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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 크리티앙 보뱅

by 현목

크리스티앙 보뱅을 우연히 유튜브에서 알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글쓰기의 전범(典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수필은 책은 크기도 12x20.5cm로 시집 크기이고 페이지 수도 150페이지 내외로 시집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시적 수필이라고 할 수도 있고, 과장해서 말하면 ‘산문시‘라고 말해도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구팔사북스에서 출간한 수필집 다섯 권을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은 수필집이 아니라 소설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파악이 안 되다가 뒤쪽으로 가면서 보뱅의 문장의 매력에 빠지면서 나름 스토리의 전개가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나서는 크리스티앙 보뱅이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약간 의문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주인공 뤼시의 결혼 생활은 저 자신이 나이 많은 세대라 그런지 조금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독후감에서 소설의 줄거리를 미주알고주알 쓰는 것은 수준 낮은 독후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소설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려고 하는 것은 사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제가 보기에는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뱅의 수필은 물론이지만 이 소설에도 만만치 않은 은유적 문장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집을 읽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이 줄거리의 소개 속에 어쩌면 보뱅이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뤼시의 부모는 서커스단의 일원이다. 루시가 두 살 반 때 그녀의 첫사랑인 늑대를 알았다. 그 늑대는 뤼시가 여덟 살 때 죽었다. 늑대가 죽은 후 뤼시의 가출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서커스단에서 잡일을 한다. 어머니는 침묵의 여인이다. 잘 웃는 여자다.


뤼시는 묘지를(아버지가 서커스단에서 잘려서 땅 파는 인부가 됐다) 드나들면서 문학에 대한 취향을 갖게 됐다. 뤼시는 바흐를 유독 좋아했다. 그 까닭은 ’그의 음악이 감정을 해방시켜 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바흐는 수천 개의 음표를 써 내려가면서도 결코 애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뤼시는 치열한 삶을 사는 사람을 불편해 했다. 어머니는 사랑의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뤼시는 그런 어머니를 닮았다. 뤼시는 여덟 살 때부터 열 살까지 가출을 여섯 번 했다. 아버지는 뤼시를 찾으면 수돗가로 끌고 가서 그녀의 머리에 물을 부었으나 어머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뤼시를 진정시키고 안도감을 줬다.


뤼시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겨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슈베르트의 소나타에서 언듯언듯 보이는 가난 속에, 저녁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 청색, 연청색, 청자색을 입히는 섬세한 붓질에, 갓난아기의 눈꺼풀 위에,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다 열어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땅바닥에서 ’팡‘하고 터지는 밤껍질 소리에, 꽁꽁 언 호수에서 미끄러지는 개의 서투른 걸음에.’ 이 글은 행갈이만 하면 시가 된다. 이 ‘가벼움‘은 이 소설의 제목 ’가벼운 마음‘이다. 왜 가볍다고 했는지 그것을 암시하는 글귀들이 군데군데 나온다.


뤼시는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는 우수하나 수학과 과학은 젬병이다. 뤼시는 가출 대신 생트아네스 중학교라는 기숙학교로 간다. 토,일요일 주말만 받아주는 집에서 하숙을 한다. 이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들의 가족은 대부분 가난하다.


뤼시가 열 살과 열일곱 사이에 그녀의 마음은 바람이 드나드는 통로가 된다. 그 마음을 통과했던 사람들이다. 엘리자베스 그랑빌. 주말에 집으로 가지 않는 아이다. 아드리엔 수녀. 뤼시와 친구들에게 어떤 질책도 하지 않았다. 마리즈 농샬롱. 뤼시와 엘리자베스의 대모로 주말의 숙식을 해결해 준다. 마리즈 농샬롱이 어떤 할머니 얘기를 했다. 세상의 온갖 불행을 당한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예요?” 할머니가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이야. 누구도 너한테서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해라.” 아마 이것이 뤼시, 아니 보뱅의 생각일 것 같다. 바스티엔 오르맹. 거식증을 가졌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로망 케르보크. 스물두 살의 법학도다. 뤼시가 열일곱 살에 처음으로 함께 잔 청년이다. 아무 의미도 없지만 뤼시는 결혼하기로 한다.


로망의 집안은 가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공증인이고 어머니는 변호사다. 뤼시가 로망의 결혼 상대로는 못마땅해 했다. 뤼시는 로망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로망은 문학에 뜻을 두고 열심히 썼다. 뤼시는 향수 가게에서 판매원으로 일한다. 나중에 중고 서점으로 취직한다.


뤼시는 로망과 7년 동안 결혼생활하는 동안 외간 남자와 탈선을 네 번 한다. 그때마다 로망에게 서커스단 사람들과 있었다고 거짓말한다. 로망은 시청의 비서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한다. 주거 지역 근처에 있는 단풍나무를 처치하려고 건물소유주 모임이 있었다. 뤼시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때 어떤 거인의 남자가 뤼시에게 동조했다. 거인이 승리를 축하하자고 뤼시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둘은 그 자리에서 불륜을 저지른다. 뤼시는 사랑에 빠지고 난생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뤼시를 편안하게 해주는 세 가지는 글쓰기, 아르부아 와인, (바흐의) 소나타 3번이다. 괴물과 3년을 지냈다. 물론 로망과의 결혼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알방이다. 알방을 사랑한 연유를 뤼시는 말한다. “숲속의 세레나데 같은 그의 마음에 나를 발견한다. 바흐에 대한 그의 애정, 바흐를 향한 그의 열정, 그것이 내가 그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뤼시는 로망에게 자기의 네 번의 불륜을 고백했고 로망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혼을 결정하기까지 3년이 걸렸다. 괴물, 알방과의 사랑에서 남은 것은 바흐 음악뿐이다. 알방은 파리 오페라의 수석 첼리스트다. 뤼시는 알방과 매일 자지만 결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로망이 책을 출판했다.


뤼시는 호텔 주인에게게 빌린 차를 타고 호수 지역을 돌아본다. “내게는 이 이상 아버지든 어머니든 남편이든 필요하지 않다. 내게 필요한 건 단지 목덜미로, 피부와 블라우스로 스미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는 것이며, 내 눈을 전나무의 짙은 초록색으로 물들이는 것뿐이다.” 결국 뤼시는 가족이니 남편이니 불륜남이니 하는 구속보다는 ’가볍게‘ 산다는 생각에 이른 것 같다.


3년이 지나자 로망이 결심한다. 뤼시의 캐리어 3개와 가방 2개를 층계에 쌓아놓는다. 뤼시는 알방을 데리고 와서 짐을 알방의 집으로 가져온다. 뤼시는 2주일 안에 아파트를 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혼은 인생에 한 번으로 족하다고 말하니 알방이 긴장을 푼다. 대신 뤼시는 바흐의 음악을, 바흐의 음악이 주는 기쁨을 데리고 가겠다고 말한다.


뤼시는 자신이 로망에게 돌아가지 않은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무정이 아니라 가벼운 마음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3년 동안 뤼시에게 글쓰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또 ’가벼운‘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뤼시는 결혼은 가벼운 마음으로 하고 글쓰기와 바흐 음악 듣기가 본업이 아닐까. 이게 이 소설에서 보뱅이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뤼시는 아버지 어머니에게 가서 로망과의 결혼이 파탄난 것을 이야기한다. 알방 얘기는 안 한다. 다음 날 로망이 찾아와서 다시 살자고 제안한다. 뤼시는 거절하고 로망은 가버린다. 뤼시는 우연히 알게 된 할머니를 보기 위해 요양원을 다시 찾는다. 할머니는 정신이 온전치 않았고 울고 있었다.


뤼시는 이제 스물일곱 살이다. 부모님 집에서 지낸 지 여섯 달이 됐다. 아버지는 뤼시가 소설 나부랭이나 읽는다고 궁시렁댄다. 어머니는 웃는다. 묘지 장면을 찍으려고 아버지와 영화 감독이 상의하다가 뤼시는 엑스트라 역할을 맡는다. 그후 단역 배우의 출연 제안이 계속 들어온다. 뤼시는 말한다. “우리는 약간의 건초로 기뻐하는 당나귀들이다. 우리는 가볍게 부는 바람을 몸에 걸친 그림자들이다.”


마침내 뤼시는 진짜 배역을 제안받았다. 촬영은 캐나다에서 있을 예정이다. 비행기 탑승 직전에 뤼시를 다시 찾아온 수호천사(아마도 뤼시의 진정한 자아일 것 같다)가 말한다. 쥐라로 가라, 호텔방을 잡고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써라. 서커스, 중학교, 묘지…. 그 후는 그때 가서 생각하라고.


뤼시는 쥐라에서 많이 성장했다. 전에는 항상 부모, 남편, 친구들이 있었다. 뤼시는 그들에서 벗어나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양원의 간호사가 노부인이 다음 주에 정신병원에 갈 것이라고 알려줬다. 뤼시는 은행에서 돈을 모두 인출했다. 자동차를 샀다. 노부인에게 뤼시는 둘이서 차를 타고 어디든 떠날 것이라고 알렸다. 노부인은 소리치고 웃었다. 노부인과 뤼시는 차를 타고 천천히 달린다. 노부인은 네덜란드, 이탈리아로 가는 건 그만두고 쭉 프랑스에 있자라고 말한다. 대신 자기를 뤼시의 예전 서커스단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노부인은 자신의 마지막 날은 사자들이 옆방에서 굴러가는 집에서 마치고 싶다고 말했다. 뤼시는 서커스단을 찾아냈다. 그들은 리모주에 있었다. 차의 뒷좌석에 3인조가 있었다. 누런 이빨의 늑대, 빨간 머리 천사, 그리고 뚱보(바흐). 뚱보가 휘파람으로 ’푸가의 기법‘을 불었다, 아니 그건 소나타다.


보뱅의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게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은 구성이 일반적인 소설의 수법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발단-전개-위기-절정-대단원의 구성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꼭 이런 공식에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저로서는 뤼시의 젊었을 때의 회고록을 스물여섯 개의 시적 수필로 구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로서는 소설 자체의 주제보다는 각각의 장(章)마다의 은유를 구사한 문장을 읽는 재미가 더 좋았습니다.


뤼시의 가출과 중학교, 그리고 로망과의 결혼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의 정서로는 잘은 와닿지 않았습니다. 특히 뤼시의 결혼 생활은 소설로는 낭만적일지 모르나 현실에서 과연 정당한지 모르겠습니다. 결혼한 사람이 불륜을 네 번이나 저지르고 또한 고백하고, 로망과의 7년간의 결혼생활 중 나머지 3년간은 알방과 이중생활을 했습니다. 로망도 뤼시도 차라리 깨끗하게 이혼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로 가는 게 올바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보뱅은 이걸 굳이 ’가벼운 마음‘이라고 설명하는데 저로서는 잘은 수긍이 안 됩니다. 결혼은 성이 다른 두 사람이 성으로 연결되어 자식을 낳음으로써 자신을 다음 세대로 영속시키는 것도 있지만 두 사람의 부대낌으로 서로 사랑을 알아가고 사랑을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최소단위의 세포로서의 역할도 있습니다. 그걸 단지 ’가벼운 마음‘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요?


보뱅이 이 소설에서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책 제목처럼 ’가벼운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너무 무겁게 진지하게 살지 말고, 너무 애쓰지 말고, 가볍게 대해라. 살아가면서 기쁨을 결코 놓치지 말라. 그것은 결국 올라가면 ’자유‘에 이르지 않을까요. 자신이 판단하고, 사람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라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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