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리 작가의 책을 찾아보다가 처음 읽은 책이다. 두껍지 않은 책인지 듣다 읽다 하니 마지막이 빨리 왔다. 우리나라에 고등학교 총격 사건이 있었던가?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있지 않았던 일이지만 작가의 상상을 통해 이 책이 탄생했다. 외국에서 살다 와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을 K와는 몇 번 만난 사이이지만 무언가 모르게 강하게 연결된 느낌을 받는 '나'는 희대의 사건을 다룬 뉴스 기사로 유명해진 고등학교 학생이다. 교복만으로도 알 수 있는 학교의 학생은 거리에서 주목받는 대상이 된다.
교사 한 명과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에서 살아남은 '나'는 학교와 가정과 사회에서 주목 대상이자 열외자 취급을 받는다. 모든 것이 허용되지만 그게 더 불편한 화자는 어느 날 조퇴를 하고 거리를 헤매기 시작한다. 그가 겪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일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모험 아닌 모험을 하게 된다.
큰 사고를 겪은 주인공은 상담 치료를 받는 중에도, 수업 중에도, 가정에서도, 일반 고등학생들보다 더한 나면의 갈등을 겪는다. 고스란히 담아낸 사춘기의 반항심을 읽으며 참 대단한 작가이구나 싶었다. 지금까지 세 번째 책을 읽고 있는데 주인공이 모두 남자다. 여자 작가가 남학생의 깊은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남동생이 있었을까? 고등학생 시절 같은 고민을 했을까? 궁금하지만 세상을 떠난 작가에게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다.
시종일관 갈등을 겪는 고민하는 주인공이지만 중간중간 미소 짓게 만드는 부분들이 있다. K를 따라 음식 먹기를 즐기지 않게 되어버린 '나'는 몸무게가 줄어드는 상황에 놓인다. 상담 전 몸무게를 재야 하는 그가 쇠구슬을 주머니에 넣다가 급기야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는 장면에서 미소가 스몄다. 되는 대로 반항하고 싶은 마음과 정상인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주인공의 번뇌를 잘 표현한 작품인 것 같다. 문장들이 예술이다.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