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가기 전 준비하는 일보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분들을 만나느라 시간을 보내느라 책 읽을 짬 내기가 어려웠다. 가기 전에 마무리해서 보내드리기로 했던 다음 책 쓰는 일에도 떠나기 전날까지 총력을 기울이다 보니 떠나기 전까지 이 책을 읽고 글을 쓰겠다던 나의 각오가 무색하게도 거의 앞부분에 머문 채 비행기에 올랐다. 자카르타에 가는 기내에서 플래시 불빛에 의지해 책을 많이 읽었고, 폰티아낙으로 가는 동안 끝까지 읽었다. 책을 다섯 권이나 가지고 갔는데 올 때는 밤 비행기여서 결국 이 책만 다 읽고 왔다.
칼의 노래를 읽고 좋아했던 김훈 님의 책을 그동안 여러 권 읽었고, 이 책이 나왔다는 걸 알고 북바이북에 신청했었다. 책방에서 이 책을 받고 잠깐 읽으며 밑줄을 얼마나 그었나 모른다. 첫 문장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김훈 님이 아니면 누가 이런 문장을 쓸까? 사장님께 들고 가 호들갑스럽게 문장 좋다며 읽어 드렸는데 나만큼은 감명받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나이 드신 분들의 잔소리 같은 글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책은 새를 기다리며, 글과 밥, 푸르른 날들이라는 세 개의 장으로 나뉜다. 나이 듦에 대한 고찰과 점점 자연으로 향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아버지의 나이가 된 김훈 님은 아직 책을 쓰고 강연을 하신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원한다. 언젠가는 다가올 부고의 주인공이 될 걸 대비해 가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호수공원에 가 물고기와 새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런 여유는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 나이에도 아직 일하는 어른들도 계신다. 태양과 자신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 자연과의 합일을 느끼고, 자신의 집에 깃들인 새 가족을 보면서 무한한 자연애를 느끼는 작가는 낮은 곳에 거하는 사람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 죽음과 건강에 대한 이야기,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추억, 술과 담배, 음식에 대한 이야기와 글쓰기에 대한 고찰 부분을 읽으며 일부 기억에 대한 작가의 기억이 생생함에 놀랐다. 머릿속에 사진처럼 기억되었거나 노트 한구석에 메모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날의 놀라운 경험과 떠오르는 생각을 잊기 전에 기록하기 위해 누웠다 일어나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책의 물성이 마음에 쏙 든다. 표지 그림을 작가님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그림도 잘 그리시다니. 편집자님께 다음 책 이 책처럼 만들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의 문장을 좋아하지만 그가 쓴 내용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도, 아직 경험하지 않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아마 대부분의 책이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의 책장에 오래오래 꽂혀 있을 것 같다. 그의 짧고도 강렬한 문장이 좋다. 나도 누군가가 수없이 밑줄 긋는 책을 쓰고 싶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n2VP2ZgwFi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