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엄마와 보냈다. 엄마는 2년 전 인지장애, 이번에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고 올케가 추석연휴 전날 함께 가서 약을 받아왔다. 아버지가 8월 말 위암 초기 진단을 받으시고 그 전날 수술 들어가시는 바람에 엄마와 함께 지내러 부모님 댁에 간 것이다. 엄마가 인지장애인 줄만 알았지 파킨슨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얼마 전부터 올케가 엄마가 혹시 파킨슨이 아닐까 주변 분들이 말씀하신다는 이야기를 했다. 신문 기사를 보니 엄마의 증상(잠을 제대로 못 주무시고, 몇 달 전부터 변비 증상이 있으셨고, 등이 굽으셨고, 종종걸음에 차에 오르내릴 때 다리를 들 힘이 없으시고, 손을 떠시는 증상)과 파킨슨 증상이 너무나 비슷해 놀라 바로 동생들과 병원을 알아보았다.
엄마가 의료보험공단에서 5급 받은 것도 불과 얼마 전 우연히 시댁 갔다가 센터 분을 만나 할 수 있었을 정도로 부모님과 동생들을 비롯한 우리 모두는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2년 전 처음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고 약을 받으셨다가 구토 등의 이유로 패치만 계속 붙여오고 계셨던 것이다. 그동안 가족 간에 말하기도 꺼려했을 만큼 쉬쉬하다가 엄마가 나를 따라 지하주차장에 배웅 나오셨다 집을 못 찾아 잠깐 헤매신 이후 온 가족이 적극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센터에서 하루 세 시간 요양보호사님이 나와 엄마와 시간을 보내시곤 했는데 아버지가 암진단을 받고부터는 데이케어에 다니시는 게 나을 것 같아 근처 구립 센터에 등록했다. 몇 달씩 기다린다는 그곳에 바로 자리가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데이케어에서 치매 거점병원을 알려주셔서 그곳에서 패치가 아닌 약을 드시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몸이 점점 느려지는 현상이 급속도로 진행될 즈음 파킨슨일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화장실에서 혼자 일어설 힘도 없어지고 주무시다 열두 번도 더 깨어 아버지가 힘들어하실 때여서 나와 동생들은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형 병원에 예약을 했는데 진료가 11월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해 절망할 즈음 데이케어 복지사님과 통화 중 데이케어 이용자의 많은 분이 파킨슨을 함께 앓고 계시지만 진행을 느끼지 못할 정도이며 대부분 전에 알려주신 치매거점 병원을 이용하신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전화했더니 바로 다음 주 월요일에 예약이 가능했다. 엄마가 검사를 받으셨다가 추석연휴 전날 파킨슨 진단을 받으셨고 약을 처음 받아오신 것이다.
엄마와 하룻밤을 보내고 약을 받아온 올케를 조금 일찍 퇴근하고 달려가 만났다. 저녁을 먹는 식탁 의자에 올케와 둘이 낑낑대며 엄마를 앉혀 드려야 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던 엄마는 그날 밤 약을 드시고 나와 함께 주무시는 동안 네 번을 깨어 화장실에 가셨다. 혼자 일어나 다녀오신 것이다. 원래 일어나고 눕는 것도 힘들어하셨던 터라 나는 도움이 필요하면 부르라고만 하고 기다렸다 다시 잠들곤 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고 엄마 샤워를 도와드린 후 흰머리가 많이 자란 엄마의 머리를 오랜만에 염색하러 동네 미용실에 갔다. 엄마가 다니셨다는 곳이 문을 닫아 새로 생긴 듯 인테리어가 세련된 미용실에 들어가 두 시간 반 동안 염색을 하고 머리를 자르셨는데 잘 버티셨다. (원래 예약제인데 엄마가 힘들어 보이셔서 받으셨다고 한다. 손님들이 계속 왔다.) 진하지 않은 연한 갈색으로 염색해 앞으로 흰머리가 나도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원장님이 엄마의 머리를 예쁘게 잘라주셨다.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오니 너무 피곤하셨는지 두 시간 가까이 주무시고 일어나셨다. 손을 잡고 동네 산책을 나갔다가 엄마의 걸음이 빨라진 걸 느꼈다. 엄마도 발걸음이 가볍다고 하셨다. 설마 알약 반쪽 두 번 먹고 효과가 이렇게 좋을까 싶긴 했지만 왠지 굽은 등도 조금 펴진 것 같고 손떨림도 확연히 줄었다. 말씀도 잘하셨다. 수술 후 회복 중이시던 아빠와 즐겁게 통화하셨다. 염색한 머리만큼이나 마음도 젊어지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밤에 약을 드시고(12시간 간격) 8시쯤 주무시다가 12시 반쯤 일어나셨다. 화장실에서 오래 나오지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 화장실에 엄마가 실수를 하셨다. 엄마가 씻는 것을 도와드리고, 화장실 정리를 하고 누웠더니 1시 반이 다 되어 갔다. 그런데 새벽 다섯 시 반까지 안 깨고 쭉 주무셨다. 결국 밤새 세 번만 깨셨다. 아침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다가 혼자 신발을 신고 벗는 것도 잘 못하시던 분이 양말을 예쁘게 신고 바쁘게 왔다 갔다 하시는 걸 보았다. 그러고 보니 혼자 소파에서 일어나는 것도 버거워하시던 분이 손도 대지 않고 소파에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시는 게 아닌가. 너무나 놀라워 영상으로 찍어 동생내외와 남편이 있는 단톡에 올렸다. 다들 놀라워했다. 엄마도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 돌아다니시며 내가 주방일 하는 걸 도우셨다. 예전의 엄마로 돌아오신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텔레비전을 말없이 보셨던 엄마가 이제는 글자들을 읽으시며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고 하시며 농담도 하셨다. 얼마나 기쁘던지.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 즈음 아빠가 퇴원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와 나는 부랴부랴 쌀을 씻어 죽을 만들었다. 아빠와 3박 4일을 병원에서 보낸 남동생이 아빠를 모시고 부모님 댁으로 왔다가 같은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부모님과 점심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빠는 엄마가 한결 나아지고 밝아진 모습을 보시고 너무 좋아하셨다. 미음만 드시고 낮잠을 주무시고 일어나신 아버지가 배가 고파서 안 되겠다며 집에 있던 마른 누룽지를 끓이시려고 해 내가 밥을 눌려 누룽지를 했다. 믹서로 밥 알갱이를 갈아 컵으로 드신 후 동생네로 가 두 남동생 가족을 만났다. 남동생 둘이 사이좋게 앉아 갈비찜에 들어갈 밤을 깎고 있었다. 막내동생이 다 깎고 오른손을 펴니 달달 떨려 웃었는데 첫 동생도 손을 펴니 똑같이 떨려 다같이 엄청 웃었다. 영상을 못 찍은 게 아쉬웠다.
저녁에는 시댁에 갔던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 저녁을 먹은 후 집으로 돌아왔다. 원래 수술하고 회복하셔야 할 아빠를 위해 하루 더 있을까 했는데 엄마가 많이 호전되셔서 그냥 집으로 왔다. 알약 몇 알이 사람을 이렇게 변화시킨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막내를 자취방에 데려다주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내 책 이야기와 옛날 이야기들을 하며 딸이 몇 번 울었다. 할머니의 약해지신 모습을 보니 자기 엄마의 미래가 그려진 것일까? 내가 엄마께 하는 걸 보고 딸이 배우는 것 같다. 착한 딸.)
아침에 전화를 드리니 아빠가 기분 좋게 전화를 받으셨다. 엄마가 전날보다 더 좋아지셨다고 한다. 지금은 적응 단계라 반 알씩 드시는데 한 달 후에 한 알씩 드시면 얼마나 더 좋아지실까 기대가 된다. 아빠도 잘 회복하시길. 한편 아빠가 위암 진단을 받지 않으셨으면 지금까지도 하루 세 시간 요양보호사님이 오셨을 테고 치매 거점병원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직 패치를 붙이셨을 것이고 큰 병원 대기하느라 상태가 더 나빠지셨을지도 모르니 여러 가지로 모든 진행이 신기하게 착착 맞아떨어진 게 너무나도 감사하다. 아빠의 수술 날짜도 추석 직전이라 내가 엄마와 마음 편히 함께할 수 있었고, 동생도 이틀만 휴가 내어 아빠와 병원에서 내내 지낼 수 있었다. 부모님을 위해 기도해 주신 목사님, 가정교회(구역) 식구들, 교회 식구들, 학교 신우회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부모님댁 귀여운 귤 먹는 다람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