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한다는 것은 세상과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 책을 읽는 중간에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완성된 글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도중에 생각난 아이디어들을 적어두어야 나중에 독후감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제가 대개 독후감을 쓰는 방법은 하나는, 완벽하게 읽고 또 요약하고 나서 그것을 바탕으로 써왔습니다. 이렇게 쓰다 보면 하나의 독후감으로 완성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그래도 제가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한 책들은 이런 방식으로 해왔습니다. 다른 하나는 일본의 정신과 의사인 가바사와 시온(樺沢紫苑)이 『외우지 않는 기억술』에서 권하는 방법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인상에 남은 것을 ‘마구 쓰라’고 했습니다. 이 경우는 기억에 많이 남으면 그런대로 쓸 거리가 있지만 책이 방대하거나 복잡한 것은 막상 쓰려면 뭘 써야할지 ‘꺼리‘가 별로 없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실 책을 읽다 보면 도중에 그때그때마다 저자에 대한 공감과 동의하지 못할 부분들이 나옵니다. 그런 것들은 적어두지 않으면 책을 읽고 나서는 다 잊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제가 이번부터는 작전을 바꾸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노트북을 항상 옆에 두고 독후감으로서 사용될 만한 아이디어는 적어놓고 나중에 그것을 적당히 종합하여 하나의 독후감을 완성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 책을 선택하여 읽을 때는 처음에 저자가 교수라고 하니 당연히 이론서로 생각했습니다. 시론을 저술한 대부분의 교수들은 처음에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맞는 논리를 펴나가다가 후반부에는 수사학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승하 교수의 시론 책은 제 예상과 달랐습니다. 솔직히 말해 약간은 실망을 하면서도 귀중한 조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너무 초보자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아 저로서는 조금 싱겁게 느껴졌지만 군데군데 제가 다시 생각을 정리할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시쓰기를 왜 하느냐하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시인인 저도 시를 쓰면 위안을 얻고 불안한 마음이 안정됩니다」 저의 경우도 시쓰기를 하면 두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하나는 저의 생각이 정리가 되는 느낌을 갖습니다. 다른 하나는 시의 작법에 있어서의 언어적인 기교가 주는 쾌감을 얻습니다.
시를 쓸 때 첫 행, 나아가 첫 연을 신경을 많이 쓰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독자가 시를 읽을 때 (어떤 산문도 마찬가지겠지만) 첫 행 혹은 첫 연을 읽으면서 ‘어,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면서 궁금증을 일으킨다든지 ‘야 이 표현은 너무 멋있는데’라고 인상이 박히면 글을 집중해서 읽게 됩니다. 이것은 새삼스럽게 처음 접하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저자들도 그렇게 말했지만 이번은 저에게 크게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대개 신경을 안 쓰고 쓰다 보니 평범한 첫행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점은 저의 시작의 경우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사항이었습니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세상과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 났습니다. 브라이언 클락이 쓴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을 보면 비트겐슈타인은 종교란 결국 자신이 믿는 바에 의해 자신의 삶의 형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승하 교수 말도 당신이 문학인으로 살려고 하면 일반 사람들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문학인으로 살려면 이 자본주의 사회가 지고지선으로 알고 있는 치부는 추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앉아서 글을 쓴다면 중국 작가 위화가 말하듯이 의자에 궁둥이를 오래 붙이는 버릇이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젊을 때 책을 안 읽으면 영영 못 읽습니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심하게 자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그래도 문학에 관심이 있고 시를 쓰려고 노력하는 제가 이승하 교수가 읽었어야 하는 책의 목록을 제시한 것을 보면 그 중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외에는 읽은 것이 없었습니다. ‘젊을 때’가 훨씬 지났지만 시간을 내어서 이분이 권하는 책이라도 한번은 읽어야 그나마 체면이라도 세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가지 그분의 지적은 저를 여지없이 낯을 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려면 웹서핑, 카톡하는 것, 게임, 텔레비전 시청, 스포츠 경기 관람, 영화보기, 음악감상, 등산 친구와의 만남, 맛있는 것 먹기, 등 등을 줄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 어간의 정치적 문제가 마음이 안 들어 50여년 보던 C일보를 절독하고 한국 티비는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를 보게 됩니다. 이것이 무슨 마약처럼 한번 보기 시작하면 저의 시간을 거의 다 잡아먹어 버립니다. 나중에 정작 책을 읽으려고 하면 피곤해서 하지를 못합니다. 이승하 교수의 말처럼 삶의 형식을 바꾸고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해야겠습니다.
시를 쓰려면 다른 시인이 쓴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합니다. 이 말도 처음 듣는 것도 아닙니다. 아니 수도 없을 접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실생활에서 잘 실행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에 제게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필사를 많이 하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사실 그렇게 할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고나 할까요. 시집을 읽으면서 제가 좋아하는 시들을 따로 타이핑을 하여 모아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첫 ‘빳따’가 이 책에 실린 서정주 시인의 「四更」이라는 시였습니다. 짧지만 행간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입니다.
(이 독후감을 읽는 이 순간에 그간 사정이 좀 달라졌습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시집은 필사를 일곱 번 했고, 이번에는 작전을 조금 바꾸어 한 시인만 집중적으로 파기로 했습니다. 송재학의 시집 열 권중 다섯째 시집을 필사 중이고 이에 더하여 ‘이기적 시작법’이라고 하여 그 시를 모방하여 작시는 것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만 후자는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독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아담하고 소담한 시편을 쓰다 보니 자유분방한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저의 치명적인 결점인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그것을 탈피하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타고난 재주는 어쩔 수가 없나 봅니다. 이제는 반쯤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만난 시인이 이노우에 야스시였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의 시작법은 제가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같은 산문시를 쓰는 정진규의 글은 사실 행갈이만 안 했다뿐이지 거의 운문 형식이고 따라서 많은 은유(=상상력)가 들어가 있다고 저는 봅니다. 하훈이라는 분의 시 「23.5」를 논평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첫 행부터 끝 행까지 긴장감이 한 순간도 늦춰지는 적이 없습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시인은 송재학이었습니다. 그의 시는 정말 한 순간도 긴장감이 없는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저에게는 도전해야 할 영역이라고 일단은 치부해두어야겠습니다.
아니 저는 일류 시인이 되는 건 포기했습니다. 제 인생을 어정쩡하게 살다가니 시도 그저 그런 정도로만 써도 만족해야겠습니다.
「자네의 시는 언어의 절제, 혹은 함축적 언어 사용이 급선무일세」
에휴, 알기는 알지만 이게 마음대로 안 됩니다. 하지만 다시 머리에 입력해서 될 수 있는 대로 함축적인 달리 말해서 수사적인 기교를 넣은 글을 쓰도록 신경을 더 써야겠습니다.
「시란 실제 겪었던 일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하고, 상징화하고, 이미지화하고 …… 언어를 갖고 세공하는 것이기에 시인에 대한 별칭을 '언어의 연금술사‘라고 하는 것이겠지요.」
이것이야말로 시인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위대한 건축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그보다는 소박하더라도 우선은 튼튼하고 안전한 건물을 짓기 위해 올바른 공정, 건축 기술을 구사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 이 시 역시 진부한 발상과 표현이라 발견의 영토를 갖지 못했습니다. 주제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여운을 남기지 않는 시입니다.」
시를 쓰고 이것이 진부한 발상이 아닌지 검토를 하고 시를 다 읽어보고 여운이 남는지 안 남는지도 체크를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소재와 주제가 그다지 새롭지 않을지라도 표현을 잘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감칠맛 나는 표현은 치밀한 묘사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야, 이 말은 정말 중요합니다. 소재와 주제가 별 볼일 없어서도 표현력, 즉 시적 긴장을 일으키는 언어를 구사하면 표현된 언어를 맛보는 쾌감만으로 한편의 시는 자신의 임무를 다한 셈입니다.
후반부는 좋은 시들을 소개하고 있지만 너무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곁들이고 있어서 당장 읽기는 좋으나 그다지 좋은 정보는 얻지 못하지 않나 하는 감이 들었습니다.
(2019.3.23. 3:36am 화요일 學而齋 寓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