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홍성광

독서와 독자적 사고

by 현목

문장이란 사전에 의하면 ‘생각이나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할 때 완결된 내용을 나타내는 최소의 단위. 주어와 서술어를 갖추고 있는 것이 원칙이나 때로 이런 것이 생략될 수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문장을 기본 대상으로 하여 문장의 구조나 기능, 문장의 구성 요소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을 문장론이라고 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굳이 사전을 찾아가면서 문장과 문장론의 정의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책의 제목인 ‘문장론’이 타당한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쇼펜하우어도 니체도 문장에 대해 ‘문장의 구조나 기능, 구성 요소 따위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는 책 제목을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독서와 독자적(獨自的) 사고』라고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나 니체가 ’문장‘에 대해서 일관성 있게 저술한 것을 번역한 것이 아니고 저자가 자의적으로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저작들 중에서 ’문장‘에 관한 것을 선별하여 쓴 책입니다. 따라서 그다지 일관성이 별로 없고 특히 뒤쪽의 니체의 ’문장론‘은 문장에 대한 글조차 적어서 허탈합니다. 그나마 쇼펜하우어 부분에서는 읽을 거리가 있을 정도입니다.


문장론은 넓게 말하면 글쓰기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문학가가 아니라 철학가이기 때문에 상상을 바탕으로 한 문학적 글쓰기와는 다르므로 비유를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직 논리적이고 분명한 글쓰기 혹은 문장을 논합니다.


책 내용이나 구조가 허술한 이 책에서 정말 귀중한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독서에 관한 것과 독자적 사고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글쓰기라고 하면 의례 인용되는 것이 있습니다. 중국의 구양수(歐陽脩)가 글쓰기의 비결로 말했다는 (다작)多作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즉 많이 쓰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고 조언합니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들어왔습니다. 비록 책을 읽지는 않더라도 장서가 많은 사람의 서재를 보면 부러워합니다. 심지어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고 자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독서관과 다릅니다. 그는 너무 많이 책을 읽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대신 독자적인 사고를 하라고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합니다. (이런 짓을 쇼펜하우어는 하지 말라는 것인데 저도 이제까지의 습관상 어쩔 수 없이 쇼펜하우어의 글을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독서란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대신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과정을 좇아가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에 따라 책을 읽으면 우리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 권위 있는 자의 말을 인용해서 미해결의 문제를 판정하기를 매우 좋아하고 그러는 데 급급한 사람들은 자신에게 부족한 분별력이나 통찰력 대신에 남의 것을 동원할 수 있을 때 참으로 기뻐한다. 그런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이건 저보고 하는 소리 같습니다) .. 많은 독서는 정신의 탄력을 몽땅 앗아간다. 그러니 시간이 날 때마다 아 무 책이나 덥석 손에 쥐는 것은 자신의 사고를 갖지 못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박식하다는 것도 남의 생각을 잔뜩 집어넣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살다살다 책 많이 읽지 말라는 소리는 처음 봅니다. 언제나 책을 많이 읽으라는 소리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처지에 쇼펜하우어의 이 말은 조금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쇼펜하우어는 책을 너무 많이 읽지 말라고 할까요. 남이 간 길을 따라가면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상 혹은 경우에 대해서 스스로 남에게 기대지 말고 혼자서 사고하고 궁리하는 말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영혼’에 대해서 글을 쓰자고 마음 먹으면 우선 책을 찾으면서 자료를 모읍니다. 그리고는 그 지식들을 적절히 안배하고 그 틈새에 자신의 생각을 끼워놓습니다. 우리는 무슨 회장이 되어 청중에게 연설을 하거나 하면 대개 A4용지에 원고를 써갖고 와서 거의 읽는 수준입니다. 이건 일본 텔레비전을 보아도 비슷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다른 것 같은데 실제로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 대통령과 정상회담하는 자리에서 대놓고 A4용지를 들고 회담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지만 사실은 그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요.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독자적인 사고가 없기 때문입니다. 말할 내용을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의 것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A4용지에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의 교육이 ‘암기위주’라고 누구나 타박을 해왔습니다. 저도 일단 지식을 많이 암기해 놓아서 머릿속에 저장을 해야 뭔가 유식한 결과가 도출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그러한 비난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서양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보면 그들은 확실히 동양사람보다 말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모르긴 하지만 우리의 ‘암기위주’ 교육보다는 스스로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쇼펜하우어의 ‘독자적 사고’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기억해 두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독자적 사고로 알아낸 것은 책에서 그냥 얻은 것에 비해 백 배는 더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그 진리는 불가결의 부분이자 살아 있는 구성 요소로 우리 사고의 전체에 들어와서, 그 사고 체계와 완전하고 확고한 관련을 맺으며, 그 근거와 결론이 모두 이해되어 우리의 전체 사고방식의 색깔, 색조, 특징을 띠기 때문이다. .. 다시 말해 독자적 사고를 하는 자는 진지하고 직접적이며 본래적인 특징이 있고, 모든 사고나 표현에 독창성이 있다.


니체의 문장론에는 특별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날의 인간은 경험은 너무 많이 하는 반면 사색은 너무 적게 한다.’ 이건 오늘날의 세태에 더 들어맞는 말 같습니다. 정보사회라고 해서 스마트폰, 인터넷, 등등 너무나 볼 거리가 많습니다. 정신없이 그것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정작 자신의 독자적 사고를 할 시간이 거의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발달한 문명 덕분에 옛날 사람들보다 더 안락한 생활을 하니 거기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것도 이상합니다만.


니체의 이 말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소박한 생활방식은 오늘날 쉽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매우 똑똑한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색과 독창성이 필요하다.’ 사실 지식인들은 ‘단순한 삶’ 운운을 많이 합니다. 저도 한 때 ‘Simple Life, High Thinking’이라는 말이 멋지게 보여 그렇게 살아보자고 마음 먹은 때도 있었지만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니체의 말처럼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박한 삶’은 단순히 겉멋으로만 이룰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쇼펜하우어의 말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제가 딱 그런 부류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에는 세 부류의 저술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사고를 하지 않고 글을 쓴다. 그들은 기억과 추억을 바탕으로 하거나, 또는 남의 책을 직접 인용해서 글을 쓰기도 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이 가장 많다. 두 번째 유형은 글을 쓰면서 사고하는 사람들이다. 그 수는 매우 많다. 세 번째 유형은 사고하고 나서 집필에 착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고를 했기에 글을 쓸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드물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부끄럽게도 첫 번째 유형에 속합니다. 두 번째 유형으로는 작가 김훈이 떠오릅니다. 그의 문장들은 읽으면 읽는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합니다. 그냥 쓱쓱 주마간산식으로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의 문장은 남성미가 있고 특히 추상명사와 구체적 사물 명사를 연결하여 만드는 은유는 제게는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르긴 해도 김훈 작가는 적어도 두 번째 유형일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유형은 다름 아니라 쇼펜하우어 자신이겠지요.


어떤 면에서 치밀하지 못한 이 책을 보면서 ‘독서와 독자적 사고’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새벽에 일어나 엉성한 단전호흡을 해왔습니다.(그마저 할 때보다 안 할 때가 더 많습니다만) 쇼펜하우어의 글을 읽고 나서 스님들이 화두를 가지고 생각하듯이 무언가 ‘독자적 사고’를 해보자고 시도를 했습니다. 미숙하고 조악한 저만의 생각이지만 메모해 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생각을 정리해서 단상(斷想)이라도 써보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대상포진이 걸려 고생하느라고 몇 주를 쉬었습니다만 다시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