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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Jun 17. 2023

엄마 아빠는 왜 싸우는 걸까

 부모님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자녀에게 별로 하지 않았다. 일터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오늘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친척과 왜 다투었는지, 돈이 얼마나 부족한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물어봐도 이야기가 길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자세히 묻지 않았다. 어느 날 궁금증이 커지면 옷을 벗어내듯 급하게 물어보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부끄러워져서 벗어버린 질문을 재빨리 주워 입었다.

 부모님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듣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어떻게 만났어?” 물으면 아빠는 “엄마가 하도 쫓아다녀서 만났지.” 하고, 엄마는 헛웃음을 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만났냐고!” 물어도 같은 대답이 반복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소개로 만났다. 엄마 나이 서른이었다. 둘 다 상대방이 첫 연애 상대였다. 내향적이고 순둥순둥한 두 사람이라 그럴 만도 했다. 엄마는 의류 공장에, 아빠는 가구 공장에서 일했다. 둘 다 경기도에 살던 시기여서 때가 잘 맞았다. 아빠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엄마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가 네 살이나 어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연이었는지 엄마는 아빠를 받아주었다. 수차례 걸려 오는 전화에 이야기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식사 자리에 나갔다. 한 번 두 번 만나다 보니 정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았다. 직장 문제로 몇 년 떨어져 살다가 제주에 정착했다. 엄마는 제주에서 친구를 사귀었다. 친절하고 인상이 좋아 어딜 가든 사랑받았다. 일하면서도 이것저것 시도했다.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아빠에게 자주 물었다. 마당에 상추나 호박, 가지, 고추 같은 걸 심어서 수확했다. 나는 그런 것에 관심 없어서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나는 다 ‘풀떼기’라 불렀다. 엄마는 풀떼기 그 자체보다는 무언가 성취하는 기쁨을 느꼈다. 수확해서 씻고 접시에 내놓을 때 굉장히 뿌듯해하셨다.

 집 옆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농작물을 키우다가 나중에는 그곳에 닭이나 오리를 기르기도 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빠 의견이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닭똥 냄새 가득한 곳에서 손을 휘휘 저으며 달걀을 주웠다. 그걸로 계란후라이 해주며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누구보다 부지런했다. 제주로 이사 오고 처음 몇 년 동안 활력이 넘쳤다.


 아빠는 동물을 좋아해 고등학교에서 축산과를 졸업했다. 돼지 목장에서 일했다. 쉬는 날에 우리 남매를 데리고 일터에 간 적이 있었다. 넓은 공터에서 새끼 돼지들이 어미를 졸졸 따라다니던 풍경과 멀리서 돼지 잡는 것을 몰래 훔쳐본 기억이 공존하고 있다.

 아빠는 집 마당에 늘 개를 키웠다. 도베르만이나 도사견 같은 덩치 크고 사나운 종이었는데 아빠가 훈련을 잘 시켜서 하나같이 다 온순했다. 외부인이 오면 목청 좋게 짖었는데 그렇게 든든할 수 없었다. 가로등 없는 곳의 밤은 하늘보다 땅이 더 어두웠기 때문에 대형견의 존재는 큰 위안이 되었다. 엄마와 함께 살기 전에는 ‘콜리’라는 품종을 키웠는데 아주 똑똑한 녀석이었다고 자랑하셨다. 무슨 병에 걸려 죽었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이름을 불러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아팠다고 했다.

 엄마는 개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물릴 뻔한 적이 있다고 했다. 개털 날리는 것도 싫어했다. 마당에서 키우는 건 괜찮지만, 집 안에는 못 들어오게 했다. 개는 밖에서 자라는 동물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아빠 없을 때는 엄마가 개밥을 잘 챙겨 주었다. 맨손으로 개를 만지지 못하셔서 목장갑을 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왜 장갑 끼고 있냐고 하니까 무섭다고 하며 겸연쩍이 웃으셨다. 그것도 모르고 우리 집 개들은 엄마를 보면 반갑다고 꼬리 쳤다.


 아빠는 쉴 때 성경을 읽었다. 친구도 취미도 없었다. 술 담배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학교 후배는 아빠를 일컬어 신선 같다고 했다. 욕심도 없고 초연한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본 아빠는 종교로부터 평안을 얻는 사람이었다. 월급을 벌어도 교회에 바쳤다. 엄마가 생활비에 시달려 괴로워할 때도 과거시험 준비하는 선비처럼 성서를 펼칠 뿐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해진 메리야쓰 입고 앉은뱅이책상 굽어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성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싫었다. 엄마는 아빠의 해진 옷을 꿰매주거나 시장에 가서 새 옷을 골라 왔다. 하지만 아빠는 월급을 엄마에게 맡기지 않았다. 엄마의 불만이 커질수록 나의 행복도 작아졌다.

 제주로 온 후 부모님 말다툼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잦았다. 아빠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었는데 엄마한테는 소리를 질렀다. 초반에는 아빠의 고함에 엄마가 한발 물러났다. 나중에는 아빠의 고함에 엄마의 고함이 맞섰다. 대부분은 돈이 원인인 것 같았는데 나는 그 내막을 알 도리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싸움의 이유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싸우는 게 자연스러워서 싸우는 것이지 처음 다투게 된 발단이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보였다. 그런 상황에서 져 주는 사람은 주로 엄마였다. 싸운 뒤라도 엄마는 화난 감정을 참고 밥을 차렸다. 아빠가 져 줄 때도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리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방에서 뭘 하는지는 안 봐도 분명했다. 아빠는 책 속에서 신을 찾아다녔고,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작은 악마였다.

 엄마는 제주 생활에 적응하면서 변해버린 아빠에게도 적응해야 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엄마의 눈물을 본 적이 있었다. 아빠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엄마는 울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엄마에게 물어보니 그때 아빠가 소리 지르는 걸 처음 보았다고 했다. 결혼하고 몇 년이나 지나서 처음 화를 냈던 아빠가 이제는 엄마에게 성내는 걸 거리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그게 속상했다.

 함께 살면 눈이 나빠지는 것 같다. 원시 증상처럼 상이 망막 뒤에 맺히고 배우자가 마음 뒤에 맺히는 듯하다. 내 마음은 또렷한데 상대는 흐릿해 보인다고 나무란다. 멀리서 보아야 소중함이 보이는 걸까. 아빠와 따로 살고자 했던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내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엄마와 두 자녀는 시내로 이사 갔다. 아빠는 직장 근처에서 지내다가 주말에만 시내로 넘어왔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몸이 멀어지니 부부는 덜 싸웠다.


 아빠는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고 했다. 돈을 모아서 엄마와 여행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 말만 몇 번 했는데 한 번도 실행한 적은 없었다. 작년, 아빠는 예쁜 목걸이를 사서 엄마 목에 걸어주었다. 아빠가 엄마에게 선물 주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나는 그곳에 없었기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생이 찍은 영상으로 보았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볼록 렌즈 역할을 잘했다.

 나는 군대 다녀온 뒤 의식적으로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으로 부모님과 상의 없이 진로를 결정하고 통보했다.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깨달았다. 아, 나도 아빠를 닮았구나. 가족보다 내 소망이 더 먼저인 사람이구나. 이상을 좇으면서 현실은 외면하는 타입이구나. 미운 점까지 물려받은 아빠 아들이구나. 돌아온 탕아처럼 부모님 댁으로 들어갔을 때 가족에게 조금 더 신경 쓰자고 다짐했지만, 한참 부족했다. 그래도 엄마는 남편보다 아들이 낫다고 하긴 했다.

 아빠도 몇 년 전부터 기력이 많이 쇠했다. 엄마 따라서 체중도 많이 빠졌다. 육체노동 하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기 전에, 귤밭에 가서 밭일하는 생활을 오래 했다. 나무 보일러를 쓰고 있어서 밤늦게 집에 오면 나무를 때야 했다. 주말에는 나무를 구해 와서 전기톱으로 자르고 창고에 쌓아 놓았다. 그리고 또 밭일을 가야 했다. 근육이 다 휘발되어 뼈로 버티는 것처럼 보였다. 엄마는 병상에서도 아빠 걱정을 많이 했다. 아빠까지 아파서 쓰러지면 어떡할래, 네가 아빠를 도와야지, 하셨다.

 서울에서 아빠 없이 살 때 도둑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 누가 들어와서 이것저것 훔쳐 갔다. 제주로 이사 온 후, 나는 큰 개가 있어서 도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거로 생각했다. 엄마는 개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아빠랑 함께 살게 되어 안심했다. 도둑이든 호환 마마든, 그때의 엄마는 아빠와 함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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