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에센셜 헤르만 헤세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보내주신다는 출판사의 메일이 반가웠다. 같은 시리즈 헤밍웨이 편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떠올라 책이 기다려졌다. 헤세의 작품 중 소설도 좋지만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 이 책에는 그의 대표작 데미안과 중단편 소설 다섯 편, 에세이 네 편과 창작동화 두 편이 실려 있다. 다채로운 글을 썼던 작가의 면모를 알 수 있다.
데미안은 이번 포함해서 네 번 정도 읽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고, 두 번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에 읽었을 때는 예전과 다른 느낌이었는데 이번 책은 번역하신 분이 뛰어난지 모르지만 굉장히 문장이 고급스러웠다. 내용을 이미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분히 환상적이기도 한 데미안은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선과 악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프란츠 크로머에게 괴롭힘을 당한 싱클레어는 자라 가면서 끊임없이 밝은 것과 선한 것으로부터 탈피하려고 한다. 프란츠 크로머로부터 그를 구해준 데미안에게 점점 끌리지만 그들은 서로 떨어져 지낸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탕한 시간을 보내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다시 만나게 된다. 내면으로 침잠하는 데미안을 싱클레어도 점점 닮아가는 것을 느낀다.
—- 본문 —-
- 나는 더 이상 ‘끼워 주는’ 어린애가 아니라 주모자요, 스타였다. 유명한, 대담무쌍한 술집 출입객이었다. 나는 다시 어두운 세계, 악마 소속이었고, 그 세계에서 명사였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참담했다. 나는 자신을 파괴하는 방탕 속에서 살아갔다. … 어느 일요일 오전에 어느 술집을 나서다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서 눈물 흘린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환하고 즐겁게, 갓 빗질한 머리에 일요일 정장을 차려입고, 그리고 보잘것없는 술집의 더러운 테이블, 맥주가 쏟아져 고인 곳에서 내가 전대미문의 냉소주의로 내 친구들을 놀리고 놀라게 하는 동안에도, 실제로 나는 내가 냉소하는 모든 것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음속으로 울며 내 영혼 앞에서, 내 과거 앞에서, 어머니 앞에서, 신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116-117쪽)
- 모든 것이 실망스러웠다. 내가 들은 철학사 강의는 대학에서 공부하는 젊은이들의 방랑과 똑같이 실체 없고 공장식이었다. … 그러나 나는 자유로웠다. 나 자신을 위해 온 하루를 쓸 수 있었다. 교외의 오래된 낡은 집에서 조용하고 아름답게 지냈고, 내 책상 위에는 니체가 몇 권 놓여 있었다. 나는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다. 그를 그침 없이 몰아간 운명의 냄새를 맡았다.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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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배열이 양쪽 정렬이 아니고 왼쪽 정렬이어서 시처럼 느껴지는 것이 독특한 책이다. 여기에 실린 모든 이야기가 감명 깊은 건 아니었다. 룰루라는 중편소설은 <파우스트>를 읽는 느낌이었고, 이해하기 어려운 에세이도 있었다. 상식적이지 않은 체제를 풍자하는 면에서 맥락을 같이 하는 <전쟁이 두 해 더 계속된다면>과 <노르말리아로부터의 보고>라는 소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읽다 보면 웃음이 피식 나온다. 그의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방랑 생활을 했던 작가의 인생을 느낄 수 있었다.
에세이 중에서는 마지막에 소개된 <성탄절과 두 어린이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할아버지가 된 헤세가 손자인 질버로부터 짧은 자작 동화를 편지로 받고 자신이 어린 시절에 썼던 동화를 떠올린다. 기독교 배경에서 자란 자신의 이야기에는 신에 대한 내용이 없지만 손자의 글에는 등장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젊었을 때의 그는 일탈하고 신으로부터 떠나고자 노력했지만 노년의 작품에서는 다시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열망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잘 표현된 것 같다.
마지막에 들어 있는 동화 둘도 재미있다. 특히 <세 그루의 보리수>라는 동화를 읽으며 어느 날 베를린 한 공동묘지의 세 보리수나무를 보면서 세 형제의 이야기를 창작했을 그를 생각했다. 교훈적인 톨스토이 동화의 느낌도 있었다. 헤세가 동화도 썼다는 건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동안 헤세의 장편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는데 하나씩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평생 타지를 떠돌며 자신에 대해 신과 자연에 대해 깊이 고찰했던 거장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다.
* 목소리 리뷰 *
https://www.youtube.com/watch?v=xfTdCPYoQl4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 받은 책을 읽고 본인의 솔직한 생각을 적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