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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요일 Aug 23. 2023

눈물이 거꾸로 흐른다면

 양복을 입은 나. 친척 형과 그의 친구와 함께 카드 게임을 했다. 하하 웃기도 했다. 죄책감이 들었는지 잠시 조용했다. 그래도 게임은 계속되었다. 멍하니 허공을 보다가 소란스러웠다가 드문드문 가벼운 침묵이 흐르기도 하였다. 무거운 공기가 침묵보다 아래로 깔리면 내 머리까지 덩달아 무거워졌다.


 하루 전, 서울 어딘가의 양복점에서 정장을 급하게 샀다. 약간 컸는데 사이즈가 없다고 그냥 입었다. 큰이모가 그 정도면 괜찮다고 했는데, 작은이모가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계속 자랄 거라고 했다. 가운데 단추가 세 개 달린 재킷이었다.


 그 하루 전, 조금 떨어진 발치에서 엄마가 우는 걸 지켜보았다. 잠시 후 나는 돌아가신 할머니 옆에 서서 영혼이 떠나간 옆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름으로 가득하였는데 만지지 않아도 차가워 보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할머니가 ‘남’ 같이 느껴졌다.


 그 삼십 분 전, 병원 앞에 작은이모가 마중 나와 있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난 이모가 무척 반가웠다. 눈치도 없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이모가 나를 반겨주지 않아서 서운했다. 이모의 눈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웃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표정을 고쳤다.

 이모 눈이 조금 부어 있었다. 목이 쉬어 있었다.


 김포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미터기 위로 말이 달리고 있었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라 나는 택시 기사를 경계했다. 괜히 엉뚱한 길로 돌아가서 돈을 더 받으려는 것은 아닐까. 제주도와 다르게 뱅글뱅글 도는 길이 자꾸 나왔다. 어딘가 기괴하다고 느껴졌다. 나도 옛날에 서울 살았는데 그런 적 없던 사람처럼 모든 것이 낯설었다. 길은 계속 울렁거렸고 엄마 아빠는 말이 없었다. 아빠는 누군가에게 전화 걸어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교실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좀처럼 호출받은 적 없었기에, 교무실로 오라는 방송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다. 선생님은 나더러 집으로 바로 가라고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교실로 돌아와 가방을 챙겼다. 장난치며 나를 막아서는 친구들에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툭 던지니 저절로 길이 열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저들은 이 시간에 어디를 가는 걸까 괜히 궁금했다. 그들의 사정을 깊게 상상했다. 그러다가 죄의식이 스며들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옷 갈아입고 가방 하나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고 다음 날 돌아가셨다. 엄마는 나를 낳았지만 기쁜 티 내지 못했다. 제주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병상에 누워 제주도 사투리로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따뜻한 말이란 것을 충분히 느꼈다.

 서울 할아버지는 엄마 어렸을 때 집을 나가 다른 살림을 차렸다. 엄마가 초등학교 다니기 전부터 할아버지는 집에 잘 오지 않았다. 하루는 엄마 혼자 집에 있었는데 연탄가스가 새서 기절하고 말았다. 어디서 나타난 할아버지는 어린 엄마를 안아서 다른 곳에 눕혔다. 깨어난 엄마에게 약을 사다 준 할아버지는 그대로 사라졌다. 그것이 엄마가 마지막으로 본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서울 할머니는 오랜 시간 내 유일한 조부모였다. 나는 엄마와 이모의 불호령은 무서워하면서 할머니에게는 대들었다. 할머니는 엄마 대신 밥을 차려주기도 했다. 델몬트 유리병에 생수를 담아 냉장고에 두셨다. 작고 둥그런 나무색 밥상을 펼쳐서 친척 형이랑 나랑 동생이랑 할머니랑 넷이서 밥을 먹은 적이 많았다. 내가 소변보려고 하면 바지를 내려주셨는데 너무 거칠게 해서 싫어했다. ‘할머니는 저리 가라고!’ 그런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예닐곱 살쯤 어느 날엔가 밥 먹을 때 할머니에게 숟가락을 던진 적이 있었다. 던져놓고 움찔했는데 다행히도 빗나갔다. 할머니는 엄마와 이모에게 이르지 않았다. 나는 똑같은 악행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았다.


 할머니 돌아가신 모습이 영화에서 쓰는 밀랍 인형 같았다. 나는 슬프지 않았다. 그냥 머리가 무거울 뿐이었다. 이상했다. 오랜 시간 가까이 살았는데, 7년 안 보았다고 정이 다 사라졌나. 정이란 것이 참 하찮은 놈이구나. 아니면 내가 하찮은 놈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할머니 몸을 쥐어짜며 우는 엄마를 보는 일이 더 슬펐다. 무어라 소리치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원망하는 소리가 더 애처로웠다. 옆에서 엄마를 다독이는 이모들의 모습이, 엄마 오기 전에 그녀들 몫의 슬픔을 받아내고 이제 엄마를 챙기는 자매애가 더 가여웠다. 엄마의 서러운 눈물은 과거를 향하는 것 같았다. 못다 한 말을 전하기 위해 시간을 되돌아가야 했다.

 그것이 비극이었다. 거꾸로 가려면 엄마의 눈물은 위로 흘러야 했는데, 아래로만 향했다. 엄마 대신 내 눈물이 거꾸로 흐른 걸까. 내 것은 눈 밖으로 나오지 않고, 뇌 깊은 곳으로 고이는 것 같았다. 나는 할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셨기를 바랐지, 그 죽음에서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머리가 아팠다.


 생선 공장에서 퇴근하는 엄마에게서 생선 비린내가 은은하게 났다. 옛날에 할머니도 서울에서 시장 일을 했다고 들었다. 과일도 팔고 잡화도 팔다가 나중에는 생선을 팔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세상 모든 걸 가져다 팔아서 가족을 먹였다. 엄마도 할머니처럼 나와 동생을 먹이려고 무던히 애쓰는 생을 살았다.

 할머니 돌아가시고 십 년쯤 지나서 엄마랑 서울 갈 일이 있었다. 할머니가 일했다던 어느 시장에 가 보았다. 엄마는 생선을 파는 어떤 할머니를 발견했다. 다가가서 나를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상인의 웃음을 지었다. 엄마는 생선을 적당히 사서 시장을 나왔다. 이모에게 전화해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노라 전했다.


 고2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해에 두 번째 아파트로 이사 갔다.

 나는 전원주택 살면서 가장 좋았던 게 큰 소리를 내어도 좋다는 점이었다. 밤에 노래 불러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크게 소리 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렸다. 불행히도 나는 목청이 약해 노래 한 곡 부르면 목이 쉬어버렸다. 목소리가 하루살이처럼 불타올랐다가 축 처졌다. 그렇더라도 노래는 내 안의 괴로움을 떠안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동생이랑 싸울 때는 서로 바락바락 소리를 냈다. 눈치 보지 않고 악을 쓸 수 있는 것은 전원주택의 단점이었다.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는 이웃이 의식되어서 고함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 남매는 번갈아 가며 이웃을 무시했다.

 나와 동생은 엄마에게도 소리 질렀다. 한 명이 악쓰면 다른 한 명은 엄마 편이 되어 왜 엄마한테 그러냐고 쏘아붙였다. 그때부터였을까. 엄마는 우리를 혼내지 못하고 타일렀다. 그 타이름은 어딘가 간절해 보였다. 물론 그것이 나를 향했을 때는 보고 싶지 않은 표정이었다. 내 스스로 ‘죄인’임을 느끼게 하는 성자의 얼굴이었다. 이불 덮고 울며 후회하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다음날이면 아침밥을 내어주며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혹은 터질듯한 막막함을 못으로 삼아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나는 마음이 아주 답답하면 바닷가까지 한 시간을 걸어갔다. 거금 들여 산 MP3 플레이어 하나 들고 갔다. 이어폰 귀에 꽂으면 걷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내가 소리를 지르지 못하는 대신으로 남이 지르는 소리를 잠잠히 들었다. 어쩌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건 목청이 아니라 고막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매운 음식을 먹는 것처럼 나의 몸 어딘가 시원해질 때까지 아프게 하면 그걸로 해소되는 것일까. 죄책감을 기어이 통증으로 전달해야 이 못난 몸이 깨닫는다고.

 엄마에게 소리 지르고 나면 더러운 나를 저주했다. 과거의 옷자락을 붙잡고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빌었다. 나의 악함에 대해 고민했다. 할머니 시신을 보고도 울지 않은 나는 얼마나 잔혹한 사람인가. 파도 소리 따라서 힘껏 내 안을 게워 내고 싶었지만, 제주의 바닷가는 겨울에도 관광객이 걷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차마 살피지 않았다. 악마의 천적은 행복한 얼굴이라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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