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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한 학급에 가다

하늘을 날아가는 펭귄

by 현목

나는 거울에 다가갔다. 핑크색 와이셔츠에 어울리는 자줏색에 빗금이 간 보우타이를 골라서 목에 조였다. 들판에 자라는 풀처럼 싱싱한 아이들에게 격식 차린 분위기는 어울리지 않을 게다. 새로움을 찾는 그들의 눈이 활짝 열려야 한다. 학부모를 초청해서 아이들에 좋은 말을 해달라는 특별한 시간이지만 거기서 공자왈 맹자왈 할 순 없는 노릇이다. 무언가 튀어야 그들은 마음을 열 것이다. 그래도 이마에 희끗하는 흰머리가 학생들에게 믿음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흘낏 지나갔다.


내가 오늘 가야할 학급은 4학년 1반이다. 멀리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여울물 소리처럼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교실의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어린아이들이 웃음이 함박눈처럼 내게 내려왔다. 숨을 가만히 들이쉬고 손잡이를 돌렸다. 순간 와 하는 아이들이 소리가 밝은 빛 때문인지 눈부셔서 눈을 찡그리고 발을 교실 안으로 들여놓았다. 교탁에 서자 아이들이 튤립꽃처럼 꽃대에서 올라와 흔들면서 동그란 눈으로 웃었다.


자, 오늘은 너희들에게 과제를 내겠다. 밖에다가 내가 펭귄을 준비했단다. 오늘의 테스트는 너희들이 그 펭귄을 얼마나 하늘 높이 날리느냐에 따라 등급을 매기겠다. 우선 자신이 펭귄의 뚱뚱한 배에 튕겨서 나가떨어지면 완전 낙제 점수 F다. 너희들이 펭귄을 날게 하는 데는 기술이 필요해. 그건 너희들이 연구를 해야 한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잘 머릿속을 생각해서 할 수 있나를 오늘 선생님은 주목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아참, 어디까지 말했더라, 펭귄을 자기 힘으로 업어서 겨우 10센티미터 올리면 그건 E점수야. 알았지. 그런 식으로 가장 높이 펭귄을 날게 한 사람에게 A점수를 줄 거다. 자 그럼 시작한다.


철수야 너 나와서 해 봐라. 옳지 그렇지 너는 폭력을 쓰는구나. 펭귄의 엉덩이를 걷어차니까 펭귄이 놀라서 위로 날아갔네. 아무튼 20센티미터 올라갔으니 너는 D점수를 줄 께. 제법 올라가기는 했으니 방법이 좀 그렇다. 나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것이 나는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해.


그 다음 너 눈이 초롱초롱한 영희가 한 번 해 볼까. 아니 너는 왜 펭귄을 업고 어딜 가는 거야. 우와 생각이 좋네. 계단 위에 올라가서 펭귄을 떨어뜨리다니 머리가 영리해. 펭귄이 놀라서 뒤뚱뒤뚱 걷고 있네. 네 생각은 좋다만 결국은 펭귄에게 상처를 준 거잖아. 아무튼 30센티를 올라간 셈이니 C점수를 주는 것은 당연하겠다.


야, 저기서 눈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서우가 있네. 너의 아이디어는 무얼까. 선생님도 궁금해 죽겠다. 자 서우가 한 번 해볼까. 서우는 머리가 좋아서 항상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만들어 내거든. 오늘도 기대가 되네. 얘들아 서우가 펭귄 등뒤로 간다. 업으려고 하나, 아, 그렇구나 서우가 펭귄 뒤로 가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는구나. 아 알았다. 펭귄을 간지러서 지가 지풀에 하늘로 날게 하려는구나. 펭귄이 죽겠다고 웃으면서 하늘로 40센티나 뛰어올랐어. 과연 서우의 아이디어는 훌륭해. 축하한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건 대단하지. 서우야 너는 B점수다. 아니 서우가 왜 새초롬해졌지, 아 알겠다. A점수를 못 따서 그렇구나. 서우야 너는 이제 2학년이야. 여기 4학년 오빠언니들과 같이 해서 B점수 얻은 것도 대단하단다.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저 구석에서 고개를 들지 않고 뭔가 곰곰이 계속 생각에 잠긴 서윤이가 할 차롄데 뭔가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서윤아 네 차례다. 너는 어떻게 펭귄을 땅에서 날게 할 수 있겠느냐. 제 몸무게도 못이겨서 저렇게 뒤뚱거리는 펭귄은 사실 우리끼리 얘기지만 좀 웃기는 애가 아니냐. 서윤이가 진지한 모습으로 펭귄 앞으로 다가가네. 근데 펭귄에게 손도 대지 않고 어떻게 펭귄을 날게 할려는 거지. 무슨 마법의 주술을 외우려고 그러나. 에이 그런 방법은 만화에서나 통하지 여기는 안 통해. 서윤이가 펭귄의 귀로 가네. 앗. 저게 뭐지. 서윤이가 펭귄의 귀에다가 대고 뭐라고 소곤대니까 펭귄이 깔깔 웃으며 죽겠다고 두 날개를 파닥거리네. 으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날개가 완전히 엔진처럼 날쌔게 돌아가네. 으악 이건 뭐야 펭귄이 50센티 높이 뛰어 오르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날아가네. 저 푸른 하늘에 둥실 떠가는 구름 곁으로 날면서 펭귄이 날개로 인사 하는구나. 잘 있어라. 나는 간다고.


서윤아 너는 당연히 A점수다. 아니 A하고 플러스 쓰리야. 도대체 넌 펭귄에게 뭐라고 말했는데. 저요 별 말 안 했어요. “너는 날 수 있다”라고 말한 것뿐인데요. 이때 내가 잘 하는 말이 있지. 유구무언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한마디는 해야겠다. 너희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넓은 들판 같은 마음이 펼쳐져 있단다. 설마 설마 네가 장자의 소요유에 나오는 ‘대붕’을 읽은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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