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 고민했던 이혼의 타당성
친정으로 나와서 심리 관련한 유튜브를 많이 보았다. 이혼을 결심했음에도 내가 하려는 이 이혼이 타당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정신건강학과 의사가 진행하는 채널을 보는데 데이트폭력에 대한 내용이 나왔다. 데이트 폭력은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언어적, 정서적, 경제적, 성적, 신체적 폭력을 말하는데 데이트 폭력 가해자들은 재범률이 높고 신고를 하면 보복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데이트 폭력이 있을 경우, 미국은 의무 체포제, 영국은 강압적 통제 처벌, 일본은 가정폭력 방지법 적용이 되지만 우리나라는 유독 약하게 적용되는 부분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정폭력이라도 가해자의 합의가 없으면 합의이혼은 불가능하다. 가정폭력으로 인해 신고가 되면 합의이혼이 아니더라도 피해자가 원하면 이혼할 수는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 이혼소송이라는 힘들고 먼 길을 가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고, 한 사람이 파괴되는 경우라면 이혼이 쉬워지면 좋겠다. 이혼을 준비하며 답답한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들의 특징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로는 충동 조절이 어려운 사람.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감정을 통제하고 억누르는 힘이 약하다 보니 밖으로 폭력성이 드러나 버리는, 방어기제 중에 굉장히 미성숙한 행동화(Acting-out)를 해버린다고 한다. 열등감이 심하고 자격지심이 있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상대방의 별 뜻 없는 말이나 행동에 나를 무시한다고 여겨서 폭력 성향이 드러나거나, 질투와 의심이 많은 분들이 있다고 하는데 큰 공감이 되었다. 무시하지 않았는데 자기를 무시했다며 격한 화를 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편집성 인격 성향으로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은 사람들, 의처증이나 의부증처럼 상대방의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을 하는 사람들. 의처증까지는 아니지만 과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가해자들이 사실은 가정에서 아동 학대 피해자였던 경우가 굉장히 많다고 한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을 물리적으로 약한 존재에게 힘을 행사하면서 채우려고 하는 욕구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고.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최대한 빨리 위험 신호를 감지하고 관계 정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부분을 보며 '그래,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 특성에 대한 설명도 있었는데, 바로 구원 환상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마저 이 사람을 떠나버리면 이 사람은 어떡하나', '나는 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야'라는 환상을 가진 분들이라고 나오는데 나는 마음이 뜨끔했다. 내가 딱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구원환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구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폭력을 행사한 상대가 울고 빌면 '이 사람이 정말 뉘우치는구나, 나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데'라고 생각하는데, 때리고 울고불고 비는 건 하나의 세트이기 때문에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 번이라도 욕설, 고성, 물건 던지기와 같은 행동을 보이면 무조건 도망가야 한다고. 처음부터 심한 폭력을 쓰지 않고, 폭언 -> 물건 던지기/부수기 -> 신체적 폭력 순으로 간다고 했는데 내 경험상으로 이 순서가 정확히 맞았다. 내 상황과 나를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간들이었다.
감정이 조금은 내려간 몇 달 후, 그를 아이와 함께 보았다. 같이 밥을 먹고 공원을 산책하며 그와 비로소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생활이라는 게 부부가 서로 적당히 의지하면서도 거리감을 두는 것이 필요한데 入 (들 입)이라는 한자와 같이 막대기를 세워놓은 상황에서 그가 나에게 너무 기대고 있었고 그의 과한 의지에 나는 제대로 살 수가 없었다. 별거를 하며 내가 빠져나오니 그는 쓰러져버렸다.
만나서 이혼하자라는 말이 그에게 자극이 될 것 같아서, 돌려서 법적인 한부모로 인정되려면 혜택들을 보려면 서류정리가 돼야 하니 법원에 가서 서류정리를 하자고 했더니 “그럼 나한테는 무슨 혜택이 있는데?”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기가 찼다. '아이를 내가 키우고 있는데 이건 무슨 말이지? 한부모의 정의를 모르는 건가?' 여전히 본인이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피해의식에 빠져 다른 사람의 힘듦은 들어오지 않나 보다.
나는 그에게 “사람이 바뀌려면 아주 오래 걸려.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몰라. 그런데 그 기간 중에 나에게 한 번이라도 화를 내면 그 한 번이 나에게는 허용이 안될 것 같아. 사람에게 화는 기본 감정인데 화를 내지 않고 산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재결합은 힘들어.”라고 얘기하니 그는 화를 냈다. 황당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본인의 마음의 어려움이 너무 크니 어떻게든 빨리 채우고 싶은데 내가 거절하니 거절감이 화를 내는 건가? 그가 이럴수록 나의 결심은 확고해졌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 결심이 틀리지 않다는 걸 보여줘서. 그에게는 나와 아이라서가 아닌 외로움을 채워줄 누군가가 필요한 거구나 생각했다.
사실 그가 나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예전에 그가 친구를 만나러 나갔는데 그와 통화를 하다가 자기 친구와 통화해 보라고 해서 잠깐 전화로 대화를 했다. 그의 친구가 나에게 “oo이가 아내분을 아주 많이 의지하더라고요.”라는 것이 아닌가? 그에게 들어본 적이 없던 말이라 “저를요?”라고 되물었다. 마음속으로는 '의지를 많이 하는 상대에게 그렇게 막 대할 수가 있는 건가?' 싶었고, '그는 화나면 저를 막 대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기에 그 말을 “아 그래요?” 하며 넘겼다.
그와 같이 산다는 가정을 했을 때 내가 언제 행복할까 생각해 보면 그가 감정을 잘 조절해서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의 행복이 그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너무 슬픈 일이었다. 나의 행복이 그의 어떠함과는 상관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그의 재결합할 수 없다.
이혼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한 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아이 양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그의 도움을 받고 싶었고 그에게 아빠로서의 책임은 다했으면 하는 마음에 양육비(40만 원)를 보내달라고 했으나, 그는 그걸 왜 줘야 하냐고 되물었다. '자기 발로 나가놓고 왜 돈을 달라고 하냐.' 이런 생각인 듯했다. 양육비도 못 받는 상황에서, 서류정리라도 돼서 한부모 혜택이라도 받고 싶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마음이 어려웠다.
종종 그에게 '서류정리하자.'라는 문자를 법원에서 만나자고 메시지 보냈다. 항상 그에게 답은 없었다. 문자를 보낸 다음 날은 출근하는 날이라 일찍 일어나 휴대폰을 봤는데 그에게 더 이른 시간에 답장이 와있었다. "법원에 안 가도 돼. 오늘 자정을 기점으로 자기는 세상에 없는 사람일 테니 아이 관련한 건 다 알아서 해." 라며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였다. 별거 중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가 이거였다. 같이 살 때도 "이혼하면 자살할 거야." 라며 자살협박을 했었는데, 그의 상태와 상처를 알기에 혼자 지내는 '그가 자살할까 봐'가 나에게는 두려운 일이었다. 그 일이 현실로 일어난다고 해도 나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감정적인 상처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마주하고 싶지 않던 현실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답장을 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야 했다. 나의 상상은 이미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그때 나는 어떻게 하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에 기도를 했다. 그가 자살하지 않고 꼭 살게 해달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아이에게 아빠가 자살했다는 그런 상처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와 퇴근길에 통화를 했는데 그는 다 죽어가는 작은 목소리로 "이혼하더라도 지금은 아닌 것 같아. 결혼해서 고생 많이 했는데 엄마가 유산을 물려주면 그걸 주고 싶어. 아이가 크면 돈도 많이 들잖아. 그때까지 기다려줘."라며 양육비 외에 무얼 더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그는 갑자기 유산 얘기를 꺼냈다. 본인 딴에는 이혼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고, 그에게 자살협박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다행히 그 말은 잘 받아들였다. 이번 일을 통해 여전한 그의 미성숙함이 답답하고 화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