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가 올 때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온다

by Kelly

어떤 일이든 잠시 회의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악기를 배우는 일은 아마도 더 그럴 것이다. 자주 들르는 인터넷 카페에는 신조어들이 있다. ‘바린이, 첼린이, 비린이’와 같은 악기 초보를 일컫는 말과 함께 ‘바태기’라는 바이올린 권태기를 이르는 말이다. 그 시기를 제대로 버티지 못하면 바로 악기를 그만두게 되거나 한동안 케이스를 열어보지 않고 방치하게 된다. 심한 경우는 악기를 팔아치우기도 한다.


슬럼프는 주로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찾아온다. 열심히 연습하고 선 무대에서 창피를 당했을 때와 같은 거대한 사유도 있겠지만 `어제 되던 것이 오늘 안 될 때, 아무리 해도 특정 부분이 절대 안 될 때`와 같이 일상에서 수시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이것이 반복될 때 자포자기하게 된다. 자신에게 재능이라곤 없으며 모든 것이 시간 낭비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동안 해 왔던 모든 수고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면서 애정을 느꼈던 만큼 미움도 커진다.


개인적인 사유도 있지만 가끔은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도 슬럼프를 느낀다. 열심히 하느라고 했는데 연주에 대한 나쁜 평을 받거나, 그 나이에 무슨 고생이냐는 말을 들을 때, 갑자기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악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시작했다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악기는 혼자 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함께 연주하는 경험이 오히려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믿는다. 혼자 아무리 레슨을 받고, 연습을 많이 해도 연주를 들려줄 누군가가 없다면, 그리고 함께 연주해 볼 사람들이 없다면 그 열정은 언젠가는 수그러들게 된다. 필자가 늦은 나이에 학교에 굳이 다닌 이유도, 편히 쉬어야 할 주말에 먼 길을 달려 오케스트라와 앙상블 연습에 참여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결국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질문에 오기로 맞서 그들에게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슬럼프를 넘어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오를 수 있다. 요즘은 각자의 연주 영상을 편집해 하나의 앙상블 연주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다. 실력에 따라 그런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동기부여가 된다. 녹음이나 녹화는 스스로 피드백하기에도 정말 좋은 도구다.


때로는 연주회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연주 영상을 보는 것이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연주회장에서 숨소리까지 들으며 몸 전체에서 뿜어 나오는 음악의 기운을 받으면 나도 연습해서 저렇게 해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하게 된다. 코로나로 음악회가 열리지 못해 자주 가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경험상 연주는 실제로 보는 것이 가장 좋았다. 전체적인 음악의 어우러짐을 위해서는 뒷자리가 나을지 모르지만 악기를 배우는 입장에서는 그 악기 바로 앞에서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 믿는다.


온오프라인 동호회도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인터넷 카페에는 악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부터 전공자까지 다양한 회원이 있고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이런 고민을 하는 이가 나 혼자만이 아니구나, 하는 것 깨닫게 된다. 때로는 남들의 비법이나 좋은 도구를 알게 되어 자신에게 적용해 보면서 슬럼프를 잊을 수 있는 것이다. 오프라인 모임은 함께 악기와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나와 같은 고민이나 취향을 가진 이가 또 있음을 알게 되면 동지의식도 느끼게 되고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몸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할 때도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도 손가락 부상으로 5년 동안 바이올린을 쉰 적이 있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계속 바흐를 연주했다고 한다. 어쨌든 몸이 아프면 마음처럼 연습도 연주도 어려우니 항상 철저히 몸 관리를 하고 몸에 이상 신호가 올 때 무리하지 않고 쉬며 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특히 악기를 배우는 일은 엄청난 끈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아마도 어떤 사람이든, 심지어 유명 연주자일지라도 슬럼프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슬럼프가 올 때마다 나에게만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좌절하기보다는 나름의 방법으로 슬기롭게 극복한다면 평생 음악과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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