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의 복도가 조용했다. 복도의 한 가운데 천정에 붙은 형광등 불빛이 오늘따라 희미했다. 봄이 이미 와서 병실의 창문으로도 밝고 따뜻한 햇살이 비쳤다. 창문을 열면 그래도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간호사들도 안 보이고 매일 바삐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는 간병인도 없었다.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기웃거리는데 눈앞에서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면회를 오는지 중년의 남녀가 엘리베이터에서 불쑥 나오면서 누구를 찾는지 이리저리 둘러 보았다. 나는 얼른 엘리베이터 속으로 들어가 1층 보턴을 눌렀다. 그때까지도 누구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그랬는지도 딱히 모르겠다. 다만 내가 살던 그 집에는 지금 아무도 없고 내가 가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개똥이도 보고 싶었다. 내 가슴 속의 심장이 갑자기 뛰기 시작하고 숨이 찼다.
일층에 내려와도 오늘이 일요일이라 그런지 아무 근무자도 없이 대합실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니 따뜻한 햇살이 목덜미를 적셨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눈앞에 보이는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 대합실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이상하게도 내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 주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J로 가는 표 한 장 주이소.”
“천팔백 원 주이소.” 표 파는 여자가 말을 툭 던지고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눈꺼풀만 살짝 치켜들고는 나를 쳐다 보았다. 나는 애써 눈길을 피하면서 고의춤에 숨겨둔 꾸겨진 만 원짜리를 펴서 주었다.
버스의 좌석 중간쯤에 앉았는데 버스표를 받는 운전 기사가 내 모습을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차창 밖을 쳐다보면서 운전 기사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표시를 내었다. 완행 버스인지 정거장에 설 때마다 올라타는 승객들이 나를 힐끗힐끗거리며 지나갔다. 어쩌면 나의 자격지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종점에 도착하자 남아 있는 손님도 몇이 되지 않았다. 나는 늙은이라서 버스 계단은 내리는 것도 힘이 들어서 천천히 발을 내리고 있는데 운전 기사가 내게 말했다.
“할매, 지금 병원에 입원 중 아인교. 환자복 입고 어데 가능교?”
“우리 집에 간다. 며느리하고 의사가 짜고 낼로 가다뒀다이가.”
운전 기사가 나의 손을 잡더니 어딘가 끌고 갔다. 조금 기다리자 경찰 모자를 쓴 사람 둘이 나타나서 내게 물었다.
“할매, 이름이 뭔교? 나이는요? 병원은 S에 있는 그 병원 맞지요?”
“내가 김봉선이다. 구십세살 묵었다. 와? 병원 이름은 맞네. 그란데 너그들이 우째 그리 잘 아노? 우리 며느리가 연락했나?”
“여기 바지에 병원 이름이 써 있네요.”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차에 나를 태우더니 한참을 달려서 어느 사무실 같은 데를 데리고 갔다. 나는 멍 하니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아무래도 어딘가 열심히 전화를 거는 모양이었다.
“할매, 목도 탈 낀데 이 차라도 한 잔 하이소.”
“그런 차는 나는 안 좋아한다. 따끈한 율무차는 없나? 아이다 달달한 쵸코파이 한 개 주라.”
갑자기 아들과 며느리와 매일 보는 수간호사가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엄마, 우찌 된 일이오. 우리 속 좀 그만 썪이소.” 아들이 투덜댔다.
“봉선 할매, 병원이 난리 났심더. 병원 다 뒤지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안 왔능교. 이기 몇 번짼교. 아이고, 보호자분한테는 정말 미안합니더. 우리가 잘 지켜야 하는데. 그 때 하필 환자가 사레가 들려가지고 모두 그 방에 가느라 정신이 없었심더.”
병원 앰뷸런스에 옮겨 타고 다시 달렸다. 내 옆에 앉아 있는 며느리는 아까부터 입이 튀어나와 아무 말도 안 하고 딴 데를 쳐다 보았다.
“우리 집에 있던 개똥이는 밥 잘 주고 있나?” 내가 말했다.
“그런 걱정일랑 하덜 마소. 우리가 다 알아서 합니더. 어이구 이기 몇 번짼교.”
“야야,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멀쩡한 낼로 느그들이 병원에 가다놨다이가. 성 낼 놈이 낸 데 지가 더 지랄이고.”
병원에 와서는 나를 윗층에 있는 다른 병실로 데려다 놓았다. 간호사가 아들과 딸에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폐쇄 병동이라 이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나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너그들이 멀쩡한 낼로 다 짜고 붙잡아 놓았재.” 주위에 있는 이불과 서랍장 위에 있는 물병을 던졌다. “김철수 데리고 온나. 그 의사란 기 며느리하고 다 짜고 낼로 여기다 가다논 기라.“
주위에 있는 환자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을 느꼈다. 한참 소동을 치르니까 어떤 환자가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서 못 살겠으니 저 할매 딴 방으로 보내라고 간호사를 다그쳤다.
간호사는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무슨 주사를 가져와서 내 엉덩이에 찔렀다. 나는 잠이 들었고 깨고 보니 아침이었다. 역시 봄날의 따스한 햇살만은 내게 다정했다.
흰 가운을 입은 늙은 의사와 간호사가 들어오면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마 어제 내가 병원을 나서서 집에 간 얘기겠지. 나는 그게 무슨 죄를 지은 거라고 나를 여기다 내팽게치고 있는지 잘 몰랐다.
“할머니, 어디 아픈 데는 없습니까?”
“야 이놈아 니가 내 며느리하고 짜고 낼로 붙잡아 왔제. 내 며느리한테 돈을 몇 보따리 얻어 쳐묵었노. 누가 저 놈 수갑 채워 안 잡아가노.”
내가 그렇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의사는 난감한지 아무 말도 못했다. 나를 뚫어지라고 쳐다보는 면상에 대고 다시 삿대질을 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회진 오는 의사를 나는 가만 두지 않았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 속이 시원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 의사가 말했다.
“할머니 뭐, 먹고 싶은 거 없어요?”
순간 내 머리에 스쳐 지나는 것이 있었다. 몸이 풀리는 것 같았다. “따뜻한 율무차를 주던지, 아니 달달한 쵸코파이를 한 박스 주라. 여기 있는 할매들하고 나눠 먹게.”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는 그 의사에게 쵸코파이를 가져왔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당황하면서 잊었노라고 했다. 나는 다시 소리 질렀다. “저 놈 수갑 채워 안 붙잡아가고 뭐 하노.” 황급히 도망가는 의사 뒤를 따라 내가 쫓아갔다. 간호사들이 내 길을 막았다.
그 날은 정말 의사는 쵸코파이를 사왔다. 침이 내 입속에서 굴러다녔다. “고맙소. 이제 내 한테는 안 와도 된다. 내는 다 나았다.”
“아니, 인자는 진짜 안 와도 된다카이. 안 오는 대신에 기름값 애끼 갖고 쵸코파이 좀 사온나.” 내 입이 벌어졌다. 물론 나도 그 이유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