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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Feb 24. 2024

작은 연주들

금요일 오후, 사랑하는 선생님 세 분의 퇴임식이 있었다. 방학 직전 교장선생님께서 연주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하셨다. 학교 신우회에서 오래 뵌 한 분과 같은 학년에서 사랑을 듬뿍 주신 두 분을 위해 작은 것이나마 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어떤 곡으로 할까 하고 고민하며 여러 퇴임식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걱정 말아요 그대’와 ‘My Way’로 결정하고 악보와 반주 파일을 찾아보았다. 예전에 사 두었던 바이올린 2중주 악보를 찾아 가위로 잘라 가며 짜깁기하고 인터넷에서 찾은 악보를 연결했다. 반주 파일도 둘을 편집해서 붙였다. 처음 연습할 때만 해도 남편이 그렇게 해서 감동을 주겠느냐고 핀잔을 주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들을 만하다고 이야기해 주어 조금씩 용기를 얻었다. 


평소에 틀리지 않고 하니 걱정 없겠지 싶었는데 당일이 되자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하는 곳이 바로 무대가 아니던가. 실수 없도록 아침부터 틈나는 대로 연습을 하고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 결국 평소에 늘 입던 옷으로 입고 악기와 보면대를 들고 학교로 갔다. 3시 반 시작인데 2시 반쯤 도착해 반가운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시청각실로 가 악기를 풀었다. 노트북을 연결해 음원을 틀어주신다고 했지만 이것만을 위해 노트북 연결하시기 귀찮으실 것 같아 가져간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용하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연결했더니 전화가 올 때 음원이 끊어져 방해 금지 모드와 항공 모드로 해 두었다. 연주 중 전화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3시 반이 되자 식이 시작되었다. 주인공 선생님들을 보니 왠지 마음이 짠했다. 뛰어난 분들이 학교를 떠나시는 것이 아깝기도 했고 앞으로 가지시게 될 자유가 부럽기도 했다. 교감선생님의 약력 소개와 교장선생님의 감사패 전달, 그리고 퇴직하시는 선생님들의 말씀이 있었다. 대본도 없이 어찌나 다들 말씀을 잘하시는지 감동의 시간이었다. 


두 선생님의 송사가 끝나고 드디어 연주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들께 축복과 감사의 메시지를 잠깐 전하는데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큰 공연장에서 솔로 할 때보다 더 떨리는 느낌이었다. 음악이 시작되고 평소에 늘 연습하던 대로 연주를 했다. 중간에 살짝 흔들린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리 티 나지 않게 지나갔고 큰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어 감사했다. 선생님들이 감동받았다고 하셔서 정말 행복했다. 내 작은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하기도 했다. 여러 분이 영상을 보내주셨다. 들어보니 살짝 음정 나간 부분들도 있고, 평소보다 잘 안 된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들을만했다. 영상까지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었다. 


마치고는 바로 식당으로 이동해 송별회를 했다. 가시는 선생님들을 보내는 자리였다. 이번에는 나도 학교를 옮기게 되어 아쉬운 마음으로 여러 선생님들과 두루두루 인사를 했고, 마치고는 우리 학년 선생님들과 카페에 가 이별의의 아쉬움을 달랬다. 




오늘(토요일) 아침에는 인근 학교에서 ‘경기도 회복적 교육 연구회’ 모임의 식전행사로 앙상블 연주를 다녀왔다. 2년 전에 결성한 사중주단에 플루트가 합세하여 함께 연주했다. 플루트 연주자인 교장선생님이 그 모임의 회장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초대하셨다. 회복적 교육 연구회 분들이라 그런지 호응이 너무 좋았다. 곡이 끝날 때마다 ‘우와!’하고 함성을 보내셔서 얼마나 신나게 연주를 했는지. 환한 미소로 우리 연주를 경청해 주시는 이런 선생님들 학급의 아이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생각했다. 


원래 오늘 연주한 곡을 다음 주 월요일 ‘경기도 화해중재단’ 발대식에서 하려고 했던 것인데 급히 오늘 리허설처럼 하고 온 것이었다. 월요일에 같은 곡을 연주하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치고 준비해 주신 김밥을 먹으며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있을 때를 대비해 곡을 미리 연습해 두자는 이야기를 했다. 피아노 연주자도 있으면 좋겠다고 하여 오케스트라 활동을 같이 하는 분으로 한 분 생각해 두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즐겁게 활동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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