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산: 용의 출현
몇 년 전 명량이라는 영화를 두 번인가 보고 다음에 나온다던 이 영화를 오래 기다렸다. 2014년 개봉이니 5년이 넘었다. 이번에 개봉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기대가 되었다. 조조로 혼자 영화를 보고 왔다. 보면서 남편과 다시 한번 보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이순신 역이 바뀌어 어떻게 다른 느낌일지 궁금했다. 명량에 비해 더 말이 없고, 총에 맞은 다음이라 조금은 약해 보이는 이순신에 박해일 님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임진왜란의 배경을 찾아보니 문신들의 나라가 되어 무를 가벼이 여겨 국방에 소홀했다. 왜란 전에도 국지전이 있었던 건 처음 알았다. 그걸 막겠다고 임시로 마련한 비변사는 오합지졸로 개인의 영달만 바라는 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에 비해 일본은 최고의 군사력과 포르투갈에서 온 조총으로 무장했다. 중국까지 진출할 것을 목표로 우리나라를 살짝 밟고 지나가려던 일본은 의외의 복병 이 장군을 만나 꿈을 이루지 못한다. 외국과의 관계를 너무 낙관적으로만 보기보다는 나라의 힘을 길러두는 것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일본의 침략에 추풍낙엽처럼 패배를 거듭하던 조선군은 20일 만에 한양을 빼앗기게 되고, 선조는 개성, 평양, 의주까지 피난을 간다. 왜군의 수륙병진 작전을 깬 것이 바로 이순신 장군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패배를 거듭하던 와중에 한산도에서 벌어진 우리 해군의 대승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징비록에 이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이순신의 활약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일본의 배인 세키부네는 바닥이 뾰족하여 속도가 빠르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무른 삼나무로 되어 있으며 배의 높이가 다양했다고 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판옥선은 튼튼한 소나무로 되어 있고, 높이가 있었기에 이 영화에서 보듯 성 쌓기가 가능했던 것이다. 거북선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지만 영화에서 굉장한 활약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는 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이순신은 물론이고, 장군을 그림자처럼 보필한 희립, 듬직한 김억기, 영화에서는 의를 위해 이순신 휘하에 들어간 왜군 준사, 민간인이지만 전쟁을 위해 백방으로 애쓴 임준영과 기생을 가장한 정보름, 노장 어영담을 비롯한 나대용, 송희립과 이름 없는 수많은 병사들이 모두 영웅이다. 백병전보다는 눈빛 연기가 많았지만 이들의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학익진이라는 수성의 묘책을 성공시킨 충무공의 뛰어난 계략도 좋았지만 조선군에 합류한 항왜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영화에서는 대표적으로 준사 한 명만 나오지만 나라의 오랜 분열로 충성심이 약한 용병의 느낌이 강했던 왜군에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키는 조선군을 오히려 더 따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포로와 투항자를 비롯해 이들의 수가 1만 명에 육박했다는 걸 알았다. 이들이 전해준 기술과 전술은 임진왜란 승리에 역할을 했으리라.
과거 현충사를 자주 찾았고, 작년엔가 거제에 가 옥포해전 기록을 보고 왔었다. 이번에는 여수와 광양으로 휴가를 가려고 한다. 이순신대교와 이순신 공원을 걸으며 묵묵히 나라를 지켰던 충무공의 기개를 생각해 보고 싶다. 하지만 가기 전 먼저 이 영화를 다시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