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스리'
책 벌레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책에 몰두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책하고 담을 쌓고 살지는 않습니다. 책을 기회만 있으면 읽으려고 노력한다는 편이라고나 할까요. 돈독한 독서가라기보다는 겉멋에 흔들거리며 책을 읽는답시고 무언 중에 자랑하는 편이라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사기만 하지 실제로 열심히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의 서재에는 읽지 않은 책이 수두룩합니다. 아내는 저의 책 사는 모습을 보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꼭 여자들이 화장품 보면 안 사고는 못 배기는 것과 같아요.” 가혹하게 말하면 지적 허영에 들떤 사람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는 줄을 치지 않으면 읽은 기분이 안 납니다. 옛날에는 붉은 색연필로, 그 다음에는 노란 형광펜, 그 후로는 붉은 형광펜과 초록 형광펜을 사용했습니다. 지금은 연필을 가지고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줄을 긋고 책 옆의 빈 공간에 별표를 하나, 둘 혹은 셋을 매깁니다. 읽은 부분에 대해서 제 나름으로 감상이 일어나면 연필로 짧게 코멘트를 합니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는 것도 있고 저자가 말한 데 대하여 반대의 의견을 서술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자연히 저는 책을 험하게 씁니다. 제 아내가 제가 읽은 책을 보려고 할 때는 줄 친 것이 걸리적거려서 짜증이 난다고 합니다. 그래도 할 수 없지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 읽은 맛이 나지를 않으니까요. 따라서 제 책은 나중에 헌책으로 팔 수도 없습니다.
책을 읽으면 독후감을 써야 하는데 저는 저 나름으로 쓰는 방식이 있습니다. 우선 제가 머리가 좋지 않으니까 그냥 읽어서는 머리에 거의 남는 게 없습니다. 중고등학생 때의 버릇이기도 하지만 책을 읽고 책 내용을 요약하여 노트 필기를 해야 그제야 제 머리 속에 읽은 책의 내용이 비로소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독후감을 쓰게 됩니다.
저자가 말한 것 중에서 자신에게 중요했던 것, 혹은 감명 깊었던 것을 세 가지 씁니다. 사이토 다카시 선생은 그의 책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에서 ‘3의 법칙’이라고 하여 세 가지를 드는 것을 대단히 중요시했습니다. 둘은 지루하게 느껴지고 셋을 넘어가면 읽는 사람이 기억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독서 노트를 쓰는 것은 좋기는 한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저도 시간 소모가 많아서 다른 방법들을 시도해 보았으나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정말 중요다고 생각하는 책은 독서 노트를 쓰고 있습니다.
그 다음의 경우는 책의 내용 중 특히 감명을 준 부분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피력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 책이 챕터마다 같은 형식으로 진행된다면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챕터에 대해 언급하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도 이른 바 ‘빅 스리’를 들어서 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세 번째 가바사와 시온은 그의 책 『외우기 않는 기억력』에서 마구쓰기를 권합니다. 마구쓰기는 사실 나탈리 골드버그가 주장한 프리라이팅과 대동소이합니다. 프리라이팅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잘 쓰려고 하지 말고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써라. 둘째는 거침없이 쉬지 말고 써라. 만약에 생각이 안 나서 끊기게 되면 그냥 가만히 있지 말고 차라리 ‘왜 이렇게 생각이 안 나지’라고 공책에 써라. 셋째는 정한 시간이 되면 예컨대 10분 혹은 20분이 되면 무조건 연필을 놓아라.
가바사와 시온은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 며칠 미루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더듬어 마구 쓰라는 것입니다. 프리라이팅의 세 가지 원칙대로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퇴고를 할 때 다시 첨삭을 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냥 책의 내용을 복덕방 주인이 내놓은 집에 대해서 설명하듯이 아무런 느낌도 없이 그냥 여기저기 이런 내용이 있다고 알려주는 식의 독후감입니다. 이런 형식은 인터넷 서점을 들어가면 ‘책 소개’가 나오는데 이건 요즘 홈쇼핑에서 상품 선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은 지식을 우리의 머리에 기억시키는 작업입니다. 그런 행위를 가바사와 시온(樺沢紫苑)이라는 일본 정신과 의사는 자신의 책 『외우지 않는 기억력』에서 ‘인풋’이라고 했습니다. 그에 반하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은 그에 반하여 ‘아웃풋’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책을 읽기만 하는 것도 결코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어느 순간에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혜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웃풋’이라고 하는 독후감을 통해서 우리는 기억을 다시 심어 놓습니다. 후에 독후감을 다시 읽으면 그것이 기억의 창고로 들어가는 색인의 역할을 합니다. 당연히 독후감을 쓰면 지식의 활용이라는 면에서 훨씬 유익한 효용성이 있습니다.
책은 왜 읽을까요? 우선은 책 안에 있는 정보를 기억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배우려고 합니다. 배움을 통해 더 나은 지식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또는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이용하여 삶의 지혜로 만들어 가기도 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소이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