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미니멀>> 닮고 싶은 삶의 태도 - 진민영

by Kelly

2021년 11월에 이 책을 읽고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 이웃 블로그에 들렀다 발견하고 다시 빌려왔다. 집에 있던 책인 줄 알았더니 집에 있는 건 <<조그맣게 살 거야>>라는 작가의 다른 책이었다. 베일에 싸인 듯한 작가의 사진을 검색하니 단아한 모습이었다. 이렇게 예쁘게 살아가는 사람이 저렇게 생겼구나, 하는 생각에 사진 한 장이 반갑고 좋았다. 내가 살고 싶지만 살고 있지 못한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참 즐겁다.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어찌 보면 참 용감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요즘 같이 AI와 대화하는 시대에 몰스킨 노트에 한 자 한 자 눌러 적으며 글을 쓰고, 스마트 워치가 아닌 시계를 애용하고, CD와 라디오를 듣는 일상이 정겹다. 출근할 일도, 딱히 많은 약속이 있지도 않은 저자는 하루하루 다르지 않은 일상을 알차게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가꾸고 다듬는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지 않고, 옷과 신발 하나를 내내 신고 다녀도 기죽지 않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새 옷은 아니지만 깨끗하고 누추하지 않게 관리하며 물건이 생명을 다하기까지 정성을 다하는 삶의 자세가 멋지다.


이런 책을 보면서도 나는 쇼핑을 하고 있다. 평소에 차지도 않던 시계를 사고, 리넨 블라우스와 몰스킨 수첩을 검색한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은 덕분에 머리는 아직 비누로 감는 걸 좋아하고, 샤워도 설거지도 비누로 하고 있다. 씻겨 내려갈 때의 쾌감은 샴푸나 세제에 비길 수 없다. 이렇게 조금씩 바꿔 가면 되는 거다.


수첩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3개월이면 다 채우는 수첩을 3색 볼펜으로 정리하는 장면을 떠올려 본다. 검정으로 쓸데없는 말들을 지우고, 남겨야 할 것들에 붉은색 표시를 하고, 새 수첩에 파랑으로 옮겨 적는다는 발상이 참 기발하다. 수첩에 메모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다시 보는 일이 많지 않은 나는 반성했다. 어쩜 이렇게 정리를 잘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하루에 만 원으로 생활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손가락만 까딱하면 집 앞에 물건이 와 있는 시대에 그 유혹을 떨치는 저자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며칠 전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손수건들을 보며 버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저자가 손수건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내용을 읽으며 안 버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차에서 휴지가 없어 곤란했던 경험도 있고, 물이나 음료를 닦을 일도, 가끔은 야외에서 콧물을 닦고 싶을 때도 있는데 준비성이 없는 내 가방에 휴지가 들어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이럴 때를 대비해 손수건을 하나씩 넣고 다녀야겠다. 기존의 용도와 다르게 새롭게 생각해 내는 창의력은 AI를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보다 어쩌면 아날로그로 사색하는 사람들이 더 갖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귀여운 귀걸이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결국 사 와서 액세서리 서랍에 넣고 볼 때마다 좋은 기분을 느끼는 저자를 보며 극단적인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가방에 들어갈 물건만 소유하고 사는 사람도, 치약도 샴푸도 없이 물로만 씻는 분도 있지만 그건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단계라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는 거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지만, 저자가 살아가는 삶의 태도는 내가 조금 노력하면 흉내는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이 다른 이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건 참 소중한 일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 목소리 리뷰

https://youtu.be/G0y1XagX6MY


--- 본문 ---


- 환경에 의지하지 않고도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가 새로운 외국어를 습득하는 일이다. 어쩌면 환경과 사람 그 이상으로 언어는 삶의 크나큰 변곡점이 될 수 있다. 한 언어는 그 언어로 소통하는 민족의 모든 생태와 습성을 품는다. 그들의 언어를 모방하다 보면, 사고하는 방식, 느끼는 감정의 결, 특정 상황에 반응하는 태도, 생각이 미치지도 못한 세밀한 영역까지 그들을 닮는다. 그러나 외국어는 아무리 배워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내 안에 스미지 않음에 또 한 번 나와 모국어 사이의 놀라운 결속력을 실감한다. 언어는 본능보다 더 가까이 우리의 정신을 지배한다. (81쪽)


- 이젤 앞에 앉아 연필을 깎으며 화가들은 밤사이 둔해진 손의 감각을 녹인다. 요리사는 칼을 갈고 소설가는 만년필의 잉크를 채운다. 반복된 동작이 몸에 배면 행위의 시작도 그만큼 선명해진다. 신성시하는 어떤 행위를 시작하기 전에 요리사도, 소설가도, 화가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의식을 치른다. 느리지만 정직하고 고요한 아침 10분을 커피가 벌어준다. 일관된 순서와 규칙, 정량과 인내가 있는 커피는 아침을 맞기 가장 좋은 시작이다. 익숙한 동작을 따라가다 보면 어김없이 커피 한 잔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할 일을 차분히 곱쌉는다. 이 시간이 없었다면 버벅대며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완성된 커피 한 잔이 테이블 위에 오르면, 나의 하루도 숨 고르기를 끝내고 기운 낼 태세를 갖춘다. 쓴맛 나는 음료 한 잔이지만 적지 않은 서사가 담겨 있다. (86-87쪽)


- 손수건의 다재다능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면으로 된 손수건 한 장이면 스무 가지 이상의 물건이 불필요해진다. 먼저 찬 음료를 마실 때 테이블이 물기로 젖지 않게 잔을 받치는 코스터로 쓸 수 있다. 써보니 사이즈도 두께도 흡수력도 종이로 된 코스터보다 낫다. 가늘게 접으면 머리를 묶는 끈이 되고, 펼치면 물건을 담는 보자기로도 쓸 수 있다. 패턴이 화사한 것은 가방 손잡이에 묶어 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도 있고, 여행 캐리어에 묶어 내 것을 표시할 수도 있다. 야외에서는 방석, 무릎 담요, 안내, 물수건은 물론이고 때로는 냄비 집게로도 활약한다. 미세먼지 심한 날에는 마스크를 대신해 호흡기를 보호해 준다. (116-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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