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것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자신이 비정상이 아님을 인식하고 안도하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눈치 보지 않고 떠들 수 있다. 한마디로 말이 통한다. 바이올린 이야기를 어디 가서 쉽게 하지 않는다.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바이올린 연주의 재미나 어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굳이 남을 설득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에 맞게 화제를 꺼내기 마련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는 책 이야기를 피하고,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에게 어젯밤 본 잊지 못할 명작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하지만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사람과는 밤새도록 이야기할 수 있다. 대학원 다닐 때 레슨보다도 다른 강의보다도 더 열을 올린 것이 수업 후 커피숍 만남이었던 이유다. 어떤 곡은 어렵고, 어떤 곡은 쉽고, 요즘은 어느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를 많이 듣고 있고, 다음에 도전해보고 싶은 곡은 이것이고 저것이고, 하다 보면 집에서 가족이 굶고 있다는 걸 잊을 정도였다.
앙상블이나 오케스트라 모임에서도 짬짬이 음악과 음악가,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를 위한 도구들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었다. 누군가 특별하게 생긴 송진을 쓰고 있는 걸 본다면 그건 어떤 점이 좋고 얼마이고, 요즘 어떤 곡을 연습하고 있고, 레슨은 받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묻는다. 옆사람 바이올린 소리가 좋다면 어떤 줄을 쓰고 있는지 유심히 보기도 한다. 이제 어떤 색이 어떤 회사의 줄인 지, 가격은 얼마쯤인지 유명한 것들은 바로 알 수 있지만 초보 시절에는 그저 모든 것이 신세계처럼 느껴졌었다. 대학원 때 늘 들떠서 새로운 곡과 연주자들, 그리고 도구들에 대해 떠들면 나의 모습을 요즘 다른 이들에게서 본다.
코로나로 오케스트라와 앙상블 연습과 공연이 모두 중단되면서 나는 오랜 휴지기를 맞았다. 수년 동안 주말마다, 어느 때는 평일에도 연습과 공연으로 쏘다녔다. 작년 한 해 그렇게 쉬면서 레슨만 받았더니 좀이 쑤실 것 같았던 생활이 오히려 삶의 여유를 찾아 주었고, 보다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집에서 연습하는 시간이 크게 늘진 않았지만 효율적으로 연습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짬짬이 온라인 연주에 참가하고, 매주 적은 인원인 교회 챔버를 계속하면서 감각을 잃지 않으려 한다.
작년엔가 블로그로 친해진 한 음악 애호가 분이 만든 연주 동아리에 올해 가입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비회원으로 온라인 연주회에만 참여했는데 올해 그분이 소수정예 그룹을 만들면서 단톡 방을 통해 나와 비슷한 사람들 다섯 명과 소통하게 되었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늦게 배워 열정을 다해 연습하는 분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과의 대화가 나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아기 엄마가 둘에 모두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빠다. 모두의 관심사는 바이올린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사실. 서로가 좋아하는 곡을 나누고, 악보를 나누고, 심지어 아이 키우는 이야기도 한다. 바이올린 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슬럼프 극복 방법도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부터 배운 전공자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들의 콤플렉스이기도, 한편으로 자랑이기도 하다. 한동안 잃었던 열정을 되찾게 되는 모임이다. 사실 실제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고, 조만간 팀을 반으로 나눠 모일 계획을 세웠다. 함께 세 곡 정도를 연주해 보기도 하고, 아마 영상을 찍어 동아리 밴드에도 올리지 않을까 싶다. 대표님이 워낙 열정적이라 거대한 동아리가 잘 굴러간다. 우리의 카톡 대화에 대해 말하자면 잠자고 일어나면 카톡 대화 100개가 떠 있다. 밤을 잊은 사람들이다. 바이올린이 얼마나 좋으면 서로의 푸념을 들어주고 위로하고, 자신의 열정을 나눌까? 사는 곳도,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바이올린이라는 접착제로 딱 붙은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동아리 대표님으로부터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라 폴리아 곡을 얼마 전에 레슨 받기 시작하고 주 2회 레슨으로 금세 마스터한 후 오늘 영상을 찍은 모양이다. 자신이 한 반주에 스스로 맞추기도 힘들었던지 성질이 더 나빠질 것 같다는 귀여운 푸념을 한다. 이게 이분의 매력이다. 바이올린 배운 지 3년 만에 전공자들과 연주를 다니시는 분이다. 작년에만 52회 공연을 했다니 평균 매주 한 번 공연을 한 셈이다. 이 방엔 늦깎이 천재들이 있다. 자칭 어벤저스 팀, 앞으로 오래오래 함께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