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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Dec 18. 2021

한파 속 연주

  어제 잊지 못할 일이 있었다. 며칠 전 한동안 거리연주를 함께 하던 분에게서 연락이 와 뮤직비디오 촬영이 있는데 함께 하자고 해서 재미있을 것 같아 바로 한다고 했다. 야외 연주라고 해 걱정은 되었지만 난생처음 해 보는 일이라 기대도 되었다. 소리는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 부담도 없었다. 하지만 날짜가 다가오고 날씨를 확인한 나는 과연 정말 찍을 수 있을까, 싶었다. 영하 6도로 예정되었던 온도는 당일 영하 8도로, 바닷가라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를 웃도는 바람 몹시 부는 추운 날씨였던 것이다.


  전날 아들이 핫팩을 종류대로 사 왔다. 정말 바람 부는 한데서 연주를 시키겠나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혹시 몰라 가는 길에 발에도 붙이고 등에도 하나 붙였다. 옷을 잔뜩 껴입었더니 가는 동안 더울 정도였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연주 장소는 논두렁이었다. 주소만 찍고 갔더니 엉뚱한 곳을 알려준 것이다. 그곳에서 여러 연주자를 만났다. 많이들 그곳으로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을 믿고 헤매었나 보다. 건물 이름을 듣고 겨우 찾아갔다. 차에서 내리니 매서운 바람이 불어 닥쳤다. 과연 취소되지 않고 하나보다, 생각했다. 입구에서 발열체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넓은 활주로 위에 헬기와 무대, 그리고 파란 천막이 쳐져 있었다. 천막 안에 들어가니 어둠 속에 여러 연주자들이 악기 케이스를 내려놓고 앉아 있었다. 다들 파릇파릇한 청년들이었다. 걱정을 떨치기 위해 아는 이들끼리 삼삼오오 소리 높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조용히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을 만나 추위를 어떻게 이길지 이야기를 하며 한참을 기다렸다. 트럭에서 어묵과 과자를 나누고 있어 그것도 먹고, 전해준 핫팩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이따 어떻게 버틸지를 생각했다. 우리가 연주할 노래가 계속 나오는 걸 보니 가수들이 촬영을 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외투를 벗고 악기를 들고나가자마자 손등이 어는 느낌이었다. 자리를 잡고 한 번 연주를 하고 바로 천막으로 들어왔는데 얼마나 떨리는지 난로 옆에 붙어 있을 생각만 들었다. 나중에는 외투를 걸쳐 입고 나갔다가 스텝에게 맡기고 연주를 했는데 점점 추워지는 바람에 손가락이 아프다 못해 찢어지는 것 같고, 활을 든 팔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몇 번을 더하다 나중에는 가죽장갑을 끼고 연주했다. 무릎에 놓았던 악기가 떨어지는 걸 잡을 수가 없어 놓치는 바람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창피했다. 집에 아무 데나 놓고 쓰는 연습용 악기를 가져간 게 다행이었다. 급기야 줄이 풀려 이상한 소리가 나는데 아픈 손으로 조율도 할 수 없어 연주하는 시늉만 하기도 했다. 양말 두 개에 핫팩까지 붙인 나는 옆에 있던 베이스 연주자의 발목이 드러나는 신발과 얇은 옷을 보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정말 재미있었던 게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도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을 표현하며 동지애를 느꼈던 것이다. 천막에 들어올 때마다 입구를 올려주는 분들, 난로를 양보하는 분들, 고생하셨다는 덕담을 나누는 이들도 있었고, 너무 뜨거운 난로에 비싼 패딩이 타는 걸 다 같이 걱정하기도 했다. 너무 추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팔을 올렸다가 다른 이가 태운 옷을 보고도 이어서 내 옷도 타는 걸 보았다. 검정 옷을 찾다가 버릴 옷을 입고 간 게 다행이었다. 마지막 촬영 때는 이상하게 어려운 상황에 적응이 된 건지 할만했다. 어쩌면 마지막이라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루였지만 늘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촬영하는 스텝 분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하자고 했던 분을 집까지 모셔다 드렸는데 오랜만에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연주자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설레고 즐겁다.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고, 임용고시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 좋은 선생님이 되기를 응원해야겠다. 

가는 길에 찍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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