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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Oct 05. 2024

놀란 날 - 박준 시인의 시 쓰기 연수

이렇게 좋은 시인을 만나 강의 듣고 식사하고 차 마시고 좋은 시를 함께 읽을 기회를 주신 장학사님께 감사했다.

살다 보면 보석 같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날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했다. 시 쓰기 연수를 돕기 위해 교육지원청으로 갔다. 40분 전에 도착했더니 아직 문이 열려있지 않았다. 조금 기다렸다 주무관님과 들어가 간식과 차를 꺼내고 자리를 세팅했다. 강의하시는 박준 시인에 대해 조금 알고 왔어야 했는데 책을 읽지도 않고 와서 죄송한 마음이었다. 박준 님은 라디오 진행을 하기도 했고 유튜브에서도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저서도 많았는데 평소에 시집을 많이 찾아 읽는 편이 아니어서 몰랐나 보다.


저음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좋았다. 라디오 진행을 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앞부분은 강의, 뒤는 선생님들이 쓰신 시를 함께 읽는 방식이었다. (점심 식사 후 오후까지 했다.) 강의 내용이 유익했다. 예로 들어주신 본문들을 담은 책을 읽어보고 싶어 메모했다. 정유정 작가님의 집필노트에 소설 속 주인공의 1년 일기를 쓰셨다는 걸 알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강의 끝에 왼손에 '시'가 새겨졌다고 말씀하셨다. 평생을 들여다본 손바닥에 시가 있을 줄이야. 여러 번 놀란 날.


점심시간에 장학사님, 한 교장선생님, 그리고 박준 님과 함께 자리에 앉아 먹으며 시와 강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가는 길에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계신다는 말을 듣고 왠지 반가웠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작가와 시인이 살고 있다고 하셔서 우연히 만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왠지 시크할 것 같았던 시인은 소탈하고 매너가 좋으셨다. 심지어 돌아오는 길에 커피를 사 주셨다. 시인 분께 커피를 얻어먹은 기억이 없어 황송했다. 인품까지 좋으시다니, 앞으로도 계속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셨으면 좋겠다는 응원이 절로 나왔다. 


교육청으로 들어와 선생님들이 쓰신 시를 복사했다. 수십 장을 40부 넘게 복사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 하고 내려와 보니 아직 내 시를 읽지 않으셔서 다행이었다. 급히 시를 찾다가 오래전 코로나 초기에 블로그에 쓴 시가 있어 그걸 써 두었다. 다시 읽으니 유치하지만 당시 절박했던 나의 심정을 담은 글이라 부끄럽지는 않았다. (대학생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내 이름 Kelly가 맥주 이름과 같아 요즘 조금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선생님들의 시가 훌륭했다. 웃음을 주는 시, 울컥한 시들도 있었다. 그래서 시를 읽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내일의 슬픔'이라는 시가 마음에 들었다. '조은 주택'과 '선생님'(아이들이 묻는 수많은 질문들 끝에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을 쓰신 민화선생님도 대단하다. 평범해 보이던 분들이 시인들로 보였다. 나도 시집을 많이 읽고 시도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수 후에 단체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았다. 장학사님이 참가하신 분들께 책을 주셔서 그 책에 나도 사인을 받았다. 글씨가 너무 예쁘셔서 또 놀랐다.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서 이분의 시집 한 권과 산문집 두 권을 더 빌려 왔다. 누군지 아니까 더 설레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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