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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Nov 25. 2023

작은 성장 - 경기에듀오케스트라 제 3회 정기공연 후기

일 년 동안 준비한 연주회가 무사히 끝났다. 이번에는 솔로 파트가 있어 그 곡만 무한 반복했다. 연습을 아무리 해도 안 되던 부분들이 조금씩 다듬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여전히 한계는 있었다. 마지막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동안 수많은 오케스트라 연주에 참여했지만 솔리스트의 대기실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플루트 두 분과 내가 솔로 부분을 연주하고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하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4번 1악장이다. 중간에 엄청 빠른 부분이 있어 걱정되었지만 계속 연습하니 박자에 맞출 수는 있었다. 너무 빠르면 중간에 빠지는 음들이 생기긴 한다.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다 그동안 연습한 곡에서 빠지기 그래서 그냥 검정 통바지에 검정 반팔 티를 입었다가 그 곡을 연주할 때만 재킷을 벗기로 했다. 대신 금색 반짝이 구두(인문학 모임 연말 코드 금색)를 바꿔 신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새벽에 일어나 전날 유튜브로 배운대로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전날 드라이한 머리를 묶었다. 오전 내내 5교시 수업을 하고 아이들의 가방을 싼 뒤 가방을 급식실 앞에 두었다 점심 식사 후 바로 하교시키고 연주회장으로 향했다. 도착해 짐을 풀고 의자 세팅을 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울림이 너무 좋아 소리가 굉장히 좋게 들렸다. 대신 울림 때문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1년에 걸친 연습 덕분에 순조롭게 연습이 끝났다. 사진을 찍고 대기실에 갔다가 김밥을 먹고 플루트 두 분과 대기실 안에서 연습을 했다. 솔리스트실에 함께 계시던 성악을 하시는 선생님께 죄송하긴 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연습을 하고 있는데 트럼펫 선생님이 갑자기 우리 대기실에 오셔서 나를 찾으셨다. 나가 보니 그분의 따님과 친구가 나를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오셨다고 한다. 알고 보니 우리 학교 학부모님이셨다. 리플릿에 같은 학교 선생님이 있으니 아이들이 찾아온 것이다. 따님도 방과후에서 바이올린을 했다고 한다. 너무 귀여운 아이들의 이름을 외웠다. 학교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야겠다.  


악장으로 무대에 선 게 세 번째라 이번에는 그에 대한 부담이 처음보다는 적어졌다. 곡이 끝날 때마다 무사히 하나를 해치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부가 끝난 후 지휘자님을 따라 들어갔어야 했는데 내가 머뭇거리는 바람에 조금 늦게 들어간 게 마음에 걸렸다. 인터미션이 20분으로 좀 길었는데 갑자기 플루트 1파트 선생님의 악보가 분장대 옆 아주 좁은 틈에 빠져버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연주를 못하시는 줄 알았다. 친척인 단원 분의 악보집에 여분 악보가 있긴 했지만 낱장이어서 제대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무대감독님께 말씀드렸더니 가구를 벽에 붙여 두어 뺄 수가 없다고 했다. 마지막 희망으로 내가 리플릿을 모로 길게 접어 틈새로 빼내려고 밀고 당기는 사이 친척 분이 책상 아래로 들어가 내 리플릿에 밀려 뒤로 튀어나온 악보를 겨우 빼셨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2부 시작되기 5분 남은 때였다. 


2부 처음 지휘자님이 협연하신 곡이 끝나자마자 밖으로 따라 나가 재킷을 벗고 신발을 바꿔 신었다. 두 분은 벌써 대기 중이었다. 들어갔는데 처음에 인사하지 않기로 했는데 갑자기 플루트 선생님이 차렷 경례를 해서 잠깐 당황했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속도는 평소에 하던 대로여서 안정감 있었다. 마이크를 댈까 하다 너무 시끄러워 안 하기로 해 소리가 안 들릴까 싶었는데 울림이 좋아서인지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많이 낮춰서인지 내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중반 이후까지 무난히 잘 연주하고 있었는데 3분의 2 지점쯤에서 플루트가 한 박 빠르게 연주하시는 걸 알게 되었다. 어디에 맞출지 고민하던 차에 전환되는 부분이 있어 나와 오케스트라가 맞췄다. 큰 사고 없이 연주가 무사히 끝나서 너무 좋았다. 큰 무대에서 솔로를 하시는 게 처음이라는데 떨지 않고 당당하게 하시다니 다들 대단하시다. 내가 사시나무처럼 떨었던 초창기 무대들을 생각하면.


재킷을 다시 입고 신발을 갈아 신은 후 타악기 선생님들 들어가실 때 같이 들어가 앉았다. 성악 두 곡을 잘 마쳤다. 예쁜 노란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선생님의 옥구슬 같은 목소리가 연주회장에 울려 퍼졌다. 파주 금신초 아이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예쁘게 단장한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지만 연주를 잘했다. 우리가 뒤쪽으로 합류해 마지막 곡인 캐리비안의 해적을 마치고 앙코르로 아름다운 나라도 했다. 90명의 연주자가 함께 연주하니 사운드가 빵빵했다.


무대의 의자와 보면대 정리를 돕고 늦게 나왔더니 가족이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는 꽃다발도 사고 친구까지 데리고 와 너무 고마웠다. 그 친구도 바이올린을 했었다고 한다. 내가 연주할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늘 부족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다른 연주와 달리 솔로 부분이 있어 마음의 부담이 컸는데 무사히 마치고 나니 행복이 몰려왔다. 도장 깨기 하는 느낌이었다. 이제 12월 연주와 1월 태권도 박람회 강연이 남았다. 아주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이 기쁘다. 함께하신 오케스트라 분들은 정말 일취월장하셨다. 다음에는 어려운 교향곡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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