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입 다물고 쓰면 된다’
저 같은 이류 ‘작가‘―나탈리 골드버그는 자기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라고 격려합니다만―에게는 ’브런치‘가 매우 매력적인 글쓰기 플랫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제 글을 올린 지 딱 2주인데 ’브런치‘에 관련된 유튜버들이 여기저기 있어 보니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유튜브 주인들이 너무 상업적이라서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 거의 노골적인 분들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직업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특히 책쓰기에 대해서는 예전에는 막연히 글이 다 쓰여지면 정리해서 책이나 한 권 낼까 하는 정도였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목차를 미리 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던 중에 책을 하나 써보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제 손주들과 길게는 7년, 짧게는 4년 동안 글쓰기 공부를 했는데―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만 애들이 머리가 커지니 자기들 할 일이 많다고 옛날만큼 따라오지 않습니다―그 경험담을 책으로 써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책 제목도 만들었습니다. 제목은 『은유는 몽상하는 촛불이야』이고 부제는 ’손주들 가르치다 내가 오히려 배웠다‘로 정했습니다.
목차를 어렵사리 정하고 글을 쓰려고 하니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책을 쓴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에세이 쓴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써라고 조언합니다만 말이 쉽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무언가 그럴 듯한 내용을 담고 싶고, 남한테 고작 그걸 말하려고 책을 쓰느냐는 말이 듣고 싶지 않으니 내용의 수준이 높아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자판이 두드려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렵사리 ’프롤로그‘는 A4용지 한 장 반은 완성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다음 목차인 ’프리라이팅은 자유롭지 않다‘에 대해서 쓰려고 하니 머릿속에서만 무언가 왔다리갔다리 하고 도무지 쓴다는 것이 두려워 피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원인도 알고 그러지 않고 쉽게 쓰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옛날에 제가 글쓰기 책을 정리해 둔 것을 찾아서 읽어보려고 했습니다. 예과 2학년 때부터 문학 서클에 가입해서 글쓰는 것을 시작으로 해서 유치하지만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 노력을 한다고 했지만 결국 문재(文才)가 없다는 것을 이제사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싱글이 안 되니 보기 플레이어로 만족해야겠다고 타협하는 셈입니다
거의 오십 년 세월 동안 글쓰기 책을 읽으면서 저에게 영향을 많이 끼친 책은 너덧 가지 있습니다. 오규원의 『현대시작법』,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며 사는 삶』, 수잔 티베르기앵의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빌 루어바흐, 크리스틴 케클러의 『내 삶의 글쓰기』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엄경희의『은유』였습니다.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글쓰며 사는 삶』을 읽어보려고 하니 책의 삼분의 일밖에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 다시 읽어보면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머리가 좋지 않아서 책을 한 번 읽으면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책들은 거의 반드시 요약하여 저장해두고 다시 읽어봅니다. 그래야 그제사 겨우 내용 파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탈리 골드버그가 「간절한 열망」이란 제목에서 쓴 글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당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이 중요할 뿐, 그 생각이 오른지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글로 말하라. 그 글이 “파란색 말을 보았다”로 시작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세상에 파란색 말이 어디 있느냐고 따질 권리는 없다. 당신이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당신이 보는 것을 말하라. 머리 위 천장에서 돌아가는 선풍기도 좋고, 빨간색 코카콜라 종이컵도 좋고, 흰색 플라스틱 칼도 좋다.“
그렇습니다. 제가 글을 잘 쓰려고 불안해 하고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탈리의 말 대로 ’그냥 입 다물고 쓰면‘ 됩니다. 이걸 못 써서 끼니를 굶을 일도 없고, 명성을 못 얻었다고 사는 데 지장 있는 것도 아니고, 안 할 말로 책을 못 내도 그만입니다. 다만 저의 길을 가면 됩니다. 고산준령을 걷는 인생만이 훌륭한 것은 아닙니다. 동네 산의 오솔길을 걸어도 삶의 의미는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의 글쓰기도 ’그냥 입 다물고‘ 써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에 딱히 연연할 필요도 없고 그럴 이유가 없다고 나탈리는 말하고 있습니다. 쓰는 것 자체가 자신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저의 ’프리라이팅에 자유는 없다‘라는 글을 이런 마음으로 다시 다가가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