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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목 Feb 18. 2022

『세잔의 산을 찾아서』 페터 한트케

세잔이 그린 생트빅투아르 산은 '메타포'이다

  페터 한트케는 78세로 2019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고 합니다. 슬로베니아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가정적으로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문학적으로도 원만하기보다는 이단아 취급을 받은 모양입니다.


  세잔의 그림을 검색하다가 『세잔의 산을 찾아서』를 발견하고 마침 장석주 씨가 쓴 『취서만필』에 이 책에 대한 독후감도 있다고 하여 흥미가 있어 읽어봤습니다.


  한트케는 세잔의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아왔던 것 같습니다. 세잔도 이번에 보니 독특한 삶을 살았습니다. 평생 공모전에는 거의 모두 떨어지고 낙향하여 자기 그림만 그렸습니다. 세잔하면 생각나는 것은 그의 인물화, 정물화, 풍경화입니다. 그중에서도 생트빅투아르 산은 세잔의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에서 가깝게 있고 그가 말년까지 20년 동안 30여회 풍경화로 그렸습니다.


  한트케는 생트빅투아르 산이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여 엑상 프로방스로 가보기로 하고 그가 실제로 본 생트빅투아르 산을 자세하게 기술합니다. 그는 풍경화로서의 생트빅투아르 산과 현실로 존재하는 생트빅투아르 산이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인용이 길어서 어쩌면 조금 지루할지 몰라도 페터 한트케가 자신의 몸으로 체험한 생트빅투아르 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두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생트빅투아르 산은 프로방스에서 가장 높지는 않다. 그러나 자주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상에 오르는 길만큼은 가장 가파르다. 정상을 꼭 짚어 말할 수도 없이, 여기저기가 모두 산꼭대기에 해당한다. 그처럼 여러 개의 정상을 갖고 있어서인지 멀리서 보면 산마루가 마치 닭벼슬처럼 보인다. 한결같이 닭벼슬 모양새를 하고 있는 산마루는 그 높이가 약 1천미터에 달하는데, 약간 오른쪽으로 기다랗게 펼쳐져 있다.


낮은 지대에 속한 엑스 분지에서 바라보면 생트빅투아르는 묘하게도 가파른 정상만이 보인다. 엑스는 산으로부터 걸어서 반나절 거리에, 정확히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멀리서 바라봤을 때 정상처럼 보이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동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산마루가 시작되는 부분이다. 동쪽에 있는 마을에서 산까지 걸어도 반나절 거리다.


닭벼슬 형상의 산마루는 북쪽으로 부드러운 경사를 이루며 솟구쳐 있는 반면, 남쪽으로는 산 아래 약간 높은 평지를 향해 거의 수직으로 내리꽂히고 있다. 산마루는 이처럼 높이 솟아오른 여러 개의 축들이 세로로 쭉 늘어선 능선을 따라 석회암의 주름진 습곡을 이루고 있다. 서쪽에서 바라보면, 세 개의 높은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봉우리들이 그 안에 뭔가 경이롭고 극적인 것을 품은 듯이 보인다면, 그 이유는 산악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마치 칼로 자른 듯한 단면들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다양한 주름들을 이루며 굽이치고 있기 때문이다. 산은 그만큼 매력을 한껏 품고 있다. 비록 산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산 정상에 이르면 산의 기원이나 생성까지도 짐작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그에 상관없이 산을 오르는 이들을 위해서도 생트빅투아르는 이 산만이 지니는 독특한 그 무엇인가를 펼쳐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생트빅투아르는 이처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서로 틈을 이룬 주름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하나의 거대한 블록을 형성해 현기증마저 일으킬 정도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보다는 훨씬 납작하고 평범한 주름들이 비탈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양새는 바위의 색깔이 변하면서, 돌의 윤곽이 드러나는 정도에 따라 미세하게 감지된다. 지각 변동 때 석회암이 측면으로 강하게 쏠리는 현상으로 말미암아 산비탈은 주름지게 되고, 주름이 길게 늘어지면서 곳곳에 평평한 산비탈이 생겨난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바윗돌만으로 축소된 형태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생트빅투아르의 본 모습이다.


곳곳에 있는 바위들이 마치 섬광과 불빛의 파편들이 쏟아내는 것처럼 번쩍거려 생트빅투아르는 기이하고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이는 석회암이 백운석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길은 없다. 산 전체를 훑어보나 약간 비탈을 이룬 북쪽 기슭면을 살펴봐도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찾을 수가 없다. 심지어 인가나 사람이 사는 흔적조차 없다. 산마루 꼭대기에는 17세기에 지어진 주인 없는 수도원이 유일한 흔적처럼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산허리는 험난해서 오로지 전문등반가들이나 오를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산허리의 가파른 비탈만 피한다면, 어느 쪽에서든지 어렵지 않게 정상을 향한 오름길로 들어설 수 있다. 정상에 서면 또 다른 산마루가 이어지는데 한참을 걸어가야만 그 끝에 다다를 수 있다. 이처럼 산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에서 출발하더라도 하루 온종일 답사를 해야 하는 곳이 바로 생트빅투아르 산이다.


-르 톨로네에 도착하기 전에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은 벌거벗은 몸에 거의 단색조였는데, 실은 한 가지 색을 띤다기보다 오히려 밝게 퍼져나가는 빛에 가까웠다. 어쩌다가 구름의 윤곽과 산꼭대기를 혼동할 수도 있을 법했다. 달리 보면, 찬란하게 빛나는 산은 한눈에도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르는 듯했다. 이는 서로 상반된 운동의 결과였다. 다시 말해, 꼼짝 않고 버티고 선 축과 이를 흔드는 힘이 오랜 세월에 걸려 서로 작용한 결과, 오늘날 암석으로 이루어진 산허리는 서로 나란히 줄을 그은 듯 급격하게 하강하기에 이르렀으며, 산비탈은 주축을 이루는 선상에서 수평으로 쭉 길게 늘어서게 되었다. 산은 이처럼 높은 곳에서 흘러내린 듯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땅 표면을 향하여 흘러내린 석회암층은 대기와 유사한 색조를 띠면서 지상에 가까울수록 두꺼워져 작은 산괴(山塊)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산의 표면들조차 바라볼 때마다 제각기 독특한 형태를 띠어갔다. 먼발치에서 보면 단일한 형태를 취한 듯했지만, 가까이 다가설수록 마치 날아오르려는 새와도 같은 형상으로 자유로운 공간에서 변화무쌍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산의 표면들은 뒤로 물러나 있기도 했고, 곧 만져질 듯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관상 표면들은 앞으로 돌출되어 있으며, 손에 잡힐 듯 눈에 가득 잡혔다.

-막 르 톨로네를 지나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닭 벼슬 모양의 산등성이와 함께 첨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풍경을 늘 함께 했다. 아래쪽 평탄한 곳에서 길은 더 이상 기복을 이루지도 않고 굴곡마저 사라졌다. 그렇게 이어지던 길은 마침내 아찔할 정도로 험난한 산기슭 벼랑의 발치 아래 고원을 이루고 있는 석회암 지대 쪽으로 구불구불 가파른 오르막을 이루고 있었다. 길은 거기서 끝났다. 서로 나란히 늘어선 산비탈만 눈앞에 펼쳐졌다.


정오가 다 되어서야 고원 쪽의 구불구불한 길로 들어섰다. 하늘은 너무도 푸르렀다. 수평선 저 끝에서 하얀빛으로 번쩍이며 눈을 부시게 만드는 암벽들까지 좁다란 길이 계속되고 있었다. 길 한 켠 말라붙은 개울 바닥의 붉은 모래 위에는 아이들 발자국만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었다. 오직 산을 향해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나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닭 벼슬 모양으로 길게 늘어선 암벽들이 눈에 가득 잡혔다. 서로 갈라진 틈 사이론 어둠침침한 빛깔의 수풀들이 우거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매미의 날개 형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하산 길에 첫 번째 고원지대에서 등 뒤의 산을 다시 바라보기 위해 뒤돌아섰다. 거기 닭 벼슬을 한 산마루 정상부분이 새롭게 다가와 있었다. 마치 축제의 불꽃과도 같은 섬광으로, 산마루에서 정상 부분은 대리석의 고운 결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시선을 한 번 흘깃거리기만 했는데도, 소나무 가지 끝 저 너머에서 산마루는 빛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신부의 하얀 웨딩드레스가 곱게 걸려 있는 듯했다. 나는 다시 나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늘 예기치 않게 내 앞에 펼쳐진 파리의 길들과는 달리, 지금 이 순간 나는 그 많은 길들 중에 단 하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생트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 단 한 차례 바라본 이후로 그 산은 내 머릿속에 수없이 떠오르곤 했다. 하나의 일과나 다름없이 산을 오르던 내게 그 많은 산들은 항상 서로 비슷한 색채와 형상들로 다가왔다. 그러나 지금 유독 생트빅투아르 산만이 내 기억의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마르세유에 비행기가 내려앉으면서 멀리 수평선 너머 북쪽으로 생트빅투아르 산이 보였다. 마치 한 마리의 고래가 막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는 듯한 거대한 모습이었다.


-서쪽에서 시작되는 산줄기는 거대한 덩치로 저 너머까지 이어져 있었다. 산봉우리가 나란히 이어져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산 지층의 단면처럼 보이는 겹겹이 쌓인 지층과 주름들이 솟구쳐 봉우리를 이룬 것도 가히 장관이었다.


-여러 개 겹쳐 있는 이 산마루들이야말로 정확히 말해서 ‘봉우리’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길게 갈라진 산마루 능선의 단면은 또 다른 지층에 이르고, 이러한 단면들이 서로 중첩되어 동쪽 끝자락까지 길게 늘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절대로 육안으로 식별할 수 없는 이 봉우리는 세잔의 유화 그림들에선 두드러진 음영으로 착색되어 다소 크거나 작게 그려져 있다. 연필로 스케치한 작품들도 또한 마찬가지다. 맨눈으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산봉우리를 화가는 선영을 넣어 너부죽하게 벌어진 모양으로 그렀을 뿐만 아니라, 절묘하게 윤곽을 다잡아 그리기까지 한 것이다.


-벌판을 뒤덮고 있는 브뤼에르 위로 우뚝 솟아오른 생트빅투아르 산은 빙하를 따라 이동하였다가 빙하가 녹은 뒤에 그냥 남게 된 바위군락이었다. 


-(정상에 오른 후에) 자리에 앉아 바라보니 방금 전에 올랐던 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발치에는 낮고 시원하게 펼쳐진 언덕들이 뚜렷한 윤곽을 드러냈다. 언덕의 윤곽선은 움푹 파인 협곡의 주름들로 말미암아 끊어질 듯 이어졌다. 산등성이 가운데 한쪽은 지난번 산불로 인해 흉터가 생긴 것처럼 나무 한 그루 없는 벌거벗은 모습이었다. 기슭에는 덤불조차 자라지 않는 듯했다. 마침 내린 비가 붉은 모래밭에 깊은 상처처럼 수레바퀴 자국을 만들어놓았다 마치 뒤엉켜버린 실타래같이 약간 부드러운 경사를 이룬 비탈마저 뒤범벅 상태였다. 지표면을 흐른 물은 여기저기 깊은 흔적들을 만들어놓았다. 물이 흐른 곳마다 진흙더미가 쌓였고, 암반을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층들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다. 물이 어느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사방으로 흐른 탓에 더욱 황폐해진 이 일대는 곳곳에 나무 한그루 서 있지 않다.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벌거벗은 땅은 규모는 작지만, 미국 다코다 남부의 거대한 황무지를 연상케 했다. 그곳은 수많은 서부개척자들이 거쳐갔던,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방랑자들이 버림받은 땅이라 저주하던 곳이었다. 다른 한쪽의 언덕은 산불을 겨우 모면해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가지 위에 가지가 뻗어나간 형국으로 소나무 숲은 정상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계단을 이루었다. 


-아래쪽 불쑥 솟아오른 언덕들 위로 펼쳐진 하늘은 푸른빛을 띠며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나무 한 그루 서 있지 않은 모래밭 또한 달구어져갔다. 한켠 나무들을 조림한 곳에는 소나무 둥치들이 빽빽이 서 있었다. 나무들마다 초록의 물결을 드리우고, 진초록의 물결은 나무가짓마다 짙은 음영을 만들어갔다. 나뭇가지 사이로 드리워진 음영의 사각지대는 마치 분할된 채, 일정하게 열지어 선 창문들을 연상케 했다. 산기슭 언덕은 저 멀리로 끈 간 데 없이 펼쳐져 있었다. 숲에 서 있는 나무 하나하나는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리에 고정된 채, 저 혼자 영원히 돌고 있는 팽이 바로 그것이었다. 숲들 또한 마찬가지로 저마다 빙빙 돌다가 한 자리에 붙박힌 듯 자리 잡았다. 커다랗게 분할된 땅들도 마찬가지였다」  


   

  한트케는 실제의 생트빅투아르 산과 세잔이 그린 생트빅투아를 산이 다른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다. 좀더 가까이에서 생트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는 것이다! 만일 그곳에서 세잔이 다룬 모티프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면, 이는 오직 화가가 구성 단계에서 이들 대부분을 변형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다시 세잔이 그린 산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나, 또한 다시 한 번 프로방스를 여행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역시 바로 세잔이 그린 산과 실제 내가 바라본 산과의 차이에서 기인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여정을 통해 어떤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세잔이 그린 산과 실제 생트빅투아르 산의 모습은 오로지 서로 다른 형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내 앞에 우뚝 선 생트빅투아르 산을 보자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세잔은 실제 산을 달리 그린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라는 사실, 상상이야말로 훨씬 더 논리적이지 않는가.」


「더 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지적으로 인지한 것은 쉬 사라지지만, 상상력을 통해 인지한 것만큼은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생트빅투아르 산은 한마디로 말하면 나무도 거의 없는 석회암으로 된 닭벼슬 모양의 돌산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세잔은 변용시켰다는 말일까요? 저는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미술에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수박 겉핥기이지만 제 생각으로는 세잔은 실제의 생트빅투아르 산을 상상에 의해 변형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공간입니다. 세잔이 사물을 원, 원기둥, 원통으로 나누었다는 것은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저는 솔직히 세잔의 그림을 볼 때 그 말이 과연 그렇구나 하면서 느낀 적은 별로 없었습니다. 아무튼 세잔은 공간을 그렇게 보았고 미술책에 보면 세잔은 원근법도 무시했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빛입니다. 빛은 색깔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생트빅투아르 산을 내리쬐는 햇빛을 모습을 착안했을 것입니다. 페터 한트케의 말을 빌리면 ‘햇살에 반쯤 취한 풍경’입니다.


  셋째는 색조인데 회색의 석회암 돌산인데도 오히려 초록색과 노란색이 많습니다. 대개는 밝은 색조를 띱니다. 


  넷째는 바람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생트빅투아르 산의 정면을 가르는 소나무의 가지와 잎들은 바람에 날려서 휘어지고 꼬부러져서 제각각이 몸을 틀고 있습니다.


  다섯째는 윤곽을 들 수 있습니다. 생트빅투아르 산은 물론이고 풍경을 구성하는 숲이나 나무들의 윤곽들을 잃고 있습니다. 어떤 그림은 거의 추상화처럼 삼각형, 사각형으로만 형태를 잡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여섯째는 고요입니다. 생트빅투아르 산의 풍경은 고요를 안고 있습니다. 


  페터 한트케는 이 책에서 대부분 생트빅투아르 산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조금 동떨어진 바위들과 소나무들을 주요 모티부를 한 그림에 대해 언급합니다. 「붉은 바위」와 「숲속의 바위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바위들과 소나무들의 윤곽은 사라지고 색조만이 화면 가득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비베뮈에서 바라본 생트빅투아스 산」을 보면 여기에는 다른 풍경은 없고 오직 바위들과 아마도 소나무들뿐입니다. 황갈색의 바위들과 초록의 소나무들은 윤곽을 잃고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립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하기’가 아니라 ‘말도 안 되는 그림하기’가 아닐까 상상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페터 한트케가 기술한 생트빅투아르 산이 은유에서 말하는 원관념이라면 세잔이 그린 생트빅투아르 산이나 방금 전에 말한 바위들과 소나무들의 그림은 원관념에 대한 보조관념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잔은 고향 엑상 프로방스에 틀어박혀 풍경을 메타포하는 작업을 한 것입니다. 


  페터 한트케는 “꿈을 통하여 오브제들 한가운데로 진입하라.” 이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그의 글쓰기의 원칙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세잔 식으로 말하면 사물을 상상을 통하여 메타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페터 한트케는 생트빅투아르 산에 올라감으로써 자신의 글쓰기를 확인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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