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꼬시기 작전
강권적 할아버지의 사랑
아이들과 길게는 7년, 짧게는 4년 동안 글쓰기를 서로 씨름하면서 나름 갈등이 많았습니다.
저의 욕심만 앞세워 프리라이팅을 하라, 세잔, 고흐 그림 보고 보이는 대로 써보라, 은유를 만들어라, 세 장면 쓰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면서 처음에는 돈으로 꼬셔 보려고 저금통장을 만들라고 하고 글을 보내면 일정액의 돈을 송금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나중에 보면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자기들 손에 돈이 직접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초등학생의 신분으로 돈을 가지고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미끼를 던지기는 한 셈입니다.
할아버지, 숙제가 많아요, 어려워요 하면서 과제에 대한 글들을 보내오지 않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그렇다고 거친 말을 하면서 책망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떤 때는 실제로 마음을 먹고 토요일을 기해 저와 아내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서울 도착해서 저녁에 그래도 근사한 음식점에 가서 불고기도 사주면서 알랑방귀를 끼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그들도 양심이 있는지 한동안은 제대로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은 공책에 글을 쓰면 엄마 아빠가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면 제가 컴퓨터에 입력을 하고 강평을 하고 엄마 아빠에게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보내던 것이 너무 말을 듣지 않으니 할 수 없어서 타협책으로 그럼 이제부터는 2주일에 한번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한동안 잘 진행이 되었지만 약발이 떨어지면서 한 달에 한 번 보내 오고 걔중에는 그나마 쓰지 않고 버티는 녀석까지 나왔습니다. 그럴 때는 손주들에게 화를 낼 수도 없고 애먼 아내에게 투덜거리면서 “내가 왜 이런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거지?” 하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 아내는 저를 다독거리는 것입니다. 이게 다 손주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전해 주려고 하는 것이니 너무 애쓰지 말라고요. 자기가 이번에 서울 가면 애들에게 맛있는 것 해먹이면서 달래보겠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서울 가면 손주들 보고 이게 다 할아버지의 사랑인데, 이걸 안 하면 너희는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가 보다 하면서 설득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건 아니라면서 다시 마음 잡고 보내 오니 한편으로는 고마웠습니다.
미국에 있는 손녀는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한글을 그런대로 따라오더니 고학년이 되면서는 일상 회화는 가능하지만 한글의 고급 단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제가 보낸 강평을 보고 아빠가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큰손녀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집에 가서 작문을 해오라고 한 것을 수업시간에 발표했습니다. 큰손녀의 글을 보고는 선생님이 “너 이거 엄마가 써서 준 것이지?” 하고 다그쳤다는 것입니다. 며느리도 그 말을 듣고는 선생님에게 직접 전화하여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에게서 그 동안 은유에 대해 배워왔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그제사 이해하고는 그 다음날 수업 시간에 아이들보고 말했다고 합니다. “얘가 쓴 이것이 바로 메타포란다.”
사실 이 글쓰기를 하는 동안 애들과의 실랑이만 있은 것은 아닙니다. 두 아들과 며느리들도 중간에서 마음 고생을 했습니다. 특히 며느리들 입장에서는 시아버지가 저렇게 설쳐대니 자기들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애들이 과제에 대한 글쓰기를 하지 않으면 야단치면서 쓰라고 하지만 그놈들은 또 요리조리 빼먹으니 중간에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하루이틀도 아니고 몇 년을 그럴려니 보통일은 아니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선호도 각자가 다를 것이지만 대놓고 시아버지에게 저는 별로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한 번은 진짜 위기가 있었습니다. 큰손자에게 어쩌다 전화가 연결되었기에 과제를 안 한 것을 이야기하다 보니 옆에 있었던 아들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아들이 갑자기 손자에게 큰 소리로 “야, 이 새끼야 내가 그렇게 시키는데도 하지 않냐”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도 기분이 엄청 나빠져서 옆에 있는 아내에게 안 되겠다면서 오늘부터 그만 두자고 했습니다. 분위기가 심각해서인지 서로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들들과 며느리들의 스트레스도 엄청나기는 했습니다. 시아버지는 은근히 부담이 되지, 애들을 달래려고 “과제 다하면 게임 보게 해주겠다”고 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맨날 그렇게 씨루려고 하지 오죽했겠습니까. 아무튼 저도 마음을 추스르고 손주들이 하든말든 나는 과제만 내주자고 저 스스로 타협을 했습니다.
그래도 처음에는 손주들이 공책에 쓰면 사진 찍어 카톡으로 열심히 보내주었습니다. 아내는 며느리와 전화할 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너희들이 수고한다고 격려하며 다둑이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요즘은 애들이 커서 저와 직접 이메일을 주고 받고 있으니 애들의 아빠 엄마는 부담이 덜하기는 하겠지요. 그런데 이놈들에게 문자로, 카톡으로 과제 보냈으니 글쓰기 보내라고 하면 “넵” 하고 대답만 하고 함흥차사가 일쑤입니다. 그러면 제 속에서 또 갈등이 생겨 때려치우려고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냐, 저들이 답이 있든 없든 나는 저들이 중3 될 때까지 하기로 했으니 과제를 보내는 거다. 내가 죽고 나면 그래도 내 마음을 알아줄 날이 오겠지” 하고는 저 자신을 합리화, 위로를 하고 추진하는 동력을 얻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하는 짓이 딱히 옳은 것인지도 모르겠고 학교 수업이 우선인 마당에 이렇게 아이들에게 시간을 빼앗아도 되는 건지 자신은 없습니다. 그 시간에 영어 수학 공부하는 것이 손주들의 장래에 보탬이 될 것도 같습니다. 글쓰기는 자신이 흥미가 있고 재능을 보이면서 스스로 재미를 가지고 달려들어야 하는데 할아버지라는 권위에 의해 강제로 공부를 당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글쓰기는 결국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고 사고를 깊이 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에 어쩌면 저들에게 지금은 부담이 되겠지만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저의 방법이리라고 저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