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루비 (박연준)
박연준 님은 장석주 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좋아하며 읽어온 장석주 시인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나이 차이가 많은 부부였다. 부부가 함께 쓴 에세이는 읽어보았지만 정작 박연준 시인의 시집은 읽어보지 못했다. 이 책은 그녀가 낸 첫 소설이다. 시인의 소설이라 궁금해서 신간 코너에 꽂힌 책을 빌려왔다.
주인공은 여름이라는 소녀였다. 신뢰할 수 있는 기억의 시작 지점 이 책이 시작된다. 사촌언니 겨울과 함께 고모 댁에서 사는 여름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고모 덕분에 사랑받고 자란다.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숨 막힐 것 같기도 했지만 이후에 펼쳐지는 그녀의 인생에 비하면 그래도 따뜻했던 시절이었다. 시를 필사하게 했던 고모는 훗날 시인을 키워냈다. 이 소설이 얼마나 자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작가의 어린 시절 기억의 파편들이 조금은 녹아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날 한 여자를 데리고 와 엄마가 될 사람이라 소개한 아버지는 결국 누나에게서 독립하게 되고, 여름은 겨울 언니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새어머니와의 동거는 그리 녹록지 않다. 대놓고 싫어하는 티를 내는 엄마에게마저도 예의를 지켜야 했던 여름은 마음속 깊이 아픔을 넣고 발효시킨다. 외로운 여름에게 비밀 친구가 생긴다. 루비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따돌리는 친구이므로 드러내놓고 사귀지는 못하지만 갈 데 없는 마음을 털어놓기 좋은 친구다. 루비에게는 범상치 않은 예쁜 엄마가 있고, 아이들은 고모와 루비 엄마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영원할 것 같은 그들의 우정은 사춘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어린 여자 아이의 과정을 겪어 본 나이기에 책에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았다. 가정 사정은 달랐지만 생각했던 것들이 비슷했다. 그 시절에는 어른들끼리 나누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고, 궁금한 게 참 많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첫 소설을 어쩜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아이가 주인공임에도 아이들 책이 아닌 것은 책 속 비유들 때문에 생각을 많이 하며 읽어야 했기 때문이다. 소설 전체가 하나의 시처럼 느껴졌다. 시인의 시도 궁금해진다.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