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엄경희

차이성을 축으로 하는 은유

by 현목

이 책은 저로서는 이른바 ‘대박’이었습니다. 오랜동안 개인적으로 시에 관심을 가지고 왔고 또 아마추어 수준으로 써온 저로서는 언제나 은유가 관심사였습니다. 왜냐하면 은유를 잘 구사하면 시는 신선하게 다가오고 격이 달라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은유를 사용하는 데 언제나 서툴렀습니다. 그것은 제가 훈련을 잘 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체질적으로 은유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탓에 은유가 아닌 방향으로 시를 구성하는 데 더 힘을 쏟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은유는 제게 넘어야 할 산이었기에 어느날 인터넷 서점에 ‘은유’라는 단어를 치고 책을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있었지만 그 중에 두 권을 골랐습니다. 장석주의 『은유의 힘』과 엄경희의 『은유』였습니다. 후자는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도 저에게는 익숙한 이름도 아니었고 책 페이지 수도 96쪽이어서 그저 그런 책이겠거니 했습니다. 장석주의 책은 제가 찾는 해답은 주는 것은 아니었고 은유를 구사한 시들의 서평 모음집 같았습니다.


엄경희의 『은유』을 읽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제껏 제가 은유를 이해한 것은 은유란 A와 B의 유사성을 찾는 것이고, 그 유사성이 너무 많으면 진부한 표현이 되고 너무 유사성이 적으면 난해한 표현이 된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제가 이제껏 은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시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그중에 책을 다 읽고 기억나는 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째, A를 원관념, B를 보조관념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이것은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저는 그런 개념을 오랜 동안 잊고 있어서 제게는 새롭게 다가 왔습니다.


둘째, 저자는 B라는 보조관념이 더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제껏 A와 B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저 둘을 비교하여 새로운 감각을 얻는다는 정도에 머물렀습니다. 원관념 A를 표현하는데 그것을 새롭게 인식시키 위해서 등장한 무기인 B가 당연히 비중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원관념 A를 은유하기 위해서는 참신한 보조관념 B를 등장시켜야 합니다.


셋째 원관념 A에서 보조관념 B로 우리의 생각을 옮겨가는 것을 ‘층위를 이동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저에게는 새로운 인식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냥 A를 B와 비교한다는 생각의 수준이었는데 그것이 서로가 층이 다른 것, 예를 들어 하늘이라는 층위에서 바다의 생물인 물고기라는 층위로 우리의 의식을 이동시킨다는 것입니다.


넷째 이것이 이 책을 읽은 가장 큰 보상이었습니다. A에서 B로 은유하는 것은 유사성만이 아니라 ‘차이성‘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문한 저지만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유사성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저자의 책에 있는 대로 하면 서정주의 시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 ’光化門은/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宗敎(광화문). 광화문과 종교를 유사성이라는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은유는 이런 유사성만이 아니라 A라는 원관념과 B라는 보조관념의 ‘차이성’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많습니다. 어쩌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가 개구리 입에서 산다.’ 이 문장은 열한 살의 제 손자가 만든 문장입니다. ‘목소리’라는 층위와 ‘개구리‘라는 층위에서 이 두 가지의 유사성보다는 차이성을 더 보여줍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차이성에서 나오는 동사는 그 원관념에서 유추될 수 있는 인습적이고 습관적이고 일반적이 아닌 전혀 예상 외의 동사가 나와야 그 표현이 생명력을 더 얻을 수 있습니다.


다섯째, 은유의 사슬, 은유의 병치라는 개념을 처음 들었습니다. 은유를 쓴다고 해도 그때 그때 자신의 머릿 속에 떠오른 것을 별다른 생각없이 나열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은유의 병치라는 것은 그 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 맞는 은유를 의도적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병치하는 것입니다. 이제껏 저는 그런 면에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했습니다.


빌 루어바흐와 크리시틴 케클러의 『내 삶의 글 쓰기』에서 보면 은유를 훈련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예컨대 A는 ‘이혼‘이고 B는 ’쇠스랑‘입니다. 이걸 갖고 문장을 만드는 훈련입니다.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겠습니다. ’이혼에는 쇠스랑 소리가 난다.‘ 제가 여기서 힌트를 얻어 A, B 둘다 구체적 사물명사를 사용하여 연습하자고 하여 A와 B의 목록을 만들어 연습을 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은유의 훈련도 되지만 한 가지 더 유익한 점을 취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 사물 명사를 사용하여 문장을 만들면 그게 바로 그림을 그리듯이 묘사를 나타내는 문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은 구구하게 하지만 제 경험에는 은유는 타고난 선천적인 재능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재주가 없는 놈은 연습을 하는 수밖에는 없겠죠.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