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의 서재를 구독을 하면서 관심 있는 작가들을 검색해 책을 찾아보는 데 재미가 들렸다. 박지리 작가의 책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공모전을 검색하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박지리 문학상을 만든 걸 알고 도대체 이 작가가 어떤 분인가 궁금해졌다. 밀리의 서재에 검색하니 책이 여러 권 떠 있었고, 그중 '번외'라는 책을 먼저 찾아 읽었다. 사실 들었다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른다. 설거지를 하면서 집안일을 하면서 계속 듣다가 시간 나면 펴서 읽다가 했다. 책을 너무 잘 썼다고 생각하며 다음으로 합체를 켜 들었다. 듣다가 고성 오는 내내 운전하면서 들었다. 내려서도 들었다. 1.4배속으로 하니 서너 시간 만에 한 권을 다 들을 수 있었다. 기계음이긴 했지만 대사가 재치 있어서 한 번씩 소리 내어 웃었다.
번외라는 책에 비해 합체는 발랄했다. 오래전 우리 집에는 이 책이 오랫동안 꽂혀 있었다. 둘째 학교 필독도서여서 읽고 꽂아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버렸거나 팔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인 줄 알았으면 진작 읽었을 텐데 그때만 해도 청소년 도서에는 관심이 없었다. 합체가 이런 내용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합과 체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아니고, 난쟁이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키가 작은 아이들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체와 공부를 즐기는 합은 키가 크고 싶은 욕망을 가슴에 묻은 채 평범해 보이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농구를 좋아하는 체는 키가 큰 아이들 틈에서 맥을 못 추는 자신을 한탄하던 차에 친구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듣고 폭발해 버렸다. 치고받고 싸운 끝에 학교를 그만 다니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간다. 얼마 전에 만났던 약수터에서 만난 머리가 하얀 도사를 다시 만나고 그는 놀라운 계획을 세우게 된다. 내켜하지 않는 합을 설득해 계룡산으로 떠난 체는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다음이 궁금해 마지막까지 쭉 들을 수밖에 없었다.
문학을 배우지 않았다는 저자는 어쩜 이렇게 책을 재미있게 쓰는 것일까? 아마도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건 무시하지 못할 일인 것 같다. 대학 시절 수업 내용이 어려워 소설을 끄적이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이유는 모르지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은둔하며 글을 썼다는 그녀의 이 책은 너무 밝고 희망적이다. 뒤에 쓴 책들은 얼마간 달라진 성격도 있겠지만 이 책만으로 본다면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싶어 했던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야기는 농구 경기로 시작해 농구 경기로 막을 내린다. 공으로 공연을 하다가 큰 트럭에 치어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의 공에 대한 유언과 같은 말들은 두 아들의 마음에 새겨져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버지를 닮은 작은 키를 원망했던 체의 마음속 열망이 강하게 느껴져 읽는 내내 마음이 저렸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저마다 부족한 부분을 원망하며 한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춘기 시절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런 고민이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그때는 잘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으로 느껴질지도. 책 속 합, 체는 키가 작았지만 우리의 청소년들은 또 다른 어떤 것으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그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고 희망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짧은 생을 마감한 저자가 안타깝다.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