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원 숙소에서 일찍 퇴소하고 아침을 먹었다. 도복 차림이었다. 바로 대수련장으로 갔다. 9시 오전 시간 분들이 가득했다. 전날 뵈었던 분들을 다시 뵈니 반가웠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며 나도 체조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고 몸이 무거웠지만 오늘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단톡방에 전날 전문 시험에서 출제된 구술 문제들과 아침에 출제된 문제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와 연습만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처음 보는 질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외운다고 외우긴 했지만 다른 분에 비해 수련 기간이 짧기도 하고(대부분 4단 이상이었다) 아직 품새도 태백까지 겨우 배우고 온 터라 기본 지식이 부족하기도 했다.
시험 소집 1시간 반쯤 전에 드디어 짝꿍이 도착했다. 한체대 품새선수 출신의 여자분이었다. 바로 표적차기 연습을 시작했는데 허공이나 다른 분과 연습할 때와 다르게 내가 너무 어설퍼 정말 미안했다. 그때부터는 미트 잡는 연습을 주로 했다. 내 시험도 시험이지만 그분에게 적어도 피해는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아침에 숙소에서 혼자 미트 잡고 연습했던 거와 너무 달라 처음에 당황했지만 몇 번 맞춰 보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1시간 반 만에 급속도로 발전해 우리가 시험 치러 올라가기 전에는 거의 틀리지 않고 할 수 있게 되었다.
1시 소집 때 교육을 해 주신 분은 관장님 후배라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던 분이었다. 사진으로 미리 보았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이었다. 시험 마치고 인사드리까 했더니 올라가기 조금 전에 나를 부르셨다. 달려가 인사하고 관장님께 말씀 들었다고 대단하시다고 했다. 국기원이 우리나라 태권도를 얼마나 빛나게 하시는지 말씀드리고 나도 학교 일선에서 태권도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되어 시험장에 올라가다. 여기저기서 엄청난 기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나와 짝꿍(신기하게도 우리 도장 근처에 사셨고, 내가 새로 옮겨간 학교 앞 도장에서 사범으로 일하고 있었다)과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가장 자신 없어했던 태극 7장과 금강이 지정품새로 떠 있었다. 기본 손동작은 잘했는데 발차기 기합 영상을 본지가 오래되어서인지 발차기 후 방향 바꿀 때 기합을 넣야 하는 것을 발차기할 때 계속 넣어서 짝꿍 기합과 메아리쳤다. 그때만 해도 틀린 줄도 몰랐기 때문에 계속했다. 태극 7장 맨 앞부분 팔동작이 잠깐 틀려 바로 바꾼 것 외에 큰 실수는 하지 않았으나 품새 선수와 함께라 비교가 많이 되었을 것 같았다. 걱정했던 마지막 표적차기 네 가지는 제일 잘한 것 같다. 잡는 것도, 차는 것도 최선을 다했다.
마치고 3층으로 올라갔더니 구술시험 네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책 한 권을 거의 다 외고, 족보에 아침에 올라온 문제까지 외우느라 외웠는데 전혀 보지 못한 문제 네 문제가 나왔다. 이럴 수가. 다른 분들 이야기 들어보니 내가 외운 것들이 많이 나왔는데 왜 나는 어려운 문제들만 나온 것일까? 마지막 문제인 내가 아직 배우지 않은 평원 품새의 멍에 치기 지도방법을 설명하라는 것은 잊을 수가 없다. 아직 안 배워서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내년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왔다.
이틀 전에 내려와 선수처럼 열심히 연습한 시간들이 절대 후회되지 않는다. 첫날과 다음날 만난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사범님들의 패기를 보면서 희망을 느꼈고, 처음 보는 얼굴들 마주칠 때마다 서로 인사하는 예의와 혼자 연습하는 나에게 다가와 미트 잡는 걸 도와주신 분들, 잠깐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눈 동네 분들 모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실기는 이제 많이 익혔으니 내년에는 구술시험을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마치자마자 땀에 전 도복을 입은 채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고, 교회 오빠를 소개해 둘이 잉꼬부부로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진주에 갔다. 원래 얼굴만 보고 올라올 생각이었는데 친구네서 하룻밤을 묵었다. 전에도 두어 번 묵은 저기 있는 나의 평생 절친이다.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와 밥을 먹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친구도 바이올린을 하고 있어 레슨 받는 동안 샤워를 하고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도 갔다. 남편 분이 아침을 차려주시고 맛난 솔트라테까지 주셨다. 태권도원과 친구의 소중한 추억을 안고 한달음에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