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잔고목(摧殘枯木)
불일암에 다녀오면서 법정 스님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자연히 성철 스님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지리산 대원사 코스를 자주 갑니다. 자연히 성철 스님 기념관 앞을 지나칩니다만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없습니다. 다만 절 이름이 겁외사(劫外寺)라고 되어 있어 절 이름 치고는 독특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겁(劫)은 무한히 긴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무한한 시간 밖의 절이라는 말인데 이름 자체가 중량감이 느껴집니다.
해인사는 정말 오래 전에 한두 번 갔습니다. 그때는 절보다는 근처의 소리길을 걸었습니다. 이번의 해인사의 첫인상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수행도장보다는 관광지 같아서 조금은 실망감을 가졌습니다.
불일암 올라가는 길은 나중에 보니 800미터 정도 되었는데 진짜 급경사였습니다. 걸어올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차로 올라갔습니다. 나중에 한 말이지만 다시는 걸어서 올라가지 않는다고 다짐했습니다. 불일암에 도착하자 웬지 갑갑했습니다. 앞이 꽉 막히고 절의 전망이 보이지 않고 주차된 승용차가 만차였습니다. 심지어 이중 주차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속으로 불일암, 이거 오늘 잘못 온 거 아니야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절의 담장을 따라 철쭉이 만개하여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절 안에 들어서자 젊은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무슨 구호 소리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성철 스님의 불일암인데 도떼기 시장일 리가 없지 하고 안도했습니다. 그 많던 차들은 여기서 수행하는 사람들의 차였던 것입니다. 백련암의 현판이 인적이 드문 뒤쪽에 걸려 있게 조금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성철 스님의 깊은 불교의 교리를 처음부터 읽는 것보다는 그분이 어떤 환경에 있었는가를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스24에서 검색하다가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를 구입했습니다. 시봉(侍奉)이란 단어가 쉽지가 않은데 찾아보니 ‘모시어 받듦’이라는 뜻입니다. 원택 스님은 현재 78세입니다. 연세대학 정치외교학과를 나오고 출가하여 성철 스님을 시봉하였는데 그 기간이 22년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불교에 대해 잘 모릅니다. 고작 들은 풍월뿐입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탐진치(貪瞋痴), 윤회설 정도입니다. 불교의 깊은 진리를 잘 모르는 형편이니까 이 책을 읽고서 그냥 피상적인 느낌만을 말하는 셈입니다.
성철 스님을 평생 시봉한 원택 스님의 봉사가 헌신적이고, 고백이 솔직했습니다. 불교의 근본적인 교리보다는 성철 스님의 일상생활, 봉암사, 성전암에서 용맹정진하는 성철 스님의 모습, 해인사 총림 방장이 되는 과정, 종정이 된 이유, 생가에 얽힌 가족과의 에피소드 등 이야기들이 ‘리얼’하고 흥미진진했습니다.
성철 스님의 말투가 읽는 저로 하여금 미소짓게 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도 대구 경북과 부산과 진주 쪽이 다릅니다. 구체적으로는 말하기 어렵습니다만 들으면 표가 납니다. 성철 스님의 사투리는 가식이 없는 생짜배기 같았습니다. 외람된 말로 한다면 완전히 무식한 나뭇꾼이 하는 어투라고나 할까요. 오랜만에 ‘홈모노’ 경상도 사투리를 들으니 친근감이 절로 갔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원택 스님이 그 사투리를 정확히 전달했습니다.
이 책은 5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이지만 실제로 수많은 에피소드로 엮여 있어 읽기에 그다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그 중에서 제게 인상이 남는 점은 세 가지 정도 있습니다.
첫째는 성철 스님의 가족에 대한 태도가 잘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물론 출가하여 세속을 끊고 정진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그랬다고 하지만 처음 해인사에 가서 있는데 어머니와 아내와 출생한 아기(성철 스님이 출가할 때 부인은 임신중이었습니다)가 와서 얼굴 한번 보자는데 박절하게 거절했습니다. 한편으로 이해가 가지만 자신이 가장인데 아내 보고 혼자서 애기 양육하라고 내팽개치는 것이 온당한 것인지 의문이 갑니다. 물론 세속적인 관점입니다만 자신 때문에 아내의 운명이 뒤집어졌는데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식은 솔직히 당혹스럽습니다.
일타 스님이 성철 스님에게 들은 말이라고 합니다. ‘중노릇은 사람노릇이 아니다. 중노릇하고 사람노릇 하고는 다르다. 사람노릇 하려면 중노릇 못 한다.’ 속세의 사람이면 응당해야 하는 관습을 지키면 중 노릇, 수행을 못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아내나 어머니를 그런 식으로 대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빨리 저거 쫓아내라. 뭐 하노. 빨리 쫓아내.” 성철 스님이 수행하고 있던 성전암으로 아내가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스님이 되었고 어렵사리 키운 딸마저 스님이 되겠다고 하니 억하심정(抑何心情)이 되어 찾아온 아내를 매몰차게 쫓아내면서 한 말입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입니다. 성철 스님은 딸에 대한 태도는 다릅니다. 만나서 참선에 대해 얘기하는 등 만나주고 다정하기까지 합니다. 어머니도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금강산에서 만나 구경하러 나갑니다. 하지만 아내에게는 왜 이렇게 차별하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책에서 보면 말년에는 스님으로 출가하나 끝내 성철 스님을 만났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둘째 성철 스님의 사상을 가장 잘 정리한 백일법문의 가르침은 세 가지라고 했습니다. ①부처님이 윤회설은 방편이 아니고 정설이니 믿어야 한다는 점이다. 업에 따라 생사를 되풀이 한다는 ‘윤회’는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기에 굳게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불교가 과학적 종교라는 점이다. ③부처님의 가르침은 중도사상(中道思想)에 있다는 점이다.
중도사상을 얼음과 물을 가지고 예를 드는데 잘 이해는 가지 않았습니다. 얼음과 물은 물질이나 선과 악은 인간의 가치판단이라고 하는 정신인데 이것을 같은 차원에 놓고서 얘기하는 것이 잘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불교의 가장 근본사상이라고 하는 윤회사상은 복잡하고 제게는 설득적이지 못했습니다. 물론 제가 불교에 대해 가진 지식이 천박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런 전제하에서 저의 소감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감안하여야겠습니다.
워낙 기초적인 지식이 없으니 국어사전을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사전이 가장 간략하게 요점만 설명합니다. 윤회사상이란 ‘중생이 생사를 거듭하며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삼계육도(三界六道)를 떠돈다는 사상’이라고 합니다. 삼계육도도 어렵습니다. 삼계는 육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이고 육도는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이라고 하는데 뭔 소린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윤회사상은 저는 잘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종교 중에서 철학적이라고 했는데 윤회는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신비적이고 신화적입니다. 원택 스님은 불교는 과학적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인과율의 논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윤회에 대한 설명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윤회사상은 부처님 이전에 있은 인도의 사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한 면이 있다고 합니다. 영에서 육신으로, 육신에서 영으로 회전하는데 그때의 자아는 일정한 것인지 바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스님의 윤회에 대한 유튜브를 보니 논리과 비논리가 섞여서 적어도 제게는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생명이 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도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과학이 아닙니다.
성철 스님은 해탈을 함으로써 윤회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해탈은 정신적인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정신현상이고 윤회는 물리적으로 반복되는 것인데 해탈이 윤회에서 벗어나는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가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윤회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은 제 역량으로는 불급입니다.
셋째, 성철 스님이 위대하다는 것은 원칙에 완벽하게 충실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대중보다는 같은 동료들인 스님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성철 스님을 섬겼습니다. 같은 승려인데도 자신들도 같은 원칙으로 수행을 한다고 애를 쓰지만 못하는 것을 성철 스님은 하시는 것을 보고는 존경한 것입니다. 불교의 교리야 그들도 모를 리가 없으나 실제로 그것대로 수행을 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용맹정진하는 성철 스님을 본 것입니다.
“중은 평생 정진하다가 논두렁 베고 죽을 각오를 해야 된다 아이가. 중노릇이 쉬운 거는 아이다. 알것제.”
”종정이라는 고깔모자 덮어썼다마는 내 사는 거 하고 아무 관계 없데이!“
원택 스님의 말입니다. ‘성철 스님은 수행에만 전념했을 뿐 다른 일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 말하자면 철저하게 선승으로 일관한 삶이었다.’ ‘성철 스님은 그런 분이었다. 한번 결심하면 번복하거나 도중에 멈추는 일 없이 그대로 실행한다. 그런 태산 같은 의지로 용맹정진 거듭했으니 보통 사람보다 먼저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용맹정진’이란 사전적 의미가 아닙니다. 용맹정진이란 하루 24시간 자지 않고 허리를 땅바닥에 대지 않은 채 끼니때를 제외하곤 꼿꼿이 좌복에 앉아 참선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는데 정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성철 스님이 정말로 치열하고 엄격하게 공부했던 것은 1955년부터 1965년까지, 즉 나이로 치면 43세부터 53세까지 10년 동안 대구 파계사 부속 암자인 성전암에서 동구불출(洞口不出)했던 때입니다. 암자 둘레에 철조망을 치고 10년 동안 일주문밖을 나가지 않고 일반 대중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저절로 ‘후~‘ 소리가 나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부러지고 썩어 쓸데없는 나무 막대기는 나무꾼도 돌아보지 않는다. .. 이러한 물건이 되지 않으면 공부인이 되지 못한다. 공부인은 세상에서 아무 쓸 곳이 없는 대낙오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영원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세상을 아주 등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버림받는 사람, 어느 곳에서나 멸시 당하는 사람, 살아나가는 길이란 참선하는 길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불법 가운데서도 버림받은 사람, 쓸데없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영원한 자유를 성취할수 없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는 무시무시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몸에 전율이 스쳐갑니다. 성철 스님이 말하는 ’썩고 부러지고 마른 나무 막대기‘를 최잔고목(摧殘枯木)이라고 했습니다. 어제 마음 먹고 선암사의 작은 굴목재를 거쳐 큰굴목재를 내려오는 산행을 했습니다. 늙은이로는 조금 과한 코스 같았습니다. 도중에 오솔길에서 ’최잔고목‘을 만났습니다. 나무가 부러지고 메말라서 부스러졌습니다. 공부인의 모습은 저래야한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학문을 하는 사람도 그런 길을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성철 스님은 참선 수행하다가 해인사 방장이 된 후 그 유명한 ’백일법문‘을 합니다. 그렇게 법문을 하시면서 항상 하시는 말씀이 ’내 말에 속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모순입니다. 법문을 하시는 그것에 속지 마라고 하면 처음부터 법문을 하지 않아야 맞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불교는 단순한 지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는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참선하여 깨달음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건 다른 종교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
성철 스님은 참선을 하라고 채근합니다. 심지어 죽기 직전까지 ”참선 잘 하그래이“라고 하겠습니다. 성철 스님이 자주 화두로 준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물었는데 어째서 삼 서근이라 했는가’(如何是佛고? 麻三斤이니라)의 화두입니다. 심지어 딸인 수경(나중에 불필[不必]스님이 됩니다)에게도 1,700개나 있는 공안 중에 하필이면 이 화두를 준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저는 암만 생각해도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불교는 선종이라는 조계종(曹溪宗)이라고 합니다. 이른바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해서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가는 수단으로 화두를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조동종(曹洞宗)인데 화두보다 좌선 자체를 중요시하여 지관타좌(只管打坐)를 부르짖습니다. 제 개인적인 인상은 한국 조계종은 조동종을 약간 하대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성철 스님의 입적에 후에 성대한 다비식을 한 것까지는 마음으로 공감합니다만 사후에 위대한 성철 스님을 기리기 위한 사업들이 저 개인적으로는 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철 스님이 어떤 사람입니까. 부귀와 영화를 원수 보듯이 하라 했고, 자신의 승복 두 벌인가를 40년 동안 입었고, 산승이라고 종정이 되어도 조계사에 가지도 않은 분입니다.
성철 스님은 생전에 ”사리가 뭐가 중요하노?“ 하시면서 주변에서 사리를 지나치게 신비화하는 것을 꾸짖으셨다고 원택 스님은 말했습니다. 원택 스님의 충정은 이해가 가지만 동상을 거대하게 세우고 사리탑을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거대하게 세우는 것이 성철 스님의 뜻에 맞을까요? 오히려 사리탑도 다른 스님과 비슷하게 숨어 있고 동상도 세우지 않는 것이 성철 스님에게 어울리지 않을까요.
오늘의 사리탑과 동상을 성철 스님이 보셨다면 “야 너거들 잘 했데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모르긴 해도 “야 이놈들아 너거들이 내 얼굴에 똥칠하는 거 아이가”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저라면 조금은 소박하게 했을 것 같습니다.(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