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시오. 잡스 씨. 보기보다 일찍 죽었네요. 나는 워낙 무식해서 국민학교도 중퇴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정말 뭐 할 일이 없어 집에서 죽어라고 뭘 만들다가 이 지경이 되었소이다. 내가 아마 학교를 제대로 다녔다면 모르긴 해도 이런 유명세는 치르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보니 운명이란 정말 돌고 돌아 어떻게 튈지도 모르는 개구리 같소이다.
에디슨 선배님은 많이 늙었네요. 무슨 겸손의 말씀을 그리도 하십니까. 아메리카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청소년들이 선배님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답니다. 저도 학생시절부터 선배님을 따라잡자고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고요. 솔직히 말해 어떻게 하다보니 이렇게 굴러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배님의 운명론에는 일응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좀 미안한 말이만 자네 가족사는 정말 복잡하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만 그런 동네에서 자네 같은 인물이 나올 줄이야 누군들 생각이나 했겠나. 그건 그렇고 자네는 어떻게 검퓨터 업계에 진술했는가.
예, 저도 컴퓨터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일이 그렇게 됐습니다만, 어느 날 내 친구하고 이걸 하면 무언가 떼돈을 벌 수 있겠다는 감이 들더라고요. 하긴 어느 놈인들 살면서 그런 감이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단지 제가 운이 좋아서 모든 게 다 맞아떨어진 셈이죠. 물론 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런 요행도 결코 무시는 못한다고 제 경험을 말해 줍니다. 선배님은 발명왕이라는 명예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무엇에 대해서 가장 뿌듯한 자부심을 가집니까.
글쎄, 워낙 잡다한 걸 해놓아서 말하기 미안하지만 나는 내가 발명한 것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네.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축음기지. 사람들은 내가 무슨 백열등의 필라멘트를 발명해서 인류역사에 어떻게 공헌했다고 나팔 불지만 나는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내가 보기에는 오직 무슨 발명만 한다니까 인정사정 없는 놈으로 알기 쉬운데 사실은 나는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감상적인 놈이라네. 내가 가장 행복한 시간은 위스키 한잔 마시면서 축음기를 틀어놓고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들으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그 시간만은 내게 행복하다는 느낌을 주는 시간이지. 그러니 내가 축음기를 얼마나 아낄지는 상상이 가지 않나.
하긴 그렇군요. 저는 사람들이 그저 이문에만 아귀처럼 달려드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서 도무지 감정이 있는 인간으로는 취급해 주지 않는 걸 이미 알고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선배님처럼 오디오를 틀어놓고 음악을 즐기는 건 아닙니다. 하긴 저는 제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오는 순간만큼 행복한 시간은 없습니다. 뭐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없다는 게 저의 신조입니다만, 하지만 저도 췌장암에 걸려서 죽을 고생을 하다 보니까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하는 걸 느끼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지요. 새삼 득도한 것처럼 겸손한 척 하는 것도 제 체질과 맞지 않아서 돈으로 끝까지 버텼지요. 물론 그것으로 승산이 안 된다는 건 압니다만 단지 제 성질대로 한 것입니다.
애석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 그나마 자네가 똥배짱이라도 부리는 그 성질머리는 내가 배울 만도 하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지만 지난 세월 뭐 후회되거가 화 나는 일은 없었나.
왜 없었겠습니까. 지금도 생각하면 입에서 쌍시옷이 튀어나옵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배신입니다. 그중에서 믿었던 친구라는 놈이 안면몰수하고 내가 창업한 애플에서 나가라고 할 때 정말 죽고 싶었지요. 나중에 다시 성공해서 그놈의 애플에 들어가서 복수를 한 셈입니다만 인간이 아무리 어려워도 친구를 배신해서는 안 됩니다. 하긴 배신이라면 저 극동의 조그만 나라가 더 유명하긴 합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