 게 부모로서 아이에게 바라는 최고의 삶이라는 것을. 만약에 딸이 그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서 매일이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산다고 한다면, 나 또한 아이가 그렇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담사님이 물어보셨다.

“그러면 어떻게 하고 싶나요?”


나는 망설이다 대답했다.

“… 아직은 가정을 지키고 싶어요.”


이혼하고 싶다고 무수히 많이 생각하고 그에게도 말했었는데, 상담사님의 질문에 몇 초간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니 이혼에 대한 마음은 있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혼자 아이를 어떻게 키우지?부터 주변사람들에게는 뭐라고 얘기하지?' 등등 이혼에 대한 현실적인 상황을 맞일 할 준비가 안되어있었다.

아직은 가정을 유지하고 싶다고 하니 상담사님은 그의 폭력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그으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 선을 또 넘으면 경찰을 부르는 용기도 내어보기로 했다. 3회의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 감정을 넘어서 이성적으로 나의 상황을 보게 되었고, 상황을 직면할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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