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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뒤에 숨은 사랑>> 이름과 삶 - 줌파 라히리

by Kelly

언젠가부터 책장에 꽂혀 있었던 책이다. 어디선가 추천하는 걸 보고 사 둔 모양이다. 책장 정리를 하다가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고골리의 삶에 쑥 들어가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작가 줌파 라히리가 인도계라는 걸 책을 읽으며 알았다. 책은 인도에서 미국으로 와 결혼생활을 하던 아시마의 출산으로 시작된다.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결혼을 계획한 아시마와 아쇼크는 과거 우리나라 어르신 세대의 모습과 닮아 있다. 학창 시절 고골리의 단편집을 즐겨 읽던 아쇼크는 끔찍한 기차 사고 이후 고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최근까지도 들려오는 인도에서의 사건 사고들과 책 속에 그려지는 인도 거리에 대한 묘사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미국 최고의 대학을 나와 교수직을 맡게 되면서 점점 나은 형편에서 자녀인 고골리와 소냐(소날리)를 키운다. 인도는 어린 시절 애칭으로 부르고, 공식적인 이름은 따로 있는 모양이다. 기차 사고 때 자신을 기적적으로 살려준 고골리의 책을 떠올리며 아들의 이름을 미국 이름도, 인도 이름도 아닌 고골리로 지은 아쇼크는 아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니킬'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려고 한다. 의미를 알지도 못한 채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 싫었던 고골리는 원래 이름을 쓰겠다고 하여 고골리로 학창 시절을 보낸다. 철이 들면서 독특한 이름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고골리는 결국 이름을 니킬로 바꾼 채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자신을 고골리로 기억하는 사람들과 니킬로 알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두 명의 사람처럼 살아간다.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니킬의 삶이 결코 완벽하지만은 않다는 걸 서서히 깨닫는다. 그를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 중 결혼으로 정착할 것이라 생각해지만 운명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버지를 잃은 후 소중함을 깨달은 고골리는 어쩌면 이름을 바꾼 채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가 선물한 이름의 고귀함을 서서히 알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름도 어렸을 때는 흔하지만은 않은 것이어서 책에서 등장할 때마다 얼굴을 붉히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고골리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한때였던 것처럼 고골리도 결국 이름에 숨어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두 개의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체험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다. 커리와 난을 빼고는 낯설기만 한 인도와 아주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 얇지 않은 책, 관심 없던 내용에 갈수록 빠져들게 한 건 작가의 이야기 들려주는 방식인 것 같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 때로는 미래를 오가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의 삶에 깊이 개입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줌파 라히리의 세계에 빠지지 않을까 싶다. 책 속에 등장한 책들과 작가의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에 들러야겠다.


--- 본문 ---

- 좀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이 나라에 왹 위해 모든 것을 버렸는, 결국 그 모든 것이 이렇게 죽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236쪽)

- 아시마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처럼 그녀에겐 경계가 사라질 것이다. 집이 없으니 온 세상이 집인 동시에, 그녀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355쪽)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L5WSIddZKvk?si=F05DLoDaYjwmLs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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