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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Sep 30. 2024

한밤의 달리기

올해 초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을 때만 해도 나와 달리기는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달린 게 아니라 거의 매일 일정하게 달리기를 하고, 풀코스 마라톤은 물론 트라이애슬론까지 한 걸 알고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생겼다. 달리기를 시작한 게 전업으로 한 글쓰기를 더 잘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오랜 시간이 지나 여행 때 들고 갈 가벼운 책을 찾다가 북바이북 사장님의 권유로 ‘아무튼, 달리기’라는 책을 얼마 전 읽게 되었다. 달리기뿐 아니라 삶의 자세가 들어있다고 하셨는데 내가 읽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기 이야기 같았다. 이렇게 또 내 마음 한 곳에 달리기가 새겨졌다. 


인도네시아 공항에서 서점에 들어갔다가 발견한 하루키의 영어 원서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을 사서 요즘 조금씩 읽고 있는데 며칠 전 아침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다가 그대로 밖으로 튀어나간 일이 있었다. 달리기의 좋은 점을 나열한 부분에서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입은 옷에 책을 들고 슬리퍼를 신은 채 밖으로 나가 달렸다. 한 손에는 하루키 책(의자가 있으면 앉아서 읽을 요량으로),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뛰었다. 슬리퍼를 신고 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는 그런 걸 살필 겨를도 없이 그냥 막 뛰고 싶었다. 


아파트를 빠져나가기까지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서 조금 창피하기도 했으나 조금 지나자 상쾌한 나무가 쭉 늘어선 내가 오래전 자주 산책하던 길이 나와서 계속 달렸다. 길지 않은 시간, 나갈 때는 서늘해서 옷을 더 입고 나올 걸 그랬나 싶었는데 어느새 땀이 나 있는 걸 알게 되었다. 10분 혹은 15분 정도 뛴 것 같다.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싶었다. 슬리퍼를 신어서 무릎 아래 앞쪽 다리 근육이 아프기도 했다. 다음에는 러닝화를 사서 신고 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후 또 뛰었다. 이번에는 맨발에 단화를 신고 뛰었다. 이번에도 10분 남짓 뛰었는데 땀이 났다. 신발이 불편했다. 주말 저녁 조만간 회사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가 있어 신청해 둔 남편과 러닝화를 사러 갔다. 비싸지는 않지만 가볍고 예쁜 똑같이 생긴 러닝화를 사서 밤에 같이 뛰러 나갔다. 전에 산책 다니던 천변 길을 뛰다 보니 많은 분들이 뛰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뛰다 걷다 하며 한 시간 동안 다니다가 들어왔다. 바람이 제법 많이 불어 땀을 바로 식혀 주었다. 


앞으로 계속 뛰게 될지는 모르겠다. 뛴다고 해도 아마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거나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태권도 안 가는 날 대체 운동으로 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달리기는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또 무언가를 시작한 내가 무섭긴 하지만 앞으로도 가끔 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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