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행적

소설 '하얼빈' (김훈)

by Kelly

김훈 님의 책들을 좋아하고 그동안 여러 권 읽어 왔다. 이번 신작도 기대가 되어 구입할까 하다가 학교 도서관에 구입 희망 도서로 신청하고 기다렸다. 도착해서 빌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빌려 읽기 시작했다. 바쁜 일이 많아 며칠 동안 들고 다니다가 주말을 맞아 끝까지 읽었다.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안중근의 마음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사실을 근거로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책의 뒤쪽에 참고한 도서들이 나온다. 칼의 노래에서 묘사한 이순신 장군보다 더 어려운 작업이었으리라. 자료가 남아있긴 하나 비밀리에 실행한 일이었던 데다가 사진이나 기사들이 생생하게 남은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작가 특유의 짧고 건조한 문체가 돋보였다. 잡다한 수식이 없는 간결한 문장들이 안중근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안중근을 과대 포장하거나 역사적 왜곡이 있을까 주의해 가며 쓰느라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소설임에도 사실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을 한 이유이기도 하다.


연해주의 한인들이 결성한 의병대에서 참모중장으로 오십여 명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싸우던 중 데리고 온 포로를 무기까지 주어 놓아 보낸 탓에 부대의 위치를 들켜 위험에 빠질 정도로 사람의 목숨을 중시하던 천주교인 안중근이 이토를 죽일 결심을 한 것은 그가 우리나라를 집어삼키고 무죄한 국민을 죽였기 때문에 군인의 신분으로 적을 없앤 것이었다. 죄가 없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본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천주교 신부들과의 일화와 안중근의 행적이 조심스럽게 그려진 이 책을 읽으며 그의 가족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했는데 맨 뒤에 인물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내와 자녀들, 그리고 동생과 주변 인물들은 그로 인해 크고 작은 불이익을 겪었다. 결과를 모르지 않았을 안중근의 결심이 더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람의 일은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동안 뮤지컬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그의 영화가 곧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등장인물을 보니 이 책의 내용과는 조금 달라 보이지만 그가 이루고자 했던 궁극의 목표는 같겠지. 영화에서는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 본문 ---


- 그대가 말하는 동양 평화란 어떤 의미인가? / 동양의 모든 나라가 자주독립하는 것이다. (218)


-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 그렇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221)


- 그런 원대한 계획이었다면 범행 후 체포당하지 않으려 했을 텐데, 도주할 계획을 세웠는가? / 아니다. 나쁜 일을 한 것이 아니므로 도주할 생각은 없었다. / 질문이 답변을 누르지 못했다. 질문과 답변이 부딪쳐서 부서졌고, 사건의 내용을 일정한 방향으로 엮어나가지 못했다. 답변이 질문 위에 올라탈 기세였다. 피고인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힘주어 말했다. 진술은 유불리를 떠나 있었다.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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