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다고 사수(師授)가 아니었던 건 아니야.

by 김까치

어느날, 나는 대답이나 질문의 요지를 전화받을 때, 알려준 직상 상사에게 물었다. U팀장은 테스트가 2번 정도 떨어졌는 데도 나가라는 말이 없었다.


“ 저처럼 떨어진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럼 그 사람은 이런 테스트 몇 번 보고 나갔어요? ”


그는 말하기를 꺼렸다.


“ 제 동기 중에 (낙오자가) 있었는 데 2번이 최대였어요. 지금 거의 역사를 쓰고 계시는 걸껄요. 그 이후로 더 있다는 건 처음 들어요. ”


아싸. 그럼 내가 대기업 계열사 역사에서 기록되는 3번째가 되야지. 그 뒤로 쭈구리 강아지처럼 나는 전략과 행동을 모두 바꿨다. 하지만 웃을 수만 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청취할 수 있는 선배들은 나보다 10살이 어렸다. 그들을 청취하고 (감시) 모니터링하며, 그들이 괴로워한단 걸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때로 과장에게 부당함을 갖고 개긴 것인지 얼굴이 상기된 선배는 나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며 따뜻한 말을 전해주었다.


“이번엔 시험 통과하실 거에요.”

“그럼요. 꼭 붙어야죠. 너무 잘하시네요. ”


어색하게 웃음. 다들 힘든 데도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늙은 이가 나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나아가 시험을 통과하니, 마니했던 것이 공무원 준비하던 때와 겹쳐보였다. 어차피 그들은 정상궤도의 사람이었고, 나는 비정상궤도에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청취를 다 끝내고 스피커를 어디에 갖다놓으라고 듣지 못한 내가 교육실에 스피커를 갖다놓자, 과장이 나에게 따져 물었다.


“ 이걸 왜 여기다 갖다놨어요? ”

“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어서……. ”


그녀는 스피커를 갖고 가버렸다.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었고, 동기들이 모여있는 단체카톡방에서 나만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가 오고가자, 그 단체카톡방도 보기 싫었다. 너무 억울해서 그때부터 일기를 더 열심히 썼고, 대기업 계열사 뿐만 아니라 대기업 자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집 근처 카페에서 ’아이스 모카‘를 시켜먹고 눈물로 이 상황에 대해 깊게 고민했다.


’ 퇴사하고 싶어.‘

’ 그럼 나 어디 가? 더는 못 버텨.‘

’ 왜 이런 문제 속에 나를 남으라고 한 거야? 끝난 게임 뒤에 남으라는 거잖아. ‘


때마침 비가 왔고, 비 내리는 거리를 통창을 통해 멍하니 보고 있던 나는 기상학자도 비오는 거 연구하듯이, 그지같은 알고리즘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기업에 대해 전부 아는 것이 아니었고, 말단직원이 기밀에 접근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하나는 분명했다.


[ 전화가 바로 꽂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딜레이를 복잡하게 유도하는 알고리즘을 짜서, 시간을 번다. 근데 누가 이러한 이득을 보는 거지? ]


나의 사수가 이득을 번다고 하기에 그들은 매우 지쳐보였다. 그때, 계열사 뒤에 있는 본사가 관여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직감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바로 업무에 투입될 수 없는 사원에 대해 회사가 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편의점에서 일할 때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카페 건너편에는 내가 멸시당한 편의점이 있었다. 그 편의점을 보고 나는 자기소개서에 쓸 소재를 갈취하듯이, 회사에서 뭘 가져올지를 생각했다. 회사 내부에는 상비약이 없었다.


“ 두통약 있어? ”

“ 아니. 없는 데. 사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아, 근데 B가 갖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 데.”


구급상자가 휴게실에 있으면 좋겠고, 긍정적인 말을 보면 일하는 사람들이 ’긍정성‘을 갖고 ’부정성‘을 이길텐데 하는 마음을 담아 한 장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검색을 하다가 현재 경영진의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임금을 인상시켜달라고 하고 있던 것이었다! 회사내에서 안나가는 사람은 회사의 당간지주같은 인물들이었다. 그걸 보고 또 한편으로는 그 구조가 본사의 압박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모습이 나같아 보였다.


’0과 1의 싸움. 본사인지, 아닌지는 나의 생존을 염두하고 있지 않다.‘


나는 내가 전생에 무슨 대죄를 지어 이런 일을 경험해야하나 생각했고, 절에 가서 1000원을 시주한 뒤 절을 했다. 나아가 그때 성당도 찾아가서 촛불을 밝혔다. 그렇게 다시 돌아간 직장은 전과 다른 모습으로 보여졌다. 이 모든 것을 버티면서 보고도 눈물로 눈이 멀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내가 스트레스 받아 내 손을 찧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시간은 나의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버틴 적 없는 사람의 기록이고 싶었고, 나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들을 보여주었던 어린 사수들에게만 득이 되었으면 했다. 내가 퇴사를 결심한 날, 나와 비슷하지만 내 마음에 슬픈 감정을 안겨주었던 사수를 챙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수는 이렇게 말했다.


“ 같이 일하던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 친구는 귀엽게 생긴 악마캐릭터를 좋아했어요. 더 오래 있을 줄 알았는 데 관뒀더라구요. 저만 오래 남아있어요. ”


다음 콜이 들려오기 전까지 나눈 대화였고, 나갈 때가 되어서 나의 본심을 전해줄 수 있었다.


“ 여기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건 제 잘못일 거에요. 목 아프니까 도라지즙 많이 먹어요.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


마지막으로 편지를 남기고, 나는 떠났다. 나의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화낼 나르시시스트가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삶을 생동감있게 살았던 그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인 것도 아니었고, 나이가 적다고 어른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회피 아닌 회피. 하지만 나는 그 일로 내가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 나이가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배우는 것이 어렵지 않아졌어요. 고마워요. 앞으로 그런 세상이 나에게 더 펼쳐지더라도 당신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한 수를 보탤 것이지, 그런 당신들을 괴롭히는 세상을 만드는 데는 조력하지 않을 겁니다. 나도 선택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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