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목 Feb 21. 2022

『리딩으로 리딩하라』 이지성

고전인문학이 천재를 만든다?

  오랜만에 중학교 1학년이 된 손자가 여름방학이 되어 집으로 놀러왔습니다. 그의 손에는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방학 숙제인데 이달 말까지 독후감으로 써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흥미가 있어 책을 펼쳐서 목차를 보았습니다. 뭔가 너무 메뉴가 화려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도 이 책을 보고 독후감을 쓸테니까 너도 독후감을 쓰면 서로 비교해 보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따로 줄을 그어서 기록해 두어야 할 필요는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페이지의 여백에 그때그때마다 제가 느낀 점을 정리하고 나중에 저의 결론을 말하려고 합니다.


  머리도 나쁘고 수업 태도도 좋지 않아서 퇴학도 당하고 대학 입시에도 낙방하고 대학 들어가서도 나와서도 별 볼일 없던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그런 아인슈타인이 인문고전 독서에 심취하여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지성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인문고전에 열중하여 그의 인간성이, 교양이. 인생관이 어떻게 달라졌다는 말보다는 실용적으로 위대한 천재적 과학자가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이게 저에게는 어쩐지 약간은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똑같은 논리를 레오나드로 다 빈치에게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전을 읽고 회화, 조각, 해부학…… 등에서 천재적 업적을 낳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무언가 논리의 비약이 있는 느낌이 듭니다. 존 스튜어트 밀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지성은 이런 말을 썼습니다. 「그 정수(인문고전의)를 완벽하게 소화하면 누구나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를 경험할 수 있다. 1. 바보 또는 바보에 준하는 두뇌가 서서히 천재의 두뇌로 바뀌기 시작한다. 2. 그동안 억눌렸던 천재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3.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천재적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천재’입니다. 인문고전을 읽으면 쉽게 말해 천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비약과 단순한 일반화를 가지고 논리를 편다는 데 한 순간 숨이 막혔습니다. 고전철학, 고전문학이 한 사람의 인품, 의식, 교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자기 스스로 사고하지 않고 증례보고(case report)만 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대학들이 인문고전 독서를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하고 있다면서 그 예를 세세히 들고 있습니다, 반면에 한국대학은 교수도 학생도 인문고전에 대해 연구도, 독서도 하지 않는다고 신문기자가 기사를 쓰듯이 얘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인문고전이 뭔지 그 자체를 사고하고 있지 않고 인문고전의 환경만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훑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유는 말하지 않고 또 대뜸 남의 얘기입니다.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이라고 따옴표까지 쳤습니다. 카를 비테식 교육은 인문고전 독서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천재 교육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적어도 과학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많은 실험 데이터에 의해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몇 명의 성공 케이스로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문고전을 읽지 않고서도 성공한 경우가 있는지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지성은 이런 심한 말을 합니다.

  「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력한 사람이 될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육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 (인문고전을 집필할 위대한 천재들은 우리나라의 학교제도를) 십중팔구 학생들의 두뇌를 죽이는, 창조성을 말살하는, 노예를 만드는,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하루빨리 개혁해야 할, 민족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새롭게 고쳐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나라 학교제도가 지고지선은 아니더라도 이런 식으로 양단하는 사고방식이 과연 인문고전을 읽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까 싶습니다. 해방 이후에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렇게 무능력한 인간들을 교육시켜 왔다면 어떻게 한국이 세계 경제에 10위 안팎이니 하는 말이 나오는지, 미흡할지 모르나 각 분야가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 아닐까요. 이지성의 관심은 인문고전을 읽고 한 인간이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자신의 인성을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보다는 유명한 과학자, 유명한 교수가 되는 출세만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편향된 의식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미술 영재 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다 빈치, 피카소, 로댕, 세잔, 샤갈, 마티스 등 미술의 천재들 가운데 인문고전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건 당사자들이 천재인지 정말 확인해 보았는지 모르겠네요. 이분은 천재를 대단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걸핏하면 천재 운운하는데 말입니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점을 지적해야겠습니다. 하나는 인문고전을 읽은 사람이 천재로 바뀌는데 그것이 몇 퍼센트인지, 백 퍼센트인지, 혹은 오십 퍼센트인지 조사를 해보고 하는 말인지 밝혀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인데―인문고전을 읽으면 어떤 기전(mechanism)에 의해 IQ가 150이상 올라가는지 그걸 구체적으로 말해야 하는데 이지성은 기전은 생략하고 자꾸 일어난 결과만 가지고 천채라고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것도 완전히 통계적으로 증명된 것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혹시 인문고전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지능지수가 변함이 없는 사람은 없는지 아니면 오히려 떨어진 경우는 없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지성은 분명히 인문고전을 많이 읽었을 것이고 자신도 읽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당연히 천재가 되어 지금쯤은 인류대학 교수나 유명한 과학자로 혹은 노벨상 후보자로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지성도 인문고전이 교양을 위해서 읽는다는 것을 들은 바는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인문고전은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치기 위해서 읽는 것 아니냐는 반론을 펼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달콤한 말만 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의 품위니 하는 그런 ‘달콤한 말’보다는 남보다 뛰어난 천재성을 발휘하는 것만이 인간으로 사는 의미라는 말 같습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요. 인문고전을 읽으면 부자가 되고 인류 대학 교수가 되고 노벨상을 타는 이유를 이지성이 말하기는 합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생각하는 태도란 곧 철학자의 사고방식인데 그 핵심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이 사고방식은 필연적으로 군중의 사고방식과 반대되는 것이다.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군중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 때문이다」


  조지 소로스 같은 투자자가 인문고전을 읽음으로써 성공하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 군중이 볼 수 없는 것을 조지 소로스는 인문고전을 읽었기 때문에 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철학은 대중과 다르게 생각하니 경제에서도 그는 군중과 다르게 생각하여 투자해서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이게 이지성의 그나마 논리인데 그럴 듯하기는 한데 약간은 허탈합니다.


  반복독서를 하라는 글이 4페이지에 걸쳐 있는데 예로 든 인물이 20명입니다. 말이 안 나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게 이렇게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그나마 공감하고 저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 있었습니다. 필사하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천재들은 자신이 읽은 부분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필사하는 방식도 선호했다. .. 구체적인 방법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표시를 하거나 밑줄을 그으면서 책 한 권을 다 읽은 뒤 옮겨 적는 것, 중요한 부분을 발견하는 즉시 옮겨 적는 그리고 초서(抄書) 세 가지가 있다」


  저는 첫 번째와 세 번째(독후감도 여기에 속한다면)를 모든 책은 아니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한 책은 대개 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니 제가 해왔던 것을 다른 사람에 의해 확인을 하는 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열어서 목차를 보았을 때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뷔페 음식이었습니다. 메뉴가 너무 많아 뭘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뷔페 음식은 대개 음식점에 들어갈 때는 맛있는 것이 너무 많아서 뭘 먹어야 할지 허둥지둥합니다. 하지만 다 먹고 음식점을 나올 때는 뭔가 속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달인의 셰프의 음식은 된장국 하나라도, 스시 한 조각이라도 단순하지만 맛의 깊이가 있어 먹는 사람이 “음”하는 신음소리를 내게 됩니다. 하나로 깊이 파고들면 백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지성의 all or nothing의 사고방식이 잘 접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문고전은 all이고 암기식 주입식 교육은 nothing이라는 식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인문고전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이지성의 인문고전의 강조와 그 효과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효과를 지향하는 방향성에 저항을 느낍니다. 그가 목적하는 것은 ‘천재’가 되어 일류대학 교수가 되고 일류 과학자, 학자,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결코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면 인간의 삶이란 지평에서 바라볼 때 그것만이 목표이어야 하는 심정이 되고 맙니다. 


  『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을 보면 헤세도 세계의 인문고전에 대한 소개를 합니다. 그러나 그는 말미에 그것이 ‘예쁜 보석상자’에 불과하고 그것만으로는 아무 개성이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와닿는 것을 만나서 자기만의 길을 찾으라고 했지 의무적으로 인문고전만 잡식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복덕방식 소개입니다. 인문고전의 효과만을 선전하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그 구체적인 과정, 기전에 대한 설명이 없습니다. 아무튼 세계에서 출세한 사람들을 조사하니까 인문고전을 어렸을 때부터 먹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만병통치약이다, 이유는 따지지 말고 먹으라고 선전하는 것 같습니다. 


  무수히 증례보고를 인용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다른 사람이 사색했던 얘기만 하고 정작 자신은 사색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문기자처럼 피상적인 사실만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 인과관계도 객관적이 아니라 다분히 주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반대되는 사례를 얼마든지 추론할 수 있는데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접근하기보다는 차라리 플라톤의 인문고전 하나라도 파고들어서 그것이 어떻게 과학자, 경제학자, 일류대학 교수, 부자가 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주었는지 그 기전을 이야기해야지 결과만 가지고 말한다는 데 쉽사리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     


사족(蛇足): 책은 두꺼워서 427페이지에 달하나 실제 본문은 307페이지이고 나머지 100페이지가 왜 붙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느낌으로는 아무리 후하게 주어도 200페이지 정도면 충분한 책의 용량 같습니다. 60만 독자가 선택했다는 생뚱맞은 소리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60만부가 팔렸다고 정직하게 말하든지 해야 하는 건 아닌지요. 홈쇼핑에서 나불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전 05화 『세잔의 산을 찾아서』 페터 한트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